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 셔먼호가 조선에 온 목적은 무역·선교·평화

1866년 8월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평양에 이르러 통상을 요구하다 군민의 화공(火攻)으로 불타버린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 그림.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한국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이자 순교자 로버트 토머스 선교사.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제너럴 셔먼호를 비판하는 북한의 기념 우표.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한·미관계는 1866년 벌어진 제너럴 셔먼호 사건에서 비롯된다. 영국 무역회사 메도우는 미국 국적 상선 제너럴 셔먼호를 임차해 조선과 무역을 시도했다. 이 배에는 한국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영국인 로버트 토머스가 타고 있었다. 제너럴 셔먼호는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으로 향하던 중 관민의 공격을 받고 침몰해 모든 선원이 죽고 말았다. 미국은 이 사건의 진상을 알려고 수차례 조선을 방문했고 이것이 발전해 1882년 조미조약이 맺어졌다.

제너럴 셔먼호가 어떤 배인가에 대해서 논란이 많다. 역사 교과서는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조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내해(內海)를 무력으로 침범한 서구 제국주의의 전형적인 예라고 설명한다. 북한은 이 당시 김일성의 증조부 김응우가 평양 사람들과 함께 대미항전(對美抗戰)을 일으켜 위대한 승리를 이뤘다고 선전한다. 하지만 김응우가 제너럴 셔먼호와 싸웠다는 기록은 없다. 북한 역사 교과서는 이 사건을 반미운동과 김일성 우상화 작업에 이용한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선전한 것은 일본이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은 ‘대동강’ ‘낙랑’과 같은 연극을 만들어 영·미 제국주의의 조선 침략 사건으로 규정해 반미의식을 고취했다.

그러면 제너럴 셔먼호는 어떻게 조선에 왔는가. 우리는 이를 알기 위해서 1866년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1866년 초, 대원군은 9명의 프랑스 신부와 수천 명의 천주교 신자를 죽였다. 이른바 ‘병인박해’다. 이 소식은 얼마 후 중국의 프랑스 공사에게 알려졌고 그는 이 사건을 빌미로 조선을 프랑스의 식민지로 만들려고 했다. 이것을 안 중국은 이런 사실을 은밀하게 영국에 알렸다. 영국도 프랑스가 조선을 독점하는 것을 반대했다. 자신의 힘으로 프랑스와 맞설 힘이 없었던 중국은 영국을 내세워 조선에 대한 프랑스의 독점을 막고자 했으며 영국도 이런 기회를 이용해 조선과 교역을 이룩하고자 했다. 중국은 은밀하게 조선에 서양과 조약을 맺을 것을 권했다. 이렇게 해서 1866년 여름 제너럴 셔먼호가 평양에 오게 됐다.

이 배가 조선에 온 목적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무역이다. 19세기 후반 영국은 식민지 확장을 원하지 않았다. 이미 많은 식민지를 갖고 있었고 식민지를 운영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대신 영국이 추구했던 것은 무역이었다. 제너럴 셔먼호는 조선인들이 좋아하던 면직물 바늘 유리 등을 싣고 와 무역을 시도했다. 조선인들은 서양제품을 좋아했다.

둘째는 선교였다. 제너럴 셔먼호에 타고 있던 토머스는 이미 조선에는 천주교가 들어왔고, 머지않아 러시아정교회도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조선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가 돼 진정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토머스는 대동강에서 조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개신교는 천주교와는 달리 인의충효(仁義忠孝)를 강조하는 종교라고 설명했다. 토머스는 자신이 싣고 온 성경과 기독교 서적들을 대동강 변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전하다가 순교했다. 이때 성경을 받은 사람들은 나중에 평양 최초의 기독교인이 됐다.

셋째는 평화였다. 토머스와 제너럴 셔먼호는 조선과 프랑스의 전쟁을 막으려 했다. 당시 프랑스는 조선을 정복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고, 제너럴 셔먼호는 이 사실을 조선사람들에게 알려 전쟁을 막고자 했다. 당시 영국은 동남아 곳곳에서 프랑스와 마찰을 빚고 있었다. 프랑스는 이미 베트남을 점령했으며 이제 조선을 넘보고 있었다. 당시 미국은 멕시코 문제를 놓고 프랑스와 전쟁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영국과 미국을 이용해 프랑스를 견제하려고 했다. 토머스는 조선사람들에게 영국과 무역을 하게 되면 프랑스가 조선을 마음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중요한 문제가 있다. 제너럴 셔먼호가 상당한 무기를 싣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큰 논란이 됐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토대로 제너럴 셔먼호가 순수한 상선이 아니라 조선 침략의 목적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제너럴 셔먼호는 무기를 싣고 있었지만 정작 이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전사를 태우지 않았다. 또 이들은 줄곧 평양 감사 박규수를 만나려고 했는데 조선을 침략하려는 사람이 감사를 만나려고 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면 왜 이들은 무기를 싣고 있었을까. 1867년 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서양 각국 외교관 모임에서 미 국무장관 시워드는 “제너럴 셔먼호는 프랑스의 공격에 저항하는 조선을 도우려는 시도로 군수 물자를 운반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독일 외교 문서에서도 “유럽 상인들은 조선의 어려운 상황을 이용해 조선인에게 무기를 판매하려고 했다”고 보고한다.

제너럴 셔먼호는 조선과 통상조약을 맺어 프랑스의 침략을 막고 성경을 전해 참된 복음을 알게 하고 무기를 판매해 조선을 무장시키려고 했다. 이들은 이 문제를 협상하기 위해 평양 감사 박규수를 만나려고 했으나 조선은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제너럴 셔먼호는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돕기 위해서 왔다.

박명수 서울신대 명예교수·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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