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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왕시루봉 선교사 유적 등록문화재 지정을”
지리산 왕시루봉 선교사수양관 유적지 관리를 위해 현장에서 거주하는 박년 목사가 최근 왕시루봉 등록문화재 지정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구례=강민석 선임기자 설립된 지 58년 된 전남 구례군 지리산 왕시루봉 선교사수양관 유적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한 ‘10만 기독교인 서명운동’이 오는 3월 1일부터 시작된다. 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보존연합(보존연합·공동이사장 소강석 인요한)은 5일 “왕시루봉의 선교사수양관 유적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보존하기 위해 등록문화재 지정이 필요하다”면서 “이를 위해 10만 기독교인 서...
입력:2020-01-05 08:05:01
[새해 여는 연합과 섬김] ‘ 전국 동시 특새로 힘차게
한국교회가 신년 특별새벽기도회와 섬김 행사로 2020년을 시작한다. 사진은 지난해 9월 예장통합 총회 당시 기도회 모습. 국민일보DB 한국교회가 경자년 첫 월요일부터 신년 비전을 담은 특별새벽기도회를 개최한다. 2020년대 새로운 10년을 맞아 한국교회의 혁신과 다음세대 신앙 전승, 지속가능한 교회 성장과 전도를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은 6일 오전 5시15분 총회장 김태영 목사가 시무하는 부산 백양로교회에서 한국교회 혁신을 주제로 새벽기도회를 연다. 7일에는 전북 전주시온성교회(황세형 목사)에서 다음세대 신앙 전승...
입력:2020-01-05 08:05:01
[한국기독역사여행] 십자가 종 울려라, 사람을 깨우면 대학이 깨어나리라
부산대 설립자이자 초대 총장이었던 윤인구 목사가 가나안 땅 무지개를 형상화해 발주한 옛 부산대 정문의 현재 모습. 문 꼭대기에 예배당 종을 달았다. 이 정문은 옛 대학본부(현 인문관) 건물과 함께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부산대 장전동 캠퍼스 개교 당시 석조 예배당(위)과 현재 모습. 부산대박물관으로 사용된다.   1950년대 말 부산대 장전동 캠퍼스 완공 당시 사진.   윤인구 목사가 그린 종 모양 캠퍼스 배치도.   윤인구 목사 (1903~1986)   무지개 정문 옆 대나무 숲에서 윤인구의 삶을 설명하는 김재호 교수....
입력:2020-01-03 01:50:01
[한국기독역사여행] 전도 백병전·산악전·시가전… 예수의 군사로 ‘부흥 전투’ 펼치다
충북 충주시 성봉채플. 부흥사 이성봉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사위 김동수 장로(한국도자기 창업주)가 헌당했다.   이성봉 (1900~1965)   이성봉 목사가 살았던 집과 같은 유엔 구호 후생주택. 유엔아카이브 사진   부흥사 이성봉 목사(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동료 목회자. 앞줄 왼쪽 두 번째가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이다. 1950년 이전 사진.   건강 악화에도 부축받고 집회지로 가는 이성봉(오른쪽). 1950년대 추정.   천막 교회에 꽉 찬 사람들. 호롱불 아래 밤 집회 모습이다. 1950년대 추정.   ...
입력:2019-12-20 02:15:01
[한국기독역사여행] 2400여명, 고아들의 아버지는 기쁘게 ‘여관’을 떠났다
서울 구기동 청운양로원 늦가을 텃밭과 벤치 풍경. 일제강점기 그리스도인 오긍선 박사가 운영했던 이 양로원은 1980년대까지 예배가 이어졌다. 1960년 서울 청운동에서 이곳 구기동으로 이전했다.   오긍선 (1878~1963)   의료선교사 오긍선이 섬겼던 군산 구암교회 초기 모습. 유리건판 사진.   경성보육원 시작 무렵의 남대문시장(칠패시장) 구걸 소년들과 오긍선 박사(오른쪽), 동역자 김병찬 장로(남대문교회).   경성보육원 후신 안양 ‘좋은집’ 의 봄 풍경. 안양기독보육원으로도 불렸다.   안양기...
