HOME  >  미션라이프  >  기독역사

“일제에 검열 당한 설교집 그대로 펴내 무언의 저항”
‘종교계 저명사 강연집’의 영인본 표지. 강연집에 실린 미감리중앙교회 김창준 목사의 설교 ‘최대의 모범’ 첫 장을 보면 일본 조선총독부의 검열로 삭제된 부분을 점선으로 표시해 놓았다.   한경국 장로회신학대 초빙교수가 10일 ‘종교계 저명사 강연집’의 의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송지수 인턴기자 1922년 7월 활문사에서 출간한 ‘종교계 저명사(著名士) 강연집’은 한국교회의 두 번째 설교집이다. 총 20명의 설교가 실렸는데 그중 7명이 3·1운동 민족대표다.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민...
입력:2018-12-10 08:05:01
[발굴! 이 사람] 일본 한복판서 대한독립을 외치다
전도유망한 20대 유학생으로 일본 제국의 심장부인 도쿄에서 1919년 2·8독립선언을 주도하다 수감됐다. 감리교인으로 일본에서 다시 미국 웨슬리안대로 유학길에 올랐고, 뉴욕 컬럼비아대 대학원 재학 중엔 3·1운동 정신을 담아 ‘삼일신보’를 창간해 언론 활동을 했다. 1931년 워싱턴 아메리칸대에서 ‘한국의 농촌경제’를 주제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이듬해 식민지 조국으로 귀환, 연세대 전신인 연희전문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생애 두 번째 피검된 후 해방을 맞았다. 기독인 독립운동가로 대한...
입력:2018-12-06 08:05:01
[한국기독역사여행] 교회서 성장한 혁명음악 작곡가, 중국의 별 되다
  광주광역시 남구 정율성로 정율성 생가(오른쪽 담 안)를 방문한 광주대학교 학생들이 친구들을 안고 포즈를 취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공주놀이 사진찍기’이다. 멀리 정율성이 다녔던 광주양림교회 첨탑이 보인다. 당시 교회 일대는 야트막한 동산이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6·25전쟁 후 중국에서 음악활동을 하던 때의 정율성, 광주양림교회와 교인들의 1930년대 사진, 광주양림교회 최학휴 목사가 교회 역사를 설명하는 모습, 광주양림교회 사거리 정율성 흉상.   양림교회와 이강하미술관이 ...
입력:2018-11-30 02:25:02
[발굴! 이 사람] “한국 임시정부 승인을”… 美에 촉구
제럴딘 피치 여사   1947년 서울 경교장을 방문한 피치 선교사 부부(아랫줄 맨 오른쪽)가 김구 선생(아랫줄 가운데), 프란체스카 여사(아랫줄 왼쪽 두 번째)와 찍은 사진. 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제공   박명수 서울신학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이 22일 열린 ‘한·미 관계와 기독교 특별 심포지엄’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부천=강민석 선임기자 “일부 사람들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침략이 만주 침략에서 시작됐다고 보나 사실 일본은 1905년 한국을 강제 병합했다.… 이에 벗어나기 위해 한국에서...
입력:2018-11-22 08:05:01
“찬미가 찬양가 통해 서양음악 처음 알려”
정운형 연세학풍연구소 연구위원(왼쪽)이 20일 서울 연세대 신촌캠퍼스 원두우신학관에서 1930년대 연희전문 남성 사중창단의 활약을 소개하고 있다.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가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서양 근대음악 확산의 축이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고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가 집대성한 ‘찬양가’는 정식 악보가 수록된 한국 교회음악의 시초였다. 연세대 신과대와 음악대는 20일 서울 신촌캠퍼스 원두우신학관 예배실에서 ‘연희전문학교의 음악교육과 기독교 정신’을 주제로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했...
