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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한인교회, 1919년 자리잡은 터 찾았다
1919년 상해한인교회가 있던 자리엔 1931년 염업은행이 새 건물을 지었다. 지금은 중국청통이라는 유통회사가 사용 중이다. 장창일 기자   상해한인교회가 빌려 사용하던 로리기념교회와 미화서관의 옛 모습. 이혜원 교수 제공   1884년 제작된 상해현성상조계전도에 ‘미화서관(美華書館)’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다(붉은 동그라미). 이혜원 교수 제공 대한민국 임시정부 출범의 구심점이 된 1919년 상해한인교회(중국어 표기는 上海鮮人敎會) 터가 11일 처음으로 확인됐다. 이 교회의 정확한 위치는 지난 100년 동안 ...
입력:2019-04-11 08:05:02
만세운동 세계에 알린 석호필… 조국 독립 외친 ‘세브란스의 33인’
여인석 연세대 의대 의사학과 교수가 지난 4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3·1운동 당시 해부학 실습실에 독립선언서를 숨긴 장면을 담은 기록화를 설명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스코필드 박사가 촬영한 제암리 학살 현장.   세브란스의전 시절 프랭크 W 스코필드 박사. 1919년 3·1운동 당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세균학 교수였으며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린다.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최연소자였던 세브란스병원 제약주임 이갑성 남대문교회 집사(국민일보 2월 21일자 31면 참조)에게 거사 일정을 전해 듣고 서울...
입력:2019-04-10 08:10:01
펜윅 선교사 토착화 선교 정신 되새긴다
한복을 입고 부채를 들고 있는 펜윅 선교사의 모습. 기독교한국침례회 제공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 회의실에서 열린 펜윅 선교 130주년 기념 간담회. 박종철 총회장(가운데)이 행사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송지수 인턴기자 말콤 C 펜윅(Malcolm C Fenwick·1863∼1935) 선교사의 한국 선교 130주년을 맞아 그의 토착화 선교 정신을 되새기고 기념하는 행사가 펼쳐진다. 캐나다인 펜윅 선교사는 1889년 평신도 선교사로 한국 땅을 밟은 뒤 기독교한국침례회의 모체인 대한기독교회를 창설하는 등 46년간 굵직한 사역...
입력:2019-04-08 08:05:01
[한국기독역사여행] “우상에는 절하지 않는다”… 옥중서도 신앙 절개 지켜
제주중앙교회는 1951년 6·25전쟁 피난민이 육지에서 몰려들면서 조직 교회로 뿌리를 내렸다. 당시 피난민은 해군 상륙작전함(LST) 등을 타고 입도했다. 그들은 천막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께 감사했다. 지금의 교회는 2013년 신축한 것으로 구원 방주와 LST를 형상화했다.   현 제주시 오라벌 제주중앙교회 정원 한쪽에 자리한 도인권 목사 목회 기념비. 그는 제주에 7개 교회를 개척했다.   도인권 목사 (1880~1969)   서울 강북삼성병원 경교장 2층 테라스에서 북행 이유를 설명하는 김구(가운데). 왼쪽이 도 목사로 추정된다. ...
입력:2019-04-05 03:05:01
성도는 태극기·독립선언서 배포… 담임목사는 총독부에 규탄서
서울 승동교회 소속으로 1919년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김원벽 청년면려회장과 차상진 목사(사진 왼쪽부터).   승동교회 16대 담임인 최영태 목사가 3일 서울 종로구 교회 앞에서 교인들이 주도했던 독립운동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송지수 인턴기자 서울 승동교회는 1893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인 새뮤얼 무어(1860~1906) 목사가 설립한 교회다. 한국교회사적으론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과 통합이 갈라지는 분기점에 있던 상징적 교회다. 신학적 차이로 예장통합은 1959년 9월 서울 연동교회에서, 예장합동은 같은 해 11월 승동교회에서 별도의 ...