입력:2019-12-06 02:30:01
[한국기독역사여행] ‘미국 새댁’ 밧줄 타고 한양 성벽 넘은 까닭은
1892년 10월 21일 밤 9시 조선 선교를 위해 한양에 도착한 매티 노블 선교사 부부가 밧줄에 몸을 의지해 넘었던 돈의문 부근 한양 성곽. 밤 8시쯤 성문이 닫혀 부득이 담을 넘어야 했다. 부부는 그해 8월 11일 고향 미국 펜실베이니아를 떠나 이날 한양에 도착했다. 사진은 돈의문 터 북쪽 서울기상관측소와 맞닿은 성벽 모습이다.   매티 노블 (1872~1956)   이화학당 기숙사 학생들 취침 모습.   매티 선교사(맨 오른쪽)와 가족. 왼쪽이 남편 아서 선교사다. 7남매를 두었으나 2명이 풍토병 등으로 평양에서 숨졌다.   1906년 6...
입력:2019-11-22 01:35:01
[한국기독역사여행] 서양 선교사 자복하고 무릎 꿇자 마침내 영성이 바로 섰다
한국 성령운동의 불길을 지핀 로버트 하디 선교사가 사역했던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지경리(옛 김화군 지경터)의 지경중앙교회 모습. 추수가 끝난 논가에 있는 미자립교회다. 이 일대는 6·25전쟁의 참화로 폐쇄됐다가 1960년대 이후 재건됐다.   하디 선교사 (1865~1949)   1930년 9월 서울 종로 YMCA에서 열린 하디 목사 성역 40년 기념 예배 신문 보도 사진.   캐나다 토론토 인근 해밀턴 하디 선교사 생가. 그가 다니던 교회도 남아 있다. 데비 제공   2009년 4월 하디 목사 손자 하디 워너 변호사 내외(위 사진 오...
입력:2019-11-08 01:35:01
[한국기독역사여행] “조선총독 가슴에 방아쇠를…” 일제가 전율한 ‘여자 안중근’
1934년 국제연맹 리튼조사단이 하얼빈에 왔을 때 왼손 약손가락 두 마디를 잘라 ‘조선독립원’ 혈서를 썼던 크리스천 독립운동가 남자현의 동상과 생가 모습. 손에 혈서 ‘조선독립원’ 천조각을 형상화했다. 남자현은 경북 영양에 살며 신앙을 받아들였다.   남자현 (1872~1933)   출옥 직후 아들 김성삼과 손자 김시련의 간병을 받는 남자현. 이윤옥 제공   남자현이 신앙생활을 했던 경북 영양 화전마을 포산동교회 터(왼쪽 전봇대 자리)와 마을. 1910년 설립된 교회는 1980년대까지 유지되다 폐쇄됐다.   ...
입력:2019-10-25 03:10:01
[한국기독역사여행] 공의를 펼치려 했던 시인의 푸른 꿈은 기도로 남아
강원도 강릉 사천면 김동명문학관 복원 생가(오른쪽)와 전시실. 마당의 푸른 잎은 관엽식물 ‘파초’로 김동명 시인의 대표 작품명이다. 김동명은 일본 청산학원대학 신학부를 나와 캐나다장로회 선교지역인 함경도 함흥·원산을 중심으로 기독교교육에 힘썼다.   김동명 시인 (1900~1968)   월남 후 두 딸과 함께 찍은 사진.   김동명문학관 시인의 원 저서 모음.   강릉 복원 생가 방 안의 벽난로 코쿨.   함흥 기독학교 동광학원. 설립에 참여했다.   영생학교 동료 교사 백석 시인(...
입력:2019-10-11 01:45:01
“한·일 기독인 하나돼 화해·평화의 주춧돌 됐으면”
지난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 맞춰 옛 상해한인교회 자리를 보도한 기사(위쪽 사진)와 100년 전 영국 선교사의 만세운동 폭행 피해 사건 전모를 다룬 기사. 국민일보DB 나름 장정(長征)이었다. 국민일보 종교부는 지난 1월 1일자부터 이달 10일자까지 ‘3·1운동 100주년과 한국교회’ 연중기획을 보도했다. 여름철 감면 기간만 빼고 매주 목요일자 지면을 고정으로 할애했다. 100년 전 신앙의 양심으로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해 일어선 성도와 교회 이야기를 비롯해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승해야 하는지를 ...
