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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역사여행] 숨이 끊어질 듯한 일제 고문 속 주님을 만나다
손정도 목사가 일제강점기 유배(거주제한) 생활을 했던 전남 진도군청 앞 철마광장. 1912년 손 목사 유배 당시 진도 읍성 안으로 주재소 등이 있었다. 사진의 왼쪽 건물 쪽이 손 목사 유배 터다. 멀리 보이는 교회는 진도중앙교회로 1919년 설립됐다.   손정도 목사와 도산 안창호(왼쪽) 선생. 중국 상해 임시정부 시절이다.   1915년 진도 읍성 관아와 읍성 거리 풍경. 사진 왼쪽 초가 등이 손정도 목사 ‘정배소’로 추정된다. 오른쪽 모텔 사진은 정배소 자리다.   손정도 목사는 진도 유배를 끝내고 서울 정동교회에서 목회하...
입력:2021-07-16 01:20:01
[한국기독역사여행] 선대가 심은 믿음의 씨앗, 아들·손자 거치며 거목이 되다
충남 부여군 임천면 칠산침례교회 예배당과 칠산리 마을 풍경. 금강을 끼고 있는 한적한 농촌 교회다. 근대도시 군산과 강경 사이 나루터 마을로 19세기 말 침례교 펜윅 선교사 등에 의해 복음이 전해졌고, 칠산리 향반 장씨 가문 3대가 내륙으로 복음을 날랐다. 15년 전 부임한 조용호 목사가 강경교회·공주교회(현 꿈의교회)와 함께 ‘기독교한국침례회 3대 교회’의 위상을 되찾았다. 아래 흑백 사진은 1918~1949년 무렵 두 번째 예배당.   금강권 선교 개척자 펜윅 선교사의 백마를 이용한 전도 행차 모습. 조용호 목사 제공   한국침례...
입력:2021-07-02 01:05:01
성경전서 개역한글판, 김치 항아리에 숨겨 6·25 화마 피했다
사진=옥성득 교수 제공 1961년부터 30여년간 한국 교계에서 공인본으로 널리 사용했던 성경전서 개역한글판의 기초가 됐던 52년판 원고(사진)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될 뻔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원고는 인민군의 감시와 전쟁의 폭격 속에서도 대한성서공회 측 관계자의 기지로 김치 항아리에 숨겨진 채 보존될 수 있었다. 지난해 출간된 ‘대한성서공회사 Ⅲ’에 따르면 성서공회는 1949년 11월 38년판 개역 성경전서를 당시 한글맞춤법에 맞게 수정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옛말을 현대말로, 사투리를 표준어로, 그리고 띄어쓰기 등을 바로 잡는 일이었다....
입력:2021-06-27 11:10:02
[한국기독역사여행] 여성이 꿈을 펼 수 있도록 교육·의료 양 날개로 새 길을 열다
서울 발산동 이화여대 서울병원 내 보구녀관(한옥). 1887년 서울 정동에 설립된 한국 최초의 여성 전문병원으로 이화학당 설립자 메리 스크랜턴이 세웠다. 정동 보구녀관은 동대문으로 이전, ‘동대문 이대병원’으로 불렸다. 이화의료원은 2019년 이화여대 서울병원 개원과 함께 보구녀관을 복원, 기독교 선교병원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아래 흑백 사진은 초기 보구녀관이다.   메리 스크랜턴의 외아들 윌리엄. 어머니와 함께 조선에 들어와 의료 사역에 헌신했다.   경기도 수원 매향학교. 메리가 경...
입력:2021-06-18 00:45:01
[한국기독역사여행] 암울한 시대 태어난 ‘산토끼’ 민족 계몽의 심장을 깨우다
국민동요 ‘산토끼’ 작사·작곡자 이일래 선생 흉상. 경남 창녕군 이방초등학교 교정이다. 이일래 선생은 1920년대 말 이곳 교사로 근무하면서 나라 잃은 슬픔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산토끼’를 작곡했다.   이일래 (1903~1979)   1936년 12월 14일 크리스마스이브 성극 직후 기념사진. 문창교회로 추정.   1970년대 경기도 남양주 거주 시절 이일래 부부. 제자들에게서 온 편지를 읽고 있다. 여성동아 제공   1970년대 이방초교 교정. 지금은 학교 주위로 체험 및 기념 시설 ‘산토끼 ...
