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 모여 ‘기독교 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꿈꾸다

1919년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한인대회 마지막 날, 미국 독립기념관에서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미국 건국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앉았던 자리에 앉은 당시 이승만 대표. 오른쪽 사진은 당시 한인대회에 참석했던 대표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박명수 교수 제공




1918년 11월 제1차 세계대전에서 민족자결주의를 주장한 미국이 승리하자 미주 한인들은 이승만을 비롯한 몇 사람의 대표를 선출해 국제사회에 우리의 독립을 호소할 것을 결의했다. 이 소식을 들은 일본 유학생들은 1919년 2·8독립선언을 했고, 상하이 한인들도 파리에 대표를 파송했다. 이 소식이 국내에 전해져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났다. 이승만은 3월 10일 국내에서 3·1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고, 얼마 후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승만은 서재필과 함께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한인대회를 열어 미국 교포들의 독립 의지를 밝히고, 새로 세워지는 임시정부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렇게 열린 필라델피아 제1차 한인대회(First Korean Congress)에서 6개의 결의문이 발표됐다. 우선 미주 교포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내는 결의문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민주주의 원칙을 신봉하는 기독교인들로 구성돼 있다는 점에 주목해 적극적으로 지지할 것을 천명했다. 아울러 미국 대통령과 파리강화회의에 보내는 편지에서 국제사회는 2000만 우리 민족의 의지를 대변하는 임시정부를 승인해 달라고 요청하며 우리의 꿈은 기독교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미국 시민에게 보내는 결의안에서 1882년 맺은 조미조약에서 미국이 약속한 것처럼 조선의 독립을 도와줄 것을 요청하며, 아울러 미국과 한국은 자유 민주주의 기독교라는 공동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의 지성인에게 보내는 또 다른 결의안은 일본이 독일식 군국주의를 포기하고 한국에서 철수하면, 한국은 동북아 지역의 ‘우호적인 완충국’이 돼 아시아의 평화를 가져오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 결의안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시 한국인들이 어떤 나라를 세우기를 원했는가를 보여주는 ‘한국인의 목표와 열망’이라는 결의안이다. 이 결의안은 새 나라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본받아 ‘피통치자의 동의’에 기초한 정부를 세워야 하며, 정부는 입법부와 행정부로 구성돼 권력을 상호 견제해야 하고,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해 조약을 맺으며, 신앙의 자유를 비롯해 인간의 기본권이 보장되는 나라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당시 우리 교포들이 원하는 국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필라델피아 한인대회는 젊은이들의 대회였다. 물론 이 대회는 서재필 이승만 이대위 민찬호 윤병구 같은 지도자들도 참여했지만 20대 젊은이들도 많이 참여했다. 노디 김(21), 유일한(24), 조병욱(25), 정한경(29) 같은 젊은이들이 이 대회에서 우리 민족의 꿈을 가다듬었고, 이들은 이후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중요한 인물이 됐다.

필라델피아 한인대회는 세계인과 함께하는 모임이었다. 이 대회는 한국의 독립을 지지할 기독교 지도자들을 초청했다. 당시 전통적인 성공회 사제 톰킨스, 보수적 장로교 목사 매카트니, 그리고 천주교 신부 딘이 그런 사람이다. 이들은 모두 기독교적인 정신으로 핍박받는 민족을 돕기 원했다. 또한 여기에는 소수민족을 대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랫동안 독립된 나라를 갖기를 원했던 유대인 신문기자 베네딕트는 이 대회의 숨은 공로자이며, 그는 유대인 지도자 버코비치를 참여시켰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을 위해 일했던 밀러도 참여했다. 이 대회에는 볼셰비키와 싸운 러시아 선교사 출신 샤트가 참여해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해 경고했다. 한 나라가 세워지려면 이런 국제적인 연대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 대회가 필라델피아에서 왜 열렸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필라델피아는 미국 독립운동의 진원지다. 미국인들은 영국의 식민지배에 반대해 여기에서 대륙 의회를 열었고, 1776년 7월 4일 이곳 독립기념관에서 독립선언을 했다. 이 독립선언의 제일 마지막 부분은 미국이 영국에서 자유롭고 독립된 나라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 독립운동가들은 미국의 독립운동에서 자유와 독립을 배웠다. 그래서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선언서의 첫 문장은 한국이 독립국이라는 것과 한국인이 자유민이라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필라델피아 한인대회에 모인 사람들은 마지막 날 이 역사적 장소인 독립기념관을 향해 행진했고, 이승만은 여기에서 우리 민족의 독립과 우리 국민의 자유를 천명하는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1943년 11월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적절한 과정을 거쳐서 한국은 자유롭고, 독립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1945년 9월 맥아더는 자신들의 점령 목적은 카이로선언의 정신을 따라서 한국을 일본에서 해방해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고 천명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 기념사에서 초대대통령 이승만은 우리는 미국과 함께 자유와 독립을 위해서 투쟁했고, 이제 그 결실을 얻어 대한민국이 탄생했다고 선포했다.

“우리의 유일한 목표는 민족자결이라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다시 얻어 기독교 민주주의란 기본이념 아래 자유 국민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필라델피아 한인대회가 ‘미국 대통령과 파라강화회의에 보내는 편지’에서

박명수 서울신대 명예교수·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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