입력:2019-10-09 08:10:01
하와이 대한인국민회와 한인 교회 앞장서 광복운동 후원
미국 호놀룰루 누우아누 스트리트에는 1907년 하와이 최초의 한인 통합 단체인 한인합성협회가 사용하던 회관건물이 그대로 있다(오른쪽 붉은색 상가).   양효직 하와이 한인기독교회 목사가 광화문 누각 형태의 교회 앞에서 독립운동에 앞장선 이민교회의 역할을 소개하는 모습. 하와이 독립운동의 두 축이 있다면 한인 단체와 교회다. 한인 단체는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가, 교회는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와 한인기독교회가 독립운동의 주축이 됐다. 대한인국민회의 전신은 한인합성협회(韓人合成協會)다. 협회는 1907년 조국의 국권 광복 운동...
입력:2019-10-02 08:05:01
[한국기독역사여행] “사탄 세력, 주님 힘으로 물리친다”… 전도부인, 다이너마이트 품다
지난 21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현 시국을 성토하는 태극기집회가 열리고 있다. 이 자리는 1905년 10월 21일 을사늑약 체결 소식이 알려지자 전도부인이자 이화학당 교사였던 조신성이 이튿날 학생들과 함께 구국기도회를 열었던 곳이다(아래 당시 사진). 조신성은 훗날 무장 항일독립투쟁을 벌인다.   조신성의 이화학당 사감과 교사 시절 이화학당 학생들.   조신성 (1873~1953)   이화학당이 보이는 서울 정동교회와 정동길.   월남 후 부산 신망애양로원에서의 조신성 말년 모습.   정동교회 옆 항일여성독립운동...
입력:2019-09-27 03:15:01
하와이 한인 노동자의 신앙공동체, 독립운동 베이스캠프가 되다
1903년 하와이에 정착한 한인 이민자들이 세운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 116년 역사를 지닌 해외 최초의 한인교회다.   하와이 한인기독교회 안에 설치된 이승만 초대 대통령 동상. 이 교회는 이 전 대통령이 미국교회의 도움 없이 한인들을 모아 시작했다. 해외 한인 독립운동에서 미국 하와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막대한 독립운동 자금이 하와이에서 충당되었고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이곳을 거쳐 갔다. 하와이는 중국 상하이와 더불어 해외 독립운동의 ‘베이스캠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03년 시작된 하와이 이민역사 19세기 후...
입력:2019-09-25 08:05:01
[한국기독역사여행] “시류와, 이단과는 타협 없다” 의로워 외로웠던 실천가
1950~80년대 신흥종교에 맞섰던 신학자 신사훈 교수가 설립한 서울 성균관대 옆 새싹장로교회 현재 모습. 지금은 교회가 폐쇄됐다. 그는 이 예배당에서 예배를 보다 신흥종교 추종자들로부터 무릎을 꿇리는 수모를 당했다.   서울 새싹교회 지하에서 성경 원전 공부 지도(1989년).   신사훈 (1911~1998)   신사훈 고창 생가. 명창 신재효가 살던 집. 경향신문 제공   고창고보 동창회. 가운뎃줄 왼쪽 세 번째가 시인 서정주, 그 다음이 신사훈(1982년). 경향신문 제공   미국 유학 시절(1945년 무렵) 모습.   ...
입력:2019-09-06 02:00:01
中 룽징 한인 기독공동체가 일으킨 만세운동, 대륙을 깨우다
1944년 4월 중국 지린성 룽징시 인근 명동촌에서 열린 김약연목사기념비(파란색 표기) 제막식. 김 목사가 담임한 명동교회 성도들이 함께한 사진으로 명동학교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지금도 명동교회 앞마당을 지키고 있는 기념비의 모습. 국민일보는 올해 1월 1일부터 ‘3·1운동 100주년과 한국교회’ 연중기획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1부는 3·1운동 당시 종교인 피검자 가운데 51%가 기독인이었다는 점을 발굴하는 등 만세운동 때 한국교회의 역할을 총론으로 조명했습니다. 2부에선 종교부 기자들이 전국 20여곳을 찾아 ...