입력:2021-06-04 00:55:01
[한국기독역사여행] 믿음 안에서 둘이 하나로 ‘구국의 가시밭길’ 동행
지난 주말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백범 김구·최준례 부부 합장 묘역. 세찬 비에 봉분이 유실될까 봐 비닐로 덮어 놓았다. 최준례는 김구의 상하이 망명 정부 당시 그곳에서 산후 영양실조 등으로 숨졌다. 최준례 유해는 상하이에서 옮겨와 경기도 남양주 가족묘에 있던 것을 1999년 이곳에 합장했다. 멀리 아파트 뒤가 일제 주둔지·미군 용산기지 땅이다.   정부 주관 추모식 한 장면.   1924년 상하이 최준례 무덤. 뒤가 김구와 모 곽낙원. 두 아들 신(왼쪽)과 인. 비문은 조선어학자 김두봉이 썼다. 동아일보 보도 사진   서...
입력:2021-05-21 01:50:01
[한국기독역사여행] 한국교회 첫 여성목사, 회개의 신앙을 외치다
신사참배 거부 ‘출옥 성도’ 최덕지 목사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한 경남 고성 은월리교회 현재 모습. 통영 충무교회에서 기독교 교육을 받았던 최덕지는 도쿄 유학생 남편을 맞아 은월리 시댁 방 한 칸에 가정 제단을 마련한다. 은월리교회 시작이었다. 예장 재건 측은 출옥 성도 중심의 신앙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교파다. 아래 사진은 1960~70년대 예배당.   통영 충무교회와 시내가 보인다. 왼쪽 삼도수군통제사 건물(한옥) 부근이 최덕지 생가였다.   통영 기독교 사립 진명유치원 교사 시절 최덕지(맨 뒤 ...
입력:2021-05-07 01:55:01
[한국기독역사여행] 신실한 일꾼이 뿌린 믿음의 씨앗, 도처에 나무로 우뚝
경기도 양평군 상심리교회 느티나무홀. 이 교회의 다섯 번째 예배당으로 1985년 입당했다. 이곳에서 100m 지점에 새 예배당이 있다. 남한강 하류 나루터 인근에 있던 초기 예배당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피해를 보고 느티나무홀 자리로 옮겼다. 붉은 종탑은 홍금산 집사 등이 치던 새벽종이다. 아래 사진은 강 남쪽에서 본 상심리 풍경으로 정중앙 붉은 벽돌 건물이 교회 본당이다.   홍금산 집사 (1904~1974)   홍금산·신선자 부부. 1950년대 말로 추정된다.   홍금산 집사의 딸 옥희(왼쪽)·은분 권사. 아기는 손녀.   상심...
입력:2021-04-23 00:15:01
[한국기독역사여행] 아버지 순교지에 돌아온 아들, 원수를 사랑으로 갚다
이판일 장로, 이판성 집사 형제의 순교지인 전남 신안 임자도 ‘백산 솔밭’ 현장. 2017년 성결교인들이 순교자의 “용서하라”는 뜻을 받들어 기념비를 세웠다. 신안지역 순교사적지를 안내한 변정섭 목사(왼쪽·목포 옥빛교회)가 대파밭 주인과 대화하고 있다.   이판일 (1897~1950) 열세 살에 두 살 많은 임소애(순교)와 결혼. 슬하에 3남 4녀. 1932년 무렵 문준경 전도사로부터 신앙을 접한 후 임자교회(진리교회) 장로가 됐다. 30년대 후반 교회 사역자가 부임하지 않자 교회를 이끌고 인근 교회를 돌보았다. 일제 말 동...
입력:2021-04-09 01:30:01
[한국기독역사여행] 걸인·빈민 구제 애끓더니 스물넷에 스러지다
방애인 (1909∼1933)   일제 강점기 ‘방애인 선생’이 부임해 학생들을 가르쳤던 전북 전주 기전여학교. 지금은 기전여중·고교와 기전여대가 됐다. 사진은 기전여대 본관으로 경사지붕 박공 부분의 타일 모자이크 성화가 미션스쿨임을 말해준다. 조형물은 이 학교 출신 양궁선수들의 올림픽 메달 획득을 기념해 설치한 것이다.   1929년 3월 2일 전주여자기독청년회원들과 함께한 사진. 앞줄 왼쪽 세 번째가 방애인 선생이다(위 사진). 일제강점기 전주고아원. 방애인 선생이 전주서문교회 전도실에서 시작했고 전주YWCA...