입력:2018-11-20 08:05:01
[한국기독역사여행] 숯장사·조선사대부 ‘신앙 동지’ 되다
전덕기(1875∼1914·왼쪽)와 이회영(1867∼1932).   항상 인파로 붐비는 서울 남대문시장과 맞닿은 상동교회 뒤편 시장통. 1800년대 말 숯장사꾼 전덕기는 이 시장통에서 장사를 하다 예수를 믿고 신민(新民)이 됐다. 그리고 신학을 공부하고 이 교회 목사가 됐다. 민족운동을 이끈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강민석 선임기자   상동교회 옛 모습. 교회 내 구제 병원, 학교가 있던 민족운동 요람이었다. 서울 중구 한국은행 앞 사거리. 우리 역사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곳이다. 특히 조선말과 일제강점...
입력:2018-11-16 02:25:01
목사 40여명 배출한 신앙 산실 강화 교동교회… 119년 된 대들보가 ‘증거’
인천 강화군 교동면 상용리 언덕에 위치한 옛 교동교회 모습. 교동교회는 내년에 설립 120주년을 맞는다. 교회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밥을 지어 피란민을 대접했다.   인천 강화군 옛교동교회의 예배당 내부.   100년 넘게 간직돼 온 오르간.   교동교회를 세운 박성대 장로의 손자인 박광재 광명영광교회 목사. 1865년 토마스 선교사 일행 탄 배 좌초해 상륙… 1899년 교회 건축 강화대교가 보이는 인천 강화군 교동면 상용리의 한 언덕에는 교동교회의 모체인 옛 교동교회가 있다. 교회는 1950년 6·25전쟁 당시 ...
입력:2018-11-14 08:05:01
동토의 눈보라에도 선열의 애국 신앙 푸르렀다
1920년 최재형 선생이 순국한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 사베스카야 언덕엔 잡초만 무성할 뿐 표지판이나 추모비 하나 없었다. 찬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지난달 23일 오후 이 언덕을 찾은 소강석 목사가 하모니카로 아리랑과 고향의 봄을 연주하자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따라 부르고 있다.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의 생전 모습.   항일투쟁 본부가 있었던 블라디보스토크의 외곽 라게르산 언덕에 신한촌 기념탑만 남아 있다.   우수리스크 볼로다르스카야 거리 38번지에 있는 최재형 선생이 말년에 살던 집, 지금은 기념관으...
입력:2018-11-09 01:05:02
“3·1운동 확산에 지역 미션스테이션이 거점 역할”
송현강 한남대 교수(맨 왼쪽)가 3일 서울 종로구 서울YMCA에서 열린 3·1독립운동 100주년 기념 한국기독교역사학회 학술 심포지엄에 참석해 질문에 답하고 있다. “3·1독립운동의 전국적 전파에는 각 지역 기독교 ‘미션 스테이션’이 거점 역할을 했다.” 내년 3·1독립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3일 서울 종로구 서울YMCA 건물에서 열린 한국기독교역사학회 학술 심포지엄에서 나온 얘기다. 미션 스테이션은 미션스쿨과 병원, 교회 등이 있던 지역 선교의 중심지를 의미한다. 기독교인들이 1919년 3·1운동을 주도했...
입력:2018-11-04 08:05:01
[한국기독역사여행] 이재민 동네에 지핀 복음의 불... 박현숙 장로와 쌍문동 갈릴리교회
박현숙 (1896∼1980)   지난주일 대예배 후 전도에 나선 갈릴리교회 교인들이 어깨띠를 두르고 서울 쌍문동 골목길을 걷고 있다. 골목 멀리 보이는 산자락이 북한산이다. 쌍문동 골목길은 인기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배경이기도 하다.   독립운동가였던 박현숙(오른쪽)은 정부 수립 후 장관·국회의원 등을 역임한다. 가운데 인물은 평양 남산현교회 목사이자 월남 후 제헌의원, 국무총리 서리 등을 지낸 이윤영 목사다. 어느 행사장에서 태극기에 대한 의례 자세다(위 사진). 2016년 박현숙 장로의 손녀 김덕신 권사(남...