입력:2019-08-28 08:10:01
[한국기독역사여행] 기독교 여성인권 선각자로 서다
여메례 전도사가 경성성서학원(서울신대 전신)을 졸업하고 사역한 세종시 부강성결교회. 신실한 기독청년운동가, 교육자였던 그는 남존여비라는 악습과 맞서 싸우다 좌절했다. 부강은 사별한 두 번째 남편 양홍묵의 고향으로 여메례는 양홍묵의 전처 소생 자식을 데리고 살았다.   부강교회 내 여메례 불망비.   여메례 (1874~1933)   이화학당 출신 신여성 여메례 노수잔 박에스더(왼쪽부터).   학교 및 병원을 운영했던 옛 이화학당과 그 후신 서울 정동 이화여고 현재 모습(아래 사진).   여메례가 교사 및 교장...
입력:2019-08-23 01:15:01
[한국기독역사여행] “3년 내 죽으면 열녀 못 된다”… 청상과부, 예수 만나 구원받다
유을희 전도사가 열일곱 나이에 시집갔던 논산 노성면 백일헌종택(이삼 장군 고택). 배재학교를 다니던 남편이 죽고 생후 100일인 딸마저 죽자 환상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 이후 경성신학교를 졸업한 그는 첫 집회를 이 고택 앞마당에서 행하게 된다. 지금은 충남민속자료 7호이다.   유을희 전도사 (1904~1999)   이연형 천양원 원장(왼쪽)과 노성교회 임종한 목사가 ‘노성교회 약사’를 들고 찍은 사진.   1952년 유을희 전도사가 설립한 고아 시설 ‘천양원’. 입구에 예배당부터 세웠다.   한 외국...
입력:2019-08-09 02:50:01
[한국기독역사여행] 떼돈 번 맹인 점쟁이, 예수를 보다
1950년대 말로 추정되는 경기도 고양감리교회 성전건축 사진. 성도들이 깨끗한 옷을 입고 담소를 나누고 있다. 고양교회는 1897년 무렵 설립된 미국 남감리회 한국선교부 첫 교회였으나 1930년대 장로회와 감리회의 선교지 분할 정책에 따라 조직교회의 기능을 상실했다. 그러다 1954년 회복됐다. 이 컬러사진은 선교사가 찍은 것으로 판단된다. 고양교회 제공   1997년에 세운 100주년 표지석.   현재의 고양교회. 벽제관터 바로 옆이다.   백사겸 전도자 평전 표지.   백사겸 전도자 (1860~1940)   1950년대 말 새 예배당 완공 ...
입력:2019-07-26 01:15:01
‘독립운동의 요람’ 명동교회, 중 당국 방치로 붕괴 위기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 룽징의 윤동주 생가 입구에 있는 명동교회 전경. 건물 밖 십자가는 철거된 지 오래다.   창살이 둥글게 휘어져 붕괴 위험을 드러낸 예배당 모습. 1909년 중국 북간도 지역에 설립된 최초의 한인 교회이자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의 거점이었으며 시인 윤동주의 외삼촌인 김약연(1868~1942·사진) 목사가 시무한 명동교회가 건물 붕괴 우려로 폐쇄 조처된 것을 확인했다. 문재린 문익환 문동환 삼부자(父子) 목사를 배출한 명동교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와 한신대의 본향과도 같은 곳이다. 기장 교단은 즉각 ...
입력:2019-07-15 08:05:01
[한국기독역사여행] ‘삶은 조국에, 죽음은 하나님께’… 남편 뜻을 좇다
경기도 광주 시내에서 이천 방향으로 가는 길에 있는 대쌍고개. 6·25전쟁 무렵만 하더라도 대쌍고개와 소쌍고개를 연이어 넘어야 하는 험준한 곳이었다. 독립운동가 김예진 목사는 인민군에 의해 이 고개에서 집단 학살됐고 사모 한도신은 남편의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매장 터를 파헤쳐야 했다.   집단 학살 현장에서 가족을 찾는 사람들. 6·25전쟁 사진이다.   1964년 김구 선생 추도식에서의 한도신 사모(왼쪽 두 번째).   부부가 각각 어린 자녀를 안고 찍은 2남 4녀 가족사진.   서울 후암동 김예진 한도신 부부의 ...
