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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원정대’ 첫 성지순례 여행… “현장서만 느낄 수 있는 영성 체험”
국민일보 ‘믿음의 원정대’ 1기 참석자들이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 내 고 한경직 목사의 우거처 앞에서 전정희 국민일보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광주=송지수 인턴기자 국민일보가 한국교회 130여년의 역사를 돌아보고 기독교 신앙을 이어가기 위해 꾸린 ‘믿음의 원정대’가 지난 8일 첫 원정을 다녀왔다. ‘믿음의 원정대’는 해외에 치중된 성지순례 여행과 달리 국내 기독교의 숨겨진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국내 성지순례 프로그램이다. 지난 10년간 전국의 기독교 문화유산을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한 전정희 ...
입력:2019-06-09 08:10:01
[한국기독역사여행] "하늘 가는 밝은 길이…” 울돌목 바다, 오교남 전도사 순교지 되다
남쪽에서 바라본 벽파교회. 반대편이 벽파항과 명량해전의 울돌목 바다이다. 이 교회 동산 자락에는 이충무공전적비와 그가 해전을 지휘하던 벽파정이 있다.   오교남 전도사 (1927~1950)   1973년 교인들이 직접 벽돌을 빚어 지은 벽파교회.   순교자에 대한 기억과 증언. 90대 주나단 권사.   울돌목과 벽파정. 명량대첩 현장이자 오교남 일가 수장 바다이다.   옛 예배당이 지금도 남아 민가(아래)로 사용된다. 흑백 사진 속 인물은 설립자 고 정애심과 증언자 주나단 권사로 추정된다.   ...
입력:2019-05-17 03:00:01
[현장] 성경이 처음 전해진 곳에 그 역사를 간직하다
충남 서천 ‘한국최초 성경전래지기념관’ 전경.   이병무 관장이 1611년판 킹 제임스 성경을 소개하는 모습. 이 관장은 이 성경이 1816년 마량포구에서 영국군이 조대복 첨사에게 선물한 것과 같은 판본이라고 설명했다. 25일 충남 서천군 마량포구엔 서풍이 불어왔다. 출어를 앞두고 어구를 정리하는 어부들의 손길이 작은 포구를 생기있게 만들었다. 1816년 9월 4일 이 포구에 영국 해군 알세스트호와 리라호가 닻을 내렸다. 영국군의 배에 오른 건 이승렬 현감과 조대복 첨사(무관)였다. 양국 군인과 관료는 상대방의 문화에 호기심이 ...
입력:2019-04-25 08:05:01
‘믿음의 실천’ 충실했던 평신도들 최대 만세운동 일으키다
1910년대 강화읍교회 앞에서 찍은 교인 사진으로 이 교회에서는 조구원 조봉암 오영섭 등 엡웟청년들이 회합을 갖고 지하독립운동을 벌였다. 강화기독교역사연구소 제공   1949년 김구 선생(왼쪽 세 번째)이 강화를 방문했을 때 모습으로 김구 선생은 당시 강화읍교회와 합일학교 등을 방문했다. 강화기독교역사연구소 제공   강화중앙교회(옛 강화읍교회)에 설치돼있는 삼일독립만세운동기념비 모습. 임보혁 기자 인천 강화도에 있는 강화중앙교회에 지난 18일 110명의 학생이 모여들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인 전인기독학교 청소...
입력:2019-04-24 08:05:01
설교로 용기 얻은 제암리 교회 성도들 장날마다 ‘독립 만세’ 외쳐
최용 제암교회 목사가 지난 15일 경기도 화성 제암리 3·1운동순국기념관의 순국기념비를 가리키며 이 자리에 1919년 불탄 제암리 교회가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제암리 학살 직후 현장을 찾은 프랭크 W 스코필드 선교사가 촬영한 학살 현장 사진.   3·1운동순국기념관에서 15일 열린 ‘4·15 제암리 학살사건 100주년 추모제’에 참석한 화성 월문초등학교 학생들이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있다. 지난 15일 오전 10시 경기도 화성 향남읍 제암리 3·1운동순국...