입력:2019-04-03 08:05:01
만세운동·일왕 사진에 절 거부해 옥고… 한국전 중 평양서 순교
기현두 새온교회 목사가 지난 27일 서울 노원구 교회 목양실의 순교자 기념 포스터 앞에서 부친의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기현두 목사의 부친 기주복 목사.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한다. 마음속 신앙과 머릿속 지식 역시 빼앗지 못한다. 독립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르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를 택한 목회자 후손이 전하는 메시지다. 수락산 등산로 입구에 있는 서울 노원구 상계3단지. 15~17평 임대아파트 옆에 자리한 새온교회에서 지난 27일 기현두(70) 목사를 만났다. 기 목사는 1970년대 장로회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
입력:2019-03-31 08:05:01
“조선의 일은 조선 사람이 다스려야” 초교파 독립운동 앞장
3·1운동 직후 민족대표 33인 중 1명으로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던 오 목사의 모습.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최이우 목사가 26일 서울 종로구 종교교회에 마련된 오화영 목사 사택 터 안내문 앞에서 오 목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송지수 인턴기자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으로 말미암는 것이나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하고 주린 자에게는 쓴 것이라도 다니라.”(잠 27:6~7)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오화영 목사가 1924년 지인에게 붓글씨로 건넨 성경 구절이다. 3&mi...
입력:2019-03-27 08:05:01
[현장] “독립운동 그때로 시간여행 온 듯”
이덕주 전 감신대 교수(오른쪽)가 23일 서울 중구 정동길 정동제일교회 벧엘예배당 앞에서 서울YMCA 독립운동 기독 유적지 답사 참가자들에게 3·1운동에 참여했던 이 교회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1919년 1월 22일 조선총독부는 고종황제가 덕수궁 함녕전에서 승하했고 3월 3일 국장을 치른다고 발표했습니다. 국민 사이엔 황제가 독살됐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졌죠. 억눌려있던 분노가 터졌고 결국 3·1 만세운동으로 귀결됐습니다. 바로 이 자리가 독립운동의 출발점입니다.” 이덕주 전 감리교신학대 교수가 23일 서울 중구 ...
입력:2019-03-24 08:05:01
[한국기독역사여행] 독립선언서 품은 기독학생, 호남 만세운동 불씨 놓다
전북 익산시 중앙동 옛 삼산의원 건물의 이전 설치가 한창이다. 세브란스의전 출신 독립운동가 김병수 장로가 일제강점기 운영했던 병원으로 2005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구 삼산의원’으로 불렸으며 인근에서 옮겨졌다. 김병수는 이곳에서 가난한 자들을 돌봤다.   김병수 장로 (1898~1951)   치문초교 뒤 김씨 문중 사택을 송민영 교장이 안내했다. 호남 명문가가 기독교 사상으로 시작한 학교다.   김병수가 졸업한 현 서울역 앞 세브란스의전 사진. 학교 앞에서 3·1 만세운동을 했다.   김병수 등이 신...
입력:2019-03-22 02:05:01
“주권국 한국, 일본이 식민통치하며 기독교 박해” 세계에 알려
김규식 장로(앞줄 왼쪽 다섯번째)가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 상하이로 떠나기 전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열린 전별식 단체사진. 김 장로 왼쪽이 새문안교회 설립자인 호러스 언더우드 선교사다. 새문안교회 제공   37세 때의 김 장로 모습. 새문안교회 제공   윤경로 새문안교회 은퇴장로가 지난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규식 장로와 새문안교회, 언더우드 선교사의 인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열강이 약소국을 식민지로 삼던 제국주의가 세계를 휩쓸던 19세기 말 20세기 초. ‘자신의 말과 글이 있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문...