입력:2018-08-24 02:55:01
[한국기독역사여행] 러시아에서 온 선교사, 마음밭에 진리를 뿌리다
유대계 러시아 출신 권서인 피득 선교사가 1895년 복음을 전했던 여주 장터(현 한글시장). 초봄을 맞아 여주 참빛교회 김에스더 전도사(왼쪽)와 신영식 집사가 행인에게 전도지와 마스크를 나누어 주고 있다. 피득은 구약성서 첫 한글 번역자이기도 하다.   피득 설립 성남의 첫 교회 둔전교회 예배당. 6·25전쟁 직후 증축 후 미션스쿨 효성학교 학생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예배당은 현 성남공군기지(아래 사진) 자리였으나 1970년대 말 기지 건설로 성남 모란으로 이전했다.   경기도 양평 지평교회. 경기 남동부를 집중적으로 전도했던 ...
입력:2021-03-26 01:20:01
[한국기독역사여행] 서해안·금강 따라 뱃길 전도… ‘호남 복음화’ 길이 되다
전북 군산 비응항-고군산열도-부안 변산을 잇는 새만금방조제의 해질 녘 풍경. 사진의 섬은 고군산열도이다. 사진 속 붉은 십자가가 빛난다. 고군산 지역은 복음화율이 30~35%에 달해 전국 최고다. 19세기 말 전킨 선교사는 군산선교부를 전진기지로 수로를 따라 복음을 전했다. 서종표 목사(군산중동교회) 제공   전킨·드루 선교사가 타고 온 군산포 기범선.   군산 대야 만자산교회(지경교회) 초기 기념사진.   군산 영명학교(현 군산제일고)와 복원된 영명학교. 전킨 선교사 등이 설립했다.   초기 교회에서 사모 메리 ...
입력:2020-06-12 01:20:02
[한국기독역사여행] 순교로 지킨 믿음, 지역 복음화 밀알이 되다
경기도 성남시 모란시장 인근 둔전교회. 1904년 피득 선교사 등에 의해 설립된 둔전리교회는 1977년 성남 공군기지(서울비행장)가 둔전리 일대에 건설되면서 현 위치로 이전했다. 해방 직전 함태영 목사(부통령)가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교회를 지켰다. 송파·강남 및 청계산·남한산성 자락 복음화의 중심이었다.   초가 첫 성전. 신앙의 순수함이 묻어난다.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1948년 성전 봉헌 후 김태수 장로 가족. 김 장로 가문은 4대째 섬긴다.   1970년대 초 여름성경학교 율동 시간. 지금은 비행장이 된 둔전리 풍경...
입력:2021-03-12 00:55:01
[한국기독역사여행] 구국의 십자가 지고 구절양장 600리 길을 걷다
3·18영해삼일만세운동을 주도했던 김응조 목사의 고향 경북 영덕군 지품면 낙평리 낙평장로교회 현재 모습. 경성신학교 학생 김응조가 서울 3·1만세 시위 직후 고향으로 내려와 낙평교회 교인 등과 영해 장날 독립만세 시위를 계획했다. 아래 사진은 멀리서 본 마을 풍경. 좌우로 구세군 낙평영문과 낙평장로교회 모습이 보인다.   3·18 시위 당시 만세운동이 시작된 영덕 영해 면사무소. 옛 조선관아 터다.   2018년 3월 17일 낙평교회와 낙평영문 등이 주도한 ‘횃불점화기념예배’.   3·1운동 당시 ...
입력:2021-02-26 00:35:02
[한국기독역사여행] 우리말 성서 번역 선각자, 한국 복음화 길을 열다
멀리 노령산맥 괘일산 정상이 보인다. 곡성 옥과 출신으로 괘일산 자락에 살던 이수정은 이 길을 통해 한양을 드나들었다. 유현종 소설 ‘들불’에서는 부산에서 전도활동을 하던 이수정이 전도한 매서인들이 동학농민전쟁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수정 (1842~1886·생몰 추정)   일본 기독교인들과 함께한 이수정(앞줄 왼쪽부터 다섯 번째).   이수정(뒷줄 중앙)과 그를 전도했던 낙스(뒷줄 왼쪽 첫 번째) 선교사.   이수정이 세례받은 도쿄 노게스초교회 현재 모습. 당시 낙스 선교사가 입회...