입력:2018-11-02 03:20:02
주보는 민주화 소식을 싣고∼ 그때 그 역사 보존하고 알린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손승호 간사가 31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수장고에서 꺼내 온 인권소식 영인본을 가리키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왼쪽 사진은 ‘고난받는 형제를 위한 기도회’ 예배 순서지이고 오른쪽은 1979년 3·1절 강제 가택연금에 처한 인사들을 알리는 소식지이다. 강민석 선임기자 누런 갱지에 구식 타자기로 조악하게 인쇄됐다. A4 용지 두서너 장으로 묶인 유인물 형태로 목요기도회 때마다 예배순서지와 함께 주보로 배포됐다. 이 소식지가 유신독재 시절 긴급조치 9호를 뚫고 거의 유일하게 한국의 민주화 ...
입력:2018-10-31 08:05:01
‘여순사건’ 끝나지 않는 갈등, 치유의 역사 기도
전남 여수 애양원 인근에 조성된 손양원 목사와 양아들 안재선의 조형물. 주인 없는 의자는 여수·순천 10·19 사건 당시 좌익 학생들의 고발로 처형당한 손 목사의 아들 동인과 동신을 상징한다.   70주년 추모예배에 참석해 치유와 화해 메시지를 선포한 이홍정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반란인가 항쟁인가, 봉기인가 폭동인가.’ 70년이 지나도 계속 나오는 질문이다. 1948년 10월 19일 ‘제주의 동포를 학살할 수 없다’며 전남 여수 주둔 국군 14연대가 항명을 일으켜 촉발된 ‘여수·순천 10·...
입력:2018-10-21 08:05:01
[한국기독역사여행] “나리, 예수 믿으소서”… 마부 엄귀현 영수, 왕손을 전도하다
엄귀현(1876∼1951)   서울 중랑구 봉화산 정상에서 본 경동제일교회(오른쪽 아래 점선)와 한강 방향 서울. 왼쪽 아차산 뒤로 잠실 롯데월드타워 건물이 튀어나왔다. 경동제일교회는 1904년 설립됐다. 이 교회 초기 성도 엄귀현 영수는 평생 마부로 살았다.   YMCA 운동가 전택부 선생 서울 동쪽 봉화산(159.8m) 정상에 오르면 서울 동남쪽 일대가 시원하게 보인다. 왼쪽 아차산과 오른쪽 남산의 숲이 시야에 들어온다. 남산의 N서울타워(남산타워)와 아차산 뒤쪽으로 뾰족 튀어나온 롯데월드타워가 ‘번영의 대한민국’...
입력:2018-10-19 01:45:01
“3·1운동은 하나님께 올려드린 부르짖음의 성례”
3·1운동에서 어떤 신학적 의의를 찾을 수 있을까. 기독교학자들은 일제 강점에 저항한 민중의 외침이 하나님 구원을 작동케 하는 과정이었음에 주목하자고 말했다. 한국기독교학회(회장 노영상)는 12일부터 이틀간 경기도 광주 소망수양관에서 ‘응답하라 1919: 3·1정신과 교회의 미래’를 주제로 정기학술대회를 열고 3·1운동의 정신과 의의를 신학적 관점에서 조명했다. 김회권 숭실대 교수는 독립과 자유를 위한 민중의 부르짖음이 하나님의 역사 개입을 촉발하는 통로였다고 분석했다. 그는 성경에서 이방의 압제로부터 구원해...
입력:2018-10-14 08:10:01
[발굴! 이 사람] 대를 이어 ‘나누는 기쁨’ 누린 세브란스 가문
루이스 H 세브란스가 1907년 9월 서울에 세워진 ‘세브란스 기념병원’을 방문해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그림. 신축병원을 보고 크게 만족한 세브란스는 의대생 교육 시설이 없는 걸 알고 3만 달러를 추가로 기부했다. 의대 건물은 1913년 완공됐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루이스 H 세브란스(왼쪽), 올리버 에비슨 선교사다. 국민일보DB 1900년 4월 21일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세계 에큐메니컬 선교사대회 중 한 선교사가 무대에 올랐다. 캐나다인 의사로 조선에서 사역 중이던 올리버 에비슨(1860∼1956)이었다. 그가 꺼낸 이야기는 ...