입력:2019-03-20 08:05:02
“예수여 어서 오소서, 이 땅에”… 고문에 굴하지 않고 독립 외치다
김마리아 선생   김마리아 선생의 유품인 한복 저고리. 일경의 고문으로 오른쪽 가슴이 주저앉았기에 저고리 한 쪽이 짧다. 강민석 선임기자   김마리아 선생 서거 75주기를 맞이한 13일 서울 송파구 정신여중고 교정에선 추모식과 학술대회가 열렸다. 오른쪽부터 김마리아선생기념사업회 이미자 회장, 이송죽 부회장, 최성이 정신여고 교장. 강민석 선임기자 올해는 2·8독립선언과 3·1운동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100년 전 3·1운동 민족대표 33인과 배후까지 망라된 48인 등 수많은 남성 독립투...
입력:2019-03-13 08:05:01
3·1운동과 함께한 순교자 25인의 삶 오롯이
한국교회순교자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정영택 목사(왼쪽)가 12일 서울 중구 영락교회 50주년 기념관에서 순교자들의 삶이 담긴 전시물을 설명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기독교인이 앞장선 1919년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독립운동을 하다 30년대부터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고초를 겪는다. 45년 해방을 맞이하지만 분단과 6·25전쟁 과정에서 교회를 지키려다 목숨을 잃는다. 한국교회 순교자들의 양상이다. 12일 한국교회순교자기념사업회가 서울 중구 영락교회(김운성 목사) 50주년 기념관에서 진행 중인 ‘3·1 독립만세운동 100주년 기념 ...
입력:2019-03-12 08:05:01
한국·이탈리아 음악가들 ‘신석구 목사의 삶’을 연주하다
지난 10일 오후 3시(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연합교회에서 한상욱의 지휘로 서울 수표교교회와 로마연합교회의 연합찬양대가 3·1운동 100주년 기념 칸타타 ‘주를 위해’를 연주하고 있다. 이탈리아 현지에서 활동 중인 바리톤 김강순(오른쪽)이 신석구 목사 역을 맡았다.   신석구 목사   로마연합교회 홍기석 목사.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의 십자가 늘 사랑하고, 안일한 생활을 취하지 않네. 우리가 잘 입을 때 주님 벗으심 우리가 잘 먹을 때 주의 주리심 잊어버리기 쉽네. 우리는 안일을 구하지 ...
입력:2019-03-12 08:05:01
첫 선교사 아펜젤러가 기틀 잡고, 33인 신홍식 목사 ‘민족운동 산실’ 역할
인천 최초의 서구식 개신교 예배당인 ‘제물포 웨슬리 예배당’ 앞에 내리교회 교인들이 모여 있다. 인천 내리교회 제공   내리교회의 선구자들인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왼쪽), 김기범 목사(가운데)와 조지 존스 선교사 동상 모습. 인천 내리교회 제공 인천 중구 내리교회(김흥규 목사)는 134년 역사의 한국교회에 어머니 같은 교회다. 내리교회는 감리교 최초의 한국선교사인 헨리 G 아펜젤러(1858∼1902)와 그의 부인이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 제물포항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한국의 근현대사와 함께해온 만큼 3·1운동과도 관련이 ...
입력:2019-03-07 08:05:01
[현장] 독립운동 기록한 벽돌집, 95년 전 그대로 복원
서울 종로구 사직로 딜쿠샤를 방문한 학생들이 10일 인솔교사로부터 딜쿠샤의 역사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복원 공사가 완료된 딜쿠샤의 내부 예상도. 그곳을 찾아가는 길은 과거로의 시간여행 같았다. 서울 종로구 사직로의 골목으로 10일 들어서자 ‘홍난파 가옥’이 방문객들을 맞이했다. 언덕 위로 보이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이정표 역할을 했다. 은행나무를 보며 걸어가니 막다른 길 끝에 커다란 서양식 주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3·1운동과 제암리 학살 사건을 전 세계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1875~1948)가 직접 짓...