입력:2019-07-12 01:05:02
美 선교사 1922년 제주 모슬포 여행기·사진 발견
제주 초기 교회·물허벅을 진 여성 사진…"사료가치 높다" 여행기에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 담아   닷슨 목사의 제주도 여행기 [임연철 미 드루대 연구원 제공] 1920년대 초반 제주도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미국인 선교사의 여행기와 사진 3점이 발견됐다. 발견된 자료는 미국 남장로교의 새뮤얼 켄드릭 닷슨(한국명 도대선)목사가 1922년 3월 제주도 모슬포에 와 일주일 동안 선교활동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정리한 여행기와 여행 과정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 3점으로 한국 선교 상황을 알리는 잡지인 '코리아미션필드'...
입력:2019-07-11 04:27:57
공주읍교회·영명학교 구심점으로 대규모 만세 함성 울리다
공주 만세운동의 구심점은 당시 기독교의 중심이었던 공주읍교회와 영명학교였다. 영명고등학교 개교100주년기념탑 뒤 흉상.   영명고 뒷편 근대문화탐방로에 설치된 ‘공주읍 만세일지’ 모자이크 그림.   공주제일교회 기독교박물관과 신홍식 목사 동상. 지난 5일 충남 공주 영명학당길 근대문화탐방로. 영명중고등학교(구 영명학교) 후문부터 공주제일교회까지의 500m 거리는 시간을 100년 뒤로 되돌려놓은 듯했다. 영명고등학교 입구 한복판에는 개교 100주년 기념탑이 우뚝 솟아있었다. 탑 끝에는 십자가가 빛났다. 기념탑 ...
입력:2019-07-10 08:10:01
교회·기독 학교·병원 하나돼 광주서 첫 ‘독립만세’를 외치다
광주 수피아여학교의 후신인 수피아여자고등학교에 세워진 ‘광주3·1만세운동기념동상’. 만세를 부르다 옥고를 치른 박애순 진신애 교사와 홍순남 박영자 등 학생 21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1919년 3·10 만세운동 직전 수피아여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비밀리에 태극기를 만들었던 기숙사 ‘수피아홀’ 전경.   송인동 호남신학대 교수가 지난달 20일 광주 남구의 광주양림교회 앞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가 기증한 ‘1919년 3·1운동 참여교회’ 동판을 들고 있다. “아! 우리 ...
입력:2019-07-03 08:10:01
[한국기독역사여행] 일본 교회의 ‘조선 문명화’ 시도 꾸짖다
조선의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한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의 고향 마을이 보이는 산언덕. 멀리 후지산이 보인다. 다쿠미는 야마나시현 고후감리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아사카와 다쿠미 (1891~1931)   1931년 4월 4일 임업시험소(현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치러진 다쿠미 고별예배. 아래 사진은 이문동 공동묘지 안장 후. 맨 오른쪽이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   고향 야마나시의 두 형제 자료관.   자료관 내 다쿠미의 임업 조사 형상물.   형 노리타가와 함께한 다쿠미(오른쪽).   서울 망우리 다쿠미의 ...
입력:2019-06-28 03:15:01
김교신 선생 집터에 자원 봉사센터 개관
한국순교자의소리(공동대표 에릭 폴리·현숙 폴리 목사)가 27일 서울 성북구 정릉로 ‘김교신 자원봉사센터’(봉사센터)에서 봉사센터 개관식을 했다(사진). 봉사센터는 1900년대 초반 한국교회 지도자였던 김교신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그가 살던 집터에 설립했다. 순교자의소리는 그의 집터에 들어선 주택을 매입해 내부 공사를 진행해 봉사센터를 만들었다. 봉사센터의 담장은 1927년 김교신 선생이 창간한 ‘성서조선’의 표지와 소제목들로 꾸몄다. 순교자의소리는 김교신을 비롯해 안창호와 조만식 선생의 신앙 정신을 따라 한국교회가 갱...
입력:2019-06-27 0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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