입력:2018-10-09 08:05:01
한국인 첫 장로교 총회장… 진정한 ‘한국교회 대표’ 김필수 목사
이재근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 교수(가운데)가 6일 서울 마포구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에서 열린 학술발표회에서 추강 김필수 목사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김 목사가 1908년 발표한 개화기 우화소설 '경세종'의 표지이다. '세상을 깨우는 종소리'란 뜻으로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동물인 양이 회의 주재자이며 마지막은 '아멘'으로 끝난다. 목사이자 소설가였고 웅변가 번역가에다 언론인이었다.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강점기 한국 기독교인은 외국인 선교사의 주도권 아래 대체로 보조적 역할에만 머물렀는데 추강(秋岡) 김필수(1872∼1948) 목...
입력:2018-10-07 08:05:01
[한국기독역사여행] 왜 나를 살리셨을까 … 원경선, 전도하는 농부되다
원경선(1914∼2013)   북한산성 대성문루에서 정릉계곡 쪽을 바라본 풍경. ‘유기농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리스도인 원경선은 1938년 여름 북한산성 성문에서 ‘강도’를 만난다. 교회 형제에게 사진 기술을 배워 출사를 나왔던 때였다. 그의 삶의 ‘다메섹 도상’이었다.   구순이 넘어서도 곡괭이를 지고 땅의 소산을 거두었던 원경선. 그는 ‘전도하는 농부’였다. 오른쪽은 지명희와의 결혼사진. 신부는 배화학교 졸업 후 타이피스트로 일하고 있었다. 지명희는 시골 출신 우유배달부에게 광화...
입력:2018-10-05 02:05:02
‘스코틀랜드 언약도 신앙고백’ 국내 첫 공개
정성구(한국칼빈주의연구원장) 박사가 지난 27일 경기도 성남 칼빈박물관에서 스코틀랜드 언약도 대표들이 1638년 작성한 신앙고백과 서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성남=송지수 인턴기자   그레이프라이어스교회 앞마당에서 서명하고 있는 언약도들을 그린 그림. 칼빈박물관 제공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학교나 자유교회 신학교, 존 낙스(John Knox)가 목회하던 성자일레스교회에도 없는 자료입니다. 그레이프라이어스교회에 보관된 원본을 그대로 담은 사본으로선 세계에서 유일할 겁니다.” 경기도 성남 칼빈박물관에서 지난 27일 만...
입력:2018-09-30 08:05:01
고통받는 在日 조선인 섬겼던 캐나다 선교사들의 사랑 생생
지난 22일(현지시간) 캐나다 토론토 근교에 개관한 ‘재일동포 캐나다 선교사 전시실’ 입구 모습. 김병호 목사 제공   1927년 일본 고베에서 조선인 선교를 시작한 루터 영 목사. 김병호 목사 제공 캐나다장로교회 소속 선교사 루터 영(Luther L Young) 목사는 1906년부터 원산과 함흥 등지에서 활동했다. 복음주의자였던 그는 1925년 캐나다장로교회의 3분의 2가 다른 교파와 함께 캐나다연합교회라는 진보 성향의 새 교단을 만들자 가입을 거부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귀국길에 일본 요코하마에 들른 그는 재일 조선인들을 만났다. 많...
입력:2018-09-27 08:05:01
[한국기독역사여행] 구레나룻 서양인, 70여만명에게 쪽복음 전하다
아서 웰번 선교사는 1909∼1928년 경북 안동교회를 중심으로 경북 북부지역 순회 목회를 했다. 안동교회 구 예배당 사진으로 지금은 역사관 등으로 쓰인다. 구 예배당 오른쪽으로 100주년기념예배당이 들어섰다. 아래 흑백 사진은 구 예배당 앞에서 찍은 1951년 7월 안동중학교 졸업기념 사진이다. 6·25전쟁으로 교사(校舍)가 파괴돼 예배당에서 공부했다.   웰번 선교사 부부의 손녀 프리실라 부부의 2013년 한국 방문 때 모습(오른쪽).   새디 선교사가 가마를 이용해 전도에 나서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위쪽 사진). 아서 선교사가 한글...