입력:2019-03-10 08:05:01
[한국기독역사여행] 해방과 전쟁 사이, 양을 지키다 희생된 목자
서울역 앞 동자동 서울성남교회 석조예배당. 쪽방촌이었던 이 지역은 교회만 남기고 대형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석조건물은 기독교 유산으로 보존됐다. 사진 오른쪽 은행나무는 석조예배당을 건립하면서 심었다.   송창근 목사 (1898~1950)   서울 동자동 일본 천리교 적산가옥에서 시작된 서울성남교회.   조선총독부 경시청이 작성한 송창근 목사에 대한 조서(위 사진). 서울성남교회 석조예배당 송창근 목사의 성빈(聖貧) 기념비.   교회 앞 쪽방 골목에는 선교회 등이 있어 주민을 돕고 있다(위 사진). 캐나다 장애교인 ...
입력:2019-03-08 02:35:01
민족대표 이필주·박동완 배출… 주요 인물 모두 끌려가 반년 넘게 문 닫기도
송기성 정동제일교회 목사가 지난달 8일 서울 중구 교회 앞마당에서 이필주 목사 사택터 표지판을 설명하고 있다. 송지수 인턴기자   1918년 벧엘예배당 안에 설치된 파이프오르간. 한국 최초의 파이프오르간이며 파이프 뒤편 송풍 공간에서 비밀리에 독립운동 유인물이 제작됐다. 송지수 인턴기자 3대 현순(1880~1968) 4대 손정도(1872~1931) 5대 이필주(1869~1942) 목사는 모두 독립운동가였다. 이 목사와 박동완 전도사까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2명을 배출했다. 담임목사와 전도사, 이웃한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학생들은 물론 청년들까지 ...
입력:2019-03-07 08:05:01
“강토 빼앗겼는데 외면하면 더 큰 죄”… 민족대표 중 3명이 담임목사
서울 서초구 명달로 수표교교회 본당 모습. 교회는 1984년 서울 중구 청계천 근처에서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 수표교교회 제공   1929년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정치범 카드’. 신석구 목사는 이 카드를 갖고 다니면서 자신이 불온사상가임을 알리곤 했다. 국민일보DB 서울 서초구 명달로 수표교교회는 민족대표 3명을 배출했다. 민족대표 신석구 오화영 정춘수 목사가 이 교회 담임목사를 지냈다. 수표교교회를 상징하는 인물인 신 목사는 1918년 부임한 뒤 민족대표에 참여하면서 투옥돼 1919년 사임했다. 오 목사는 1927년부터 1년 동안 ...
입력:2019-03-07 08:05:01
서울의 대표적 민족 교회… 1964년부터 이어온 화요일 구국기도회 자부심
최이우 목사가 6일 서울 종로구 종교교회의 첫 번째 성전에 사용했던 벽돌을 가리키고 있다. 송지수 인턴기자   종교교회 초대 담임목사인 로버트 하디 선교사가 1916년쯤 사용한 찬송가. 송지수 인턴기자 서울 종로구 종교교회(최이우 목사) 성도들은 1919년 3월 2일 담임 목사의 주일 설교를 듣지 못했다. 3·1운동 직후 담임이었던 오화영 목사가 일제에 의해 구속됐기 때문이다. 오 목사는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명이다. 종교교회 교인들은 오 목사가 투옥된 뒤 3년 2개월 동안 그를 잊지 않고 기다렸다. 가족들을 ...
입력:2019-03-07 08:05:01
한몸 된 교회, 만세운동을 전국 지체로 전파하다
1919년 경기도 화성 주민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한 장면을 그린 기록화. 국민일보DB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에 있는 희생자 23명을 추모하는 조형물 모습. 국민일보DB 1919년 3월 1일 오후, 약속된 시간이 지났는데도 서울 탑골공원에는 민족대표들이 도착하지 않았다. 민족대표들이 유혈사태를 우려해 근처 태화관으로 자리를 옮겨 독립선언서를 낭독했기 때문이다. 민족대표가 없다고 그대로 해산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해야 했다. 눈치만 보며 웅성거리던 그때 한 청년이 팔각정에 올랐다. 그는 ...