입력:2021-02-05 02:00:01
[한국기독역사여행] 일제 갖은 고문 속에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다
독립운동가 선우훈 장로가 1912년 1월 일제 헌병들로부터 모진 고문을 받았던 서울 남산 옛 조선총독부 터. 숭의여전 교문에서 본 풍경으로 ‘서울 애니메이션센터’ 공사가 한창이다. 1950~70년대 KBS·국토통일원 자리이기도 했다. 이 일대는 총독부 부속 건물이 즐비했다. 선우훈은 고문을 이겨내고 끝까지 저항했다.   청계천2가 수표교. 선우훈이 포승에 묶여 총독부로 끌려가며 한탄하던 곳이다.   총독부 터 앞길. ‘국치의 길’로 역사 답사 코스다.   일제가 작성한 항일인사 기록 카드. 선우훈은 19세에 ...
입력:2021-01-22 01:10:01
[한국기독역사여행] “주님 위해 살겠습니다” 낮은 곳에 말씀의 빛을 비추다
서울 도원동 용산제일교회. 2018년 11월 어느 주일 아침 모습이다. 한국의 영성운동과 빈민구제에 힘쓴 강순명 목사가 천막을 치고 시작했던 옛 도원동교회(아래 흑백 사진) 터이기도 하다. 강순명은 해방~6·25전쟁 기간 용산역 뒤편 지금의 백범로를 중심으로 영혼 구원에 힘썼다.   전도사관학교였던 연경원을 찾은 백범 김구(앞줄 중앙)와 아들을 안고 있는 강순명(백범 오른쪽).   광주광역시 천혜경로원 1950년대(추정) 모습. 백범과 사진을 찍었던 그 아들이 현 원장이다.   용산역 철로. 넝마주이 등에게 복음을 전하던 교...
입력:2021-01-08 01:25:01
[한국기독역사여행] 회개한 바울처럼… 삶으로 가난한 이웃을 품다
무등산 국립공원 입구에서 1시간 남짓 걸어 올라가면 만나는 오방수련원. 호남 영맥을 잇는 오방 최흥종 목사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전후 걸인과 결핵·한센씨병 환자를 거두어 보살피던 산속 예배당이었다. 이 수련원은 현재 종교화해와 소통 모임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무등산 증심사 위 신림기도처(현 오방수련원) 초가 앞에서의 최흥종 목사(오른쪽).   유진 벨과 조선 청년들을 교육했던 최흥종. 광주 숭일학교 옛터 기념석과 교정 향나무다.   옛 광주제중원. 최흥종이 나환자와 결핵환자를 구제했던 곳이다. 광주 ...
입력:2020-12-04 01:20:01
[한국기독역사여행] 미국 열차에서 출발한 하나님 선교 역사, 조선에 이르다
서울 YMCA 뒤편 중앙감리교회 ‘가우처 기념예배당’ 터(노랑 점선). 1920년대 건립된 예배당은 1975년 민간에 매각됐고 2015년 무렵까지 남아 있었다. 왼쪽 위 붉은 예배당은 승동장로교회. 강민석 선임기자   존 프랭클린 가우처 (1845~1922)   매클레이 선교사와 김옥균. 조선의 교육·의료 선교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일본 청산학원대학의 관동대지진 전 모습. 가우처 기부로 세워졌다.   1950년대 추정 승동교회 뒤로 보이는 가우처 기념예배당(화살표).   2004년 출판사 창고로 사...
입력:2020-11-20 01:05:01
[한국기독역사여행] 망명가 이 박사 부인의 연단, 성경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망명가 이 박사 부인 집’으로 불렸던 창신동 지장암 일대. 동대문역에서 혜화문 방향 660m 지점이다. 왼쪽 도성으로 들어서면 이화장이 눈 아래로 보인다. 해방 후 귀국한 이승만은 본처 박승선 전도사를 반기지 않았다. 프란체스카와의 결혼은 사실상 중혼이었다.   현 이화장 경내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 이곳에서 초대 내각이 구성됐다.   서울 정동 배재학당과 아펜젤러 선교사 동상. 이승만은 배재학당 입학 후 신앙을 가졌다.   박승선 전도사가 출가 전 살던 서묘 일대. 지금의 한국은행 일부로 남대...