입력:2019-04-17 08:05:01
상해한인교회, 1919년 자리잡은 터 찾았다
1919년 상해한인교회가 있던 자리엔 1931년 염업은행이 새 건물을 지었다. 지금은 중국청통이라는 유통회사가 사용 중이다. 장창일 기자   상해한인교회가 빌려 사용하던 로리기념교회와 미화서관의 옛 모습. 이혜원 교수 제공   1884년 제작된 상해현성상조계전도에 ‘미화서관(美華書館)’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다(붉은 동그라미). 이혜원 교수 제공 대한민국 임시정부 출범의 구심점이 된 1919년 상해한인교회(중국어 표기는 上海鮮人敎會) 터가 11일 처음으로 확인됐다. 이 교회의 정확한 위치는 지난 100년 동안 ...
입력:2019-04-11 08:05:02
만세운동 세계에 알린 석호필… 조국 독립 외친 ‘세브란스의 33인’
여인석 연세대 의대 의사학과 교수가 지난 4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3·1운동 당시 해부학 실습실에 독립선언서를 숨긴 장면을 담은 기록화를 설명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스코필드 박사가 촬영한 제암리 학살 현장.   세브란스의전 시절 프랭크 W 스코필드 박사. 1919년 3·1운동 당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세균학 교수였으며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린다.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최연소자였던 세브란스병원 제약주임 이갑성 남대문교회 집사(국민일보 2월 21일자 31면 참조)에게 거사 일정을 전해 듣고 서울...
입력:2019-04-10 08:10:01
펜윅 선교사 토착화 선교 정신 되새긴다
한복을 입고 부채를 들고 있는 펜윅 선교사의 모습. 기독교한국침례회 제공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 회의실에서 열린 펜윅 선교 130주년 기념 간담회. 박종철 총회장(가운데)이 행사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송지수 인턴기자 말콤 C 펜윅(Malcolm C Fenwick·1863∼1935) 선교사의 한국 선교 130주년을 맞아 그의 토착화 선교 정신을 되새기고 기념하는 행사가 펼쳐진다. 캐나다인 펜윅 선교사는 1889년 평신도 선교사로 한국 땅을 밟은 뒤 기독교한국침례회의 모체인 대한기독교회를 창설하는 등 46년간 굵직한 사역...
입력:2019-04-08 08:05:01
[한국기독역사여행] “우상에는 절하지 않는다”… 옥중서도 신앙 절개 지켜
제주중앙교회는 1951년 6·25전쟁 피난민이 육지에서 몰려들면서 조직 교회로 뿌리를 내렸다. 당시 피난민은 해군 상륙작전함(LST) 등을 타고 입도했다. 그들은 천막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께 감사했다. 지금의 교회는 2013년 신축한 것으로 구원 방주와 LST를 형상화했다.   현 제주시 오라벌 제주중앙교회 정원 한쪽에 자리한 도인권 목사 목회 기념비. 그는 제주에 7개 교회를 개척했다.   도인권 목사 (1880~1969)   서울 강북삼성병원 경교장 2층 테라스에서 북행 이유를 설명하는 김구(가운데). 왼쪽이 도 목사로 추정된다. ...
입력:2019-04-05 03:05:01
성도는 태극기·독립선언서 배포… 담임목사는 총독부에 규탄서
서울 승동교회 소속으로 1919년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김원벽 청년면려회장과 차상진 목사(사진 왼쪽부터).   승동교회 16대 담임인 최영태 목사가 3일 서울 종로구 교회 앞에서 교인들이 주도했던 독립운동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송지수 인턴기자 서울 승동교회는 1893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인 새뮤얼 무어(1860~1906) 목사가 설립한 교회다. 한국교회사적으론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과 통합이 갈라지는 분기점에 있던 상징적 교회다. 신학적 차이로 예장통합은 1959년 9월 서울 연동교회에서, 예장합동은 같은 해 11월 승동교회에서 별도의 ...