입력:2019-03-07 08:05:01
신앙 선배들의 유훈을 마음에 새기다
임성빈 장로회신학대 총장(왼쪽 세 번째)이 6일 서울 광진구 장신대 마포삼열기념관 2층 전시실에서 3·1운동 민족대표 관련 전시물을 설명하고 있다.강민석 선임기자 ‘12인의 장서’는 1919년 3월 12일 서울 안동교회 김백원 목사와 승동교회 차상진 목사 등이 함께 쓴 서신이다. 조선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에게 조선의 독립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내용이다. 3·1운동으로 일경의 서슬이 퍼렇던 폭압의 시절에 기독인들은 끌려간 민족대표들에 이어 또 다시 선언문을 발표하고 낭독한 뒤 구속됐다. 비폭력 정신으로 끝까지 저항할 것을 촉...
입력:2019-03-06 08:05:01
“교회는 반상 차별 없어야”… 법복 벗고 독립·나라 재건 이끈 목회자
함태영 목사   일제강점기 당시 연동교회 전경.   김주용 연동교회 목사가 5일 서울 종로구 교회의 연동역사관에서 함태영 목사가 한자로 빼곡하게 주석을 써 넣은 성경책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앞줄에 남강 이승훈(1864~1930)이 있었다면 뒷줄엔 송암 함태영(1872~1964)이 있었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1인으로 제1선에 서서 기독교인을 조직했던 남강에 이어 송암은 제2선에서 민족대표들의 도장을 관리하고 선언서 작성을 주도하다가 마지막 서명 단계에서 빠졌다. 민족대표들이 투옥되면 그들의 ...
입력:2019-03-06 08:05:01
‘독립단 통고문’을 좇아 묵상으로 새벽을 깨우다
김경진 서울 소망교회 목사가 4일 강남구 교회에서 열린 새벽기도회에서 이사야 10장 말씀을 강해하고 있다. ‘신도는 매일 세 번 기도하되 일요일은 금식하며 매일 성경을 읽되 월요일은 이사야 10장, 화요일은 예레미야 12장, 수요일은 신명기 28장, 목요일은 야고보 5장, 금요일은 이사야 59장, 토요일은 로마서 8장으로 돌아가며 읽을 것이라 하였더라.’ 1919년 3월 3일부터 기독교인들에게 배포된 ‘독립단 통고문’의 일부이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유일하게 체포를 피한 뒤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
입력:2019-03-04 08:05:01
“1973년 교계서 최초로 3·1운동 기념예배 올려”
박춘화 창천교회 원로목사는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사에서 인터뷰를 갖고 “교회가 연합해 3·1운동 기념예배를 드린 것은 1973년이 처음이었다”며 “이를 계기로 한국교회에 기념예배가 시작됐다”고 회고했다. 김지훈 기자 한국교회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수많은 예배와 행사들을 치렀다. 지난 1일엔 대규모 연합예배도 개최돼 그 의미를 더했다. 한국교회는 해마다 3·1절을 맞아 교파를 초월해 기념예배를 드린다. 교회들이 연합해 3·1절 기념예배를 드린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서울 창천교회 박...
입력:2019-03-03 08:05:02
“한민족 독립선언, 세계에 전해 달라” 3·1운동 직후 기독 여학생, 윌슨 대통령에 호소의 편지
우드로 윌슨 미국 28대 대통령   1919년 3월 10일 ‘한국의 여학생들’(Korean School Girls)이 쓴 편지의 목차가 미국 장로교역사학회가 펴낸 ‘한국 3월 1일 독립운동’ 자료집에 기록돼 있다.   미상의 여학생들이 우드로 윌슨 대통령과 파리강화회의 참석자들에게 쓴 편지 전문. “우드로 윌슨 대통령님. 한국은 일본에 강제 합병됐습니다. 우리의 자발적인 뜻으로 된 일이 아닙니다.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길 원합니다.” 3·1운동이 있은 지 불과 아흐레 후인 1919년 3월 10일 한국의 기독인 여학...
입력:2019-02-28 08: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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