입력:2020-11-06 01:15:01
[한국기독역사여행] “복음 위해 섬 끝까지 가리다”… 소명, 끝섬에 닿다
1950~70년대 전북 군산 앞바다 고군산군도 11개섬 복음화에 힘쓴 추명순 전도사를 기리기 위한 활동이 시작됐다. ‘기도의 어머니’로도 불리던 추명순 전도사로부터 복음을 받아들이고 목회자가 된 이들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진은 1980년대 추 전도사가 섬과 섬 사이를 잇는 노둣길을 따라 전도에 나서는 모습이다. 추명순 전도사 기념사업회 제공   1960년대 초로 추정되는 말도교회 모습.   추명순 전도사 (1908~1994)   1989년 무렵 말도교회 3대 임봉학 목사와 설립자 추명순.   ...
입력:2020-10-23 00:35:01
[한국기독역사여행] “장차 조선교회 위해 내 남편 순교 제물로 달라시니…”
경남 창원시 진해구 웅천중로 삼거리 모습.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거부로 평양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던 한상동 목사 등을 옥바라지하던 김차숙 사모가 사식 등을 준비하던 곳이다. 1940년대 후반 김차숙의 여동생 김인숙 부부가 이곳에서 약방과 잡화점을 운영했다. 지금도 약국과 마트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이곳 웅천은 순교자 주기철 목사의 고향이기도 하다.   예장고신 측 모태 삼일교회. 1951년 6·25전쟁 중 설립.   김차숙 (1902~1977)   주기철·한상동 목사가 담임했던 부산 초량교회. 예장합동 측.   김차숙이 옥바라지...
입력:2020-10-09 01:20:01
[한국기독역사여행] “위기의 한국 도와야 합니다”… 믿음의 자녀, 총을 들다
서울 은평평화공원의 쇼 대위 동상. 이 자리는 1950년 9월 ‘녹번리 전투’가 있었던 백련산 자락이다. 조선에 파송된 선교사 아들 쇼는 서울 탈환을 위해 진격하다 인민군 매복조 총탄에 숨졌다. 뒤로 보이는 교회는 1954년 설립된 은평감리교회다. 독립운동가 윤성렬 목사가 6·25전쟁 때 아들 윤대영을 금화고지 전투에서 잃고 설립한 기념교회다.   1939년 평양외국인학교를 졸업한 쇼(왼쪽)가 미국 유학에 앞서 아버지 서위렴과 찍은 사진.   쇼 대위 부인 주아니타(앉은 사람)와 차남 스티븐 쇼 부부.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2020-09-18 01:45:01
[한국기독역사여행] “하나님 앞에 평등”… 화산 같은 기개로 권위주의에 맞서다
전북 정읍시 태인면 매계교회(예장합동 측) 전경. 1910년 전후로 동학농민군 출신 최중진 목사가 목회했던 곳이다. 최중진은 정읍 고창 김제 등을 전도 구역으로 삼았다. 미국남장로회 전주선교부 선교사들의 지나친 서구식 목회에 반발한 최중진은 민족주의 기독교 성향을 보임으로써 결국 제명당하고 만다. 아래 흑백 사진은 초기 매계교회다.   최중진 목사 (1871~1932)   믿음의 삼형제. 왼쪽부터 최중진, 광진(장로), 대진(목사).   평양신학교 2회 졸업생들과 최중진(앞줄 맨 오른쪽).   최중진에 의해 설립된 정읍제일교회(기...
입력:2020-09-04 01:10:02
[한국기독역사여행] 노예, 여자 해방… ‘해방의 복음’으로 일제에 맞서다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의 정신여학교(서울 정신여·중고 전신) 학생 및 교사 시절 학교 본관(가운데 붉은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확인됐다. 김마리아 흉상은 본관과 강의동 사이 회화나무 아래 있다. 본관 뒤 흰 건물이 서울보증보험, 그 뒤가 연동교회다. 아래 흑백 사진은 1912년 찍은 본관이다. ‘언더우드관’으로 불렸으며 400여년 수령의 회화나무가 보인다. 정신여·중고는 1978년 이전하면서 용지를 매각, 개인 소유가 됐다. 새 소유자의 유언에 따라 본관과 강의동·강당(사진 왼쪽), 운동장(주차장) 등이 보존되고 있다.   ...
입력:2020-08-21 01: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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