입력:2019-04-03 08:05:01
만세운동·일왕 사진에 절 거부해 옥고… 한국전 중 평양서 순교
기현두 새온교회 목사가 지난 27일 서울 노원구 교회 목양실의 순교자 기념 포스터 앞에서 부친의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기현두 목사의 부친 기주복 목사.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한다. 마음속 신앙과 머릿속 지식 역시 빼앗지 못한다. 독립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르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를 택한 목회자 후손이 전하는 메시지다. 수락산 등산로 입구에 있는 서울 노원구 상계3단지. 15~17평 임대아파트 옆에 자리한 새온교회에서 지난 27일 기현두(70) 목사를 만났다. 기 목사는 1970년대 장로회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
입력:2019-03-31 08:05:01
“조선의 일은 조선 사람이 다스려야” 초교파 독립운동 앞장
3·1운동 직후 민족대표 33인 중 1명으로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던 오 목사의 모습.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최이우 목사가 26일 서울 종로구 종교교회에 마련된 오화영 목사 사택 터 안내문 앞에서 오 목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송지수 인턴기자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으로 말미암는 것이나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하고 주린 자에게는 쓴 것이라도 다니라.”(잠 27:6~7)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오화영 목사가 1924년 지인에게 붓글씨로 건넨 성경 구절이다. 3&mi...
입력:2019-03-27 08:05:01
[현장] “독립운동 그때로 시간여행 온 듯”
이덕주 전 감신대 교수(오른쪽)가 23일 서울 중구 정동길 정동제일교회 벧엘예배당 앞에서 서울YMCA 독립운동 기독 유적지 답사 참가자들에게 3·1운동에 참여했던 이 교회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1919년 1월 22일 조선총독부는 고종황제가 덕수궁 함녕전에서 승하했고 3월 3일 국장을 치른다고 발표했습니다. 국민 사이엔 황제가 독살됐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졌죠. 억눌려있던 분노가 터졌고 결국 3·1 만세운동으로 귀결됐습니다. 바로 이 자리가 독립운동의 출발점입니다.” 이덕주 전 감리교신학대 교수가 23일 서울 중구 ...
입력:2019-03-24 08:05:01
[한국기독역사여행] 독립선언서 품은 기독학생, 호남 만세운동 불씨 놓다
전북 익산시 중앙동 옛 삼산의원 건물의 이전 설치가 한창이다. 세브란스의전 출신 독립운동가 김병수 장로가 일제강점기 운영했던 병원으로 2005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구 삼산의원’으로 불렸으며 인근에서 옮겨졌다. 김병수는 이곳에서 가난한 자들을 돌봤다.   김병수 장로 (1898~1951)   치문초교 뒤 김씨 문중 사택을 송민영 교장이 안내했다. 호남 명문가가 기독교 사상으로 시작한 학교다.   김병수가 졸업한 현 서울역 앞 세브란스의전 사진. 학교 앞에서 3·1 만세운동을 했다.   김병수 등이 신...
입력:2019-03-22 02:05:01
“주권국 한국, 일본이 식민통치하며 기독교 박해” 세계에 알려
김규식 장로(앞줄 왼쪽 다섯번째)가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 상하이로 떠나기 전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열린 전별식 단체사진. 김 장로 왼쪽이 새문안교회 설립자인 호러스 언더우드 선교사다. 새문안교회 제공   37세 때의 김 장로 모습. 새문안교회 제공   윤경로 새문안교회 은퇴장로가 지난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규식 장로와 새문안교회, 언더우드 선교사의 인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열강이 약소국을 식민지로 삼던 제국주의가 세계를 휩쓸던 19세기 말 20세기 초. ‘자신의 말과 글이 있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문...