입력:2018-09-21 01:50:01
남대문교회 ‘알렌기념상’ 제정 박형우 연세대 의대 교수 선정
서울 남대문교회(손윤탁 목사·사진 오른쪽)가 알렌기념상을 제정하고 지난 16일 박형우(62·왼쪽) 연세대 의대 교수를 첫 번째 수상자로 선정했다. 교회는 “박 교수가 우리나라 개신교 전래 역사 중 제중원을 깊이 연구한 공이 커 수상자로 정했다”고 밝혔다. 해부학 전공 교수이면서도 연세대 의대 동은의학박물관장을 맡고 있는 박 교수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인 제중원의 설립과 역할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동안 수십 권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다. 시상식에서 박 교수는 “한국교회사를 전공하는 후배들을 위해 앞으로도 ...
입력:2018-09-18 08:10:01
[한국기독역사여행] “기도로 깰지어다”… 기도원운동 불붙이다
전진(1912~1996)   한국 기독교 기도원운동의 효시 강원도 철원군 대한수도원 석조예배당. 1959년 완공된 이 예배당은 수도원 상징 건물로 한탄강 돌을 져다 지었다. 돌을 가장 많이 져다 날랐던 소아마비 장애인 ‘뛰뛰할아버지’는 옥양목 두루마기를 선물로 받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고 한다.   철원 장흥교회. 철원지역 기독청년들은 해방 직후 장흥교회와 대한수도원을 중심으로 남한 지지 투쟁을 펼쳐 공산정권으로부터 탄압을 받았다. 1980년대 초 서울에서 강원도 철원을 향하는 길은 비포장 신작로였다. 군에 ...
입력:2018-09-07 02:05:01
영성의 길잡이 ‘다락방’ 여든 맞다
세계 각지에서 온 참석자들이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종교교회에서 ‘한국 다락방 80주년 기념 감사예배’를 마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시대별 다락방의 표지 모습. 한국어 다락방은 1938년 첫 발행 이후 시대에 따라 조금씩 모습을 달리해왔다. 강민석 선임기자   조경순 권사와 아들 이동준씨가 지난 7일 서울 종교교회에서 다락방 80주년 기념예배를 마친 뒤 아침마다 조 권사가 옮겨 쓴 다락방 필사 노트를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세계 100여개 국가에서 800만 그리스도인의 영적 안...
입력:2018-09-09 08:05:01
예장통합, 고 김상현 목사 순교자로 추서키로
공산당에 맞서 저항하다 목숨을 잃은 고 김상현(1882∼1948·사진) 목사가 순교자로 추서됐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임원회는 최근 회의를 열고 총회 순교·순직자심사위원회(위원장 이국현 목사)가 제출한 김 목사에 대한 공적사항을 검토한 뒤 순교자로 추서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평양신학교 19기로 주기철 목사 등과 함께 공부한 김 목사는 일제강점기엔 독립운동을 했고 광복 후엔 공산주의 세력과 싸웠다. 압제에 저항하며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삶이었다. 그는 1919년 3월 31일 평안북도 정주에서 ‘정주 장날 만세...
입력:2018-09-06 08:05:01
[위그노 신앙 계승자와 그들의 발자취] 佛 개신교인, 1534년 ‘벽보사건’으로 수난
초창기 위그노들이 프랑스 리용에서 예배를 드리던 모습. 외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건물에 창문을 두지 않았다.   프랑스 앙뒤즈 인근 수양관에서 지난달 30일 열린 제1회 한불신학포럼에서 파트릭 카바넬 소르본대(개신교 역사학)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위그노(Huguenot)란 프랑스 초기 개신교도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 이름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직까지 불분명한데 당시 개신교인이 박해를 피해 밤에 집회를 했기 때문에 ‘몽유병자’를 뜻하는 의미로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중세에 사용된 작은 단위의 화폐를 뜻하기도 했다. 모두 소수였...
입력:2018-09-04 08:05:02
1 2 3 4 5 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