입력:2019-03-20 08:05:02
“예수여 어서 오소서, 이 땅에”… 고문에 굴하지 않고 독립 외치다
김마리아 선생   김마리아 선생의 유품인 한복 저고리. 일경의 고문으로 오른쪽 가슴이 주저앉았기에 저고리 한 쪽이 짧다. 강민석 선임기자   김마리아 선생 서거 75주기를 맞이한 13일 서울 송파구 정신여중고 교정에선 추모식과 학술대회가 열렸다. 오른쪽부터 김마리아선생기념사업회 이미자 회장, 이송죽 부회장, 최성이 정신여고 교장. 강민석 선임기자 올해는 2·8독립선언과 3·1운동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100년 전 3·1운동 민족대표 33인과 배후까지 망라된 48인 등 수많은 남성 독립투...
입력:2019-03-13 08:05:01
3·1운동과 함께한 순교자 25인의 삶 오롯이
한국교회순교자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정영택 목사(왼쪽)가 12일 서울 중구 영락교회 50주년 기념관에서 순교자들의 삶이 담긴 전시물을 설명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기독교인이 앞장선 1919년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독립운동을 하다 30년대부터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고초를 겪는다. 45년 해방을 맞이하지만 분단과 6·25전쟁 과정에서 교회를 지키려다 목숨을 잃는다. 한국교회 순교자들의 양상이다. 12일 한국교회순교자기념사업회가 서울 중구 영락교회(김운성 목사) 50주년 기념관에서 진행 중인 ‘3·1 독립만세운동 100주년 기념 ...
입력:2019-03-12 08:05:01
한국·이탈리아 음악가들 ‘신석구 목사의 삶’을 연주하다
지난 10일 오후 3시(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연합교회에서 한상욱의 지휘로 서울 수표교교회와 로마연합교회의 연합찬양대가 3·1운동 100주년 기념 칸타타 ‘주를 위해’를 연주하고 있다. 이탈리아 현지에서 활동 중인 바리톤 김강순(오른쪽)이 신석구 목사 역을 맡았다.   신석구 목사   로마연합교회 홍기석 목사.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의 십자가 늘 사랑하고, 안일한 생활을 취하지 않네. 우리가 잘 입을 때 주님 벗으심 우리가 잘 먹을 때 주의 주리심 잊어버리기 쉽네. 우리는 안일을 구하지 ...
입력:2019-03-12 08:05:01
첫 선교사 아펜젤러가 기틀 잡고, 33인 신홍식 목사 ‘민족운동 산실’ 역할
인천 최초의 서구식 개신교 예배당인 ‘제물포 웨슬리 예배당’ 앞에 내리교회 교인들이 모여 있다. 인천 내리교회 제공   내리교회의 선구자들인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왼쪽), 김기범 목사(가운데)와 조지 존스 선교사 동상 모습. 인천 내리교회 제공 인천 중구 내리교회(김흥규 목사)는 134년 역사의 한국교회에 어머니 같은 교회다. 내리교회는 감리교 최초의 한국선교사인 헨리 G 아펜젤러(1858∼1902)와 그의 부인이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 제물포항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한국의 근현대사와 함께해온 만큼 3·1운동과도 관련이 ...
입력:2019-03-07 08:05:01
[현장] 독립운동 기록한 벽돌집, 95년 전 그대로 복원
서울 종로구 사직로 딜쿠샤를 방문한 학생들이 10일 인솔교사로부터 딜쿠샤의 역사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복원 공사가 완료된 딜쿠샤의 내부 예상도. 그곳을 찾아가는 길은 과거로의 시간여행 같았다. 서울 종로구 사직로의 골목으로 10일 들어서자 ‘홍난파 가옥’이 방문객들을 맞이했다. 언덕 위로 보이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이정표 역할을 했다. 은행나무를 보며 걸어가니 막다른 길 끝에 커다란 서양식 주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3·1운동과 제암리 학살 사건을 전 세계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1875~1948)가 직접 짓...
입력:2019-03-10 08:05:01
[한국기독역사여행] 해방과 전쟁 사이, 양을 지키다 희생된 목자
서울역 앞 동자동 서울성남교회 석조예배당. 쪽방촌이었던 이 지역은 교회만 남기고 대형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석조건물은 기독교 유산으로 보존됐다. 사진 오른쪽 은행나무는 석조예배당을 건립하면서 심었다.   송창근 목사 (1898~1950)   서울 동자동 일본 천리교 적산가옥에서 시작된 서울성남교회.   조선총독부 경시청이 작성한 송창근 목사에 대한 조서(위 사진). 서울성남교회 석조예배당 송창근 목사의 성빈(聖貧) 기념비.   교회 앞 쪽방 골목에는 선교회 등이 있어 주민을 돕고 있다(위 사진). 캐나다 장애교인 ...
입력:2019-03-08 02:35:01
민족대표 이필주·박동완 배출… 주요 인물 모두 끌려가 반년 넘게 문 닫기도
송기성 정동제일교회 목사가 지난달 8일 서울 중구 교회 앞마당에서 이필주 목사 사택터 표지판을 설명하고 있다. 송지수 인턴기자   1918년 벧엘예배당 안에 설치된 파이프오르간. 한국 최초의 파이프오르간이며 파이프 뒤편 송풍 공간에서 비밀리에 독립운동 유인물이 제작됐다. 송지수 인턴기자 3대 현순(1880~1968) 4대 손정도(1872~1931) 5대 이필주(1869~1942) 목사는 모두 독립운동가였다. 이 목사와 박동완 전도사까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2명을 배출했다. 담임목사와 전도사, 이웃한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학생들은 물론 청년들까지 ...
입력:2019-03-07 08:05:01
“강토 빼앗겼는데 외면하면 더 큰 죄”… 민족대표 중 3명이 담임목사
서울 서초구 명달로 수표교교회 본당 모습. 교회는 1984년 서울 중구 청계천 근처에서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 수표교교회 제공   1929년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정치범 카드’. 신석구 목사는 이 카드를 갖고 다니면서 자신이 불온사상가임을 알리곤 했다. 국민일보DB 서울 서초구 명달로 수표교교회는 민족대표 3명을 배출했다. 민족대표 신석구 오화영 정춘수 목사가 이 교회 담임목사를 지냈다. 수표교교회를 상징하는 인물인 신 목사는 1918년 부임한 뒤 민족대표에 참여하면서 투옥돼 1919년 사임했다. 오 목사는 1927년부터 1년 동안 ...
입력:2019-03-07 08:05:01
서울의 대표적 민족 교회… 1964년부터 이어온 화요일 구국기도회 자부심
최이우 목사가 6일 서울 종로구 종교교회의 첫 번째 성전에 사용했던 벽돌을 가리키고 있다. 송지수 인턴기자   종교교회 초대 담임목사인 로버트 하디 선교사가 1916년쯤 사용한 찬송가. 송지수 인턴기자 서울 종로구 종교교회(최이우 목사) 성도들은 1919년 3월 2일 담임 목사의 주일 설교를 듣지 못했다. 3·1운동 직후 담임이었던 오화영 목사가 일제에 의해 구속됐기 때문이다. 오 목사는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명이다. 종교교회 교인들은 오 목사가 투옥된 뒤 3년 2개월 동안 그를 잊지 않고 기다렸다. 가족들을 ...
입력:2019-03-07 08:05:01
한몸 된 교회, 만세운동을 전국 지체로 전파하다
1919년 경기도 화성 주민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한 장면을 그린 기록화. 국민일보DB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에 있는 희생자 23명을 추모하는 조형물 모습. 국민일보DB 1919년 3월 1일 오후, 약속된 시간이 지났는데도 서울 탑골공원에는 민족대표들이 도착하지 않았다. 민족대표들이 유혈사태를 우려해 근처 태화관으로 자리를 옮겨 독립선언서를 낭독했기 때문이다. 민족대표가 없다고 그대로 해산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해야 했다. 눈치만 보며 웅성거리던 그때 한 청년이 팔각정에 올랐다. 그는 ...
입력:2019-03-07 08: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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