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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김윤관] 도식화된 경험은 위험하다
“자신의 경험을 진리 삼지 마세요. 끝!” 새벽 한 시. 동네 편의점 앞 파라솔. 2년 만의 개인전 중이었고 전시장을 찾은 지인들과 술을 마셨고 내가 취하니 술을 못 마시는 동료 목수 한 분이 나를 집까지 태워다주게 되었고 긴 운전에 지친 그와 헤어지기 전 편의점 앞에 앉아 하루의 마지막 담배를 피우게 된, 그런 일상적인 시간과 장소. 나에게 목수일을 배운 후 이제는 동료가 된 그가 “맨날 농담만 하지 마시고, 무언가 좋은 말 한마디 해보세요”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취기 때문인지 갑자기 용기가 생긴 나는 나도 모르는 새 정색을 하며 ...
입력:2019-11-08 04:10:01
[살며 사랑하며-배승민] 사랑의 매
“육아서에서 애는 혼내면 안 된다더니 역시 다 틀린 말이에요. 벼르다가 이번에 아주 혼쭐을 냈더니 울고불고 반항하던 애가 다음날 바로 천사가 됐거든요. 일어나자마자 아빠 사랑한다, 자기가 잘못했다며 시키지도 않은 편지를 줄줄 쓰는데~ 얼마나 의젓해졌는지 몰라요.” 아빠의 의기양양함과 달리 엄마 표정은 얼음 같다. 이런 경우 백이면 백, 아빠들은 버럭 화를 내는 자신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무섭게 비치는지 모른다. 장난꾸러기 아이가 (겁에 질려) 얌전히 있으니, 아빠 목소리가 한 톤 더 올라간다. “저 어릴 땐 더했어요. 우리 집은 양반이지.&rdqu...
입력:2019-11-08 04:10:01
[살며 사랑하며-문화라] 방구석 여행자
얼마 전 여행을 다녀온 사진들을 정리하며 절로 여행지의 추억에 빠지게 되었다.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여행을 가기 전 준비하면서 느끼는 설레는 마음과 다녀온 후의 추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제 여행의 과정은 앞과 뒤의 감정에 비해서는 덜할지라도 말이다. 세상 사람들을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두 부류로 나눈다면 나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 쪽에 가깝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어릴 적부터 멀미가 심해 차 타는 일이 고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변에서 여행을 부추기는 사람이 많아 한 해에 한 번 ...
입력:2019-11-06 04:10:02
[길 위에서] 총회 풍경을 바꾸자
청바지에 하얀 티셔츠를 입은 10~20대 청년, 밝은 전통의상을 입고 활보하는 30~40대 여성, 노타이 캐주얼 차림으로 이곳저곳 어슬렁거리는 50대 남성. 2013년 부산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 때 만난 전 세계 교회 대표들 모습이 요즘 부쩍 생각난다. 대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젊은 외국인 청년들이 총회장인 부산 벡스코에 가득했다. 자원봉사나 특별행사를 위해 온 사람들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자기네 나라 교회와 교단의 공식대표라고 했다. 깜짝 놀랐다. 교회의 대표라면 당연히 목사님이나 장로님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
입력:2019-11-06 00:05:01
[살며 사랑하며-김의경] 마음의 상태
2년 전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에서 하는 정리 수납 강좌를 들었다. 수강생은 대부분 여성이었지만 사오십대 남성이 두 명 있었고 칠십대 노신사도 있었다. 첫 수업 날 번갈아가며 자기소개를 하고 이 수업을 신청한 이유를 말했다. 대부분은 어려서부터 정리를 잘 못해서 수업을 들으러 왔다고 했고 수납 전문가 자격증을 따서 수납 전문가로 활동하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다. 노신사의 말이 인상에 남았다. 그는 아내를 돕고 싶은데 어떻게 청소를 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배우기 위해 왔다고 했다. 그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청소를 해본 적이 없다고 솔직히 시인...
입력:2019-11-04 04:10:01
[편의점 풍경화] 천하제일 건망증 대회
오후 4시. 느닷없이 밀려온 아득한 상실감에 몸이 나른해졌다. 달리기를 하는데 발바닥에 뭐가 붙어 자꾸 달랑거리는 찝찝한 느낌. 우주가 소멸하는 마냥 소중한 무엇이 소르르 사라지는 허전한 느낌. 이 기묘한 감각의 정체는 뭘까. 왜일까. 무엇 때문일까. 그때야 깨달았다. 발주, 발주! 오전 9시50분. 전국 편의점 점주들은 바쁘다. 그 시각이 바로 발주가 끝나는 시간. 신데렐라의 화려한 마차가 호박으로 변하는 것처럼, 그 시각을 넘겨 발주를 빠뜨리면 다음 날 팔 물건이 없다. 편의점에 갔는데 점주가 컴퓨터 모니터에 빨려들 모양으로 고개를 빼죽 내밀고 무슨 ...
입력:2019-11-02 04:10:01
[빛과 소금-전정희] 해 아래 학대 그리고 정치목사
# 1760년대 유럽에서 야곱 구예라는 평범한 농민이 갑작스레 스타가 됐다. ‘클라인조그’, 즉 ‘선한 조그’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다. 사회개혁가 히르첼이 이 촌부를 발굴했는데 야곱은 질박한 입담으로 계몽 귀족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히르첼은 그를 ‘농촌의 소크라테스’라는 개념으로 순회 전도자로 만들었다. 루소와 괴테가 열광했을 정도다. 괴테는 야곱이 스위스 시골로 순회 전도에 나서면 ‘성지순례’라며 따라나서기도 했다. 야곱은 농민들에게 말했다. “우리 각자가 본분에 충실히 하는 것이 피차에 선을 행하...
입력:2019-11-02 04:05:01
[살며 사랑하며-배승민] 생각의 우물
강의나 회의 차 지방을 오가는 일이 잦아지면서, 막히는 도심보다도 오히려 빨리 오갈 수 있다는 사실에 제법 놀랐다. 체력이 부족해서 그렇지 제주도도 당일 강의 후 바로 올라와 저녁 일정을 이어가기도 한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사람이란 자신의 경험에 갇혀 산다는 사실이다. 고속열차에 몸을 싣고 빠르고 편리하게 이동하면서, 학생시절 우리들보다 먼저 운전면허를 딴 한 친구가 으스대듯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운전을 하니 거리의 개념이 바뀐다나.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으나, 나 역시 운전을 시작하고 보니 그 뜻을 알게 되었다....
입력:2019-11-01 04:10:01
[혜윰노트-마강래] 고향세와 이중주소제
인구 감소 지자체의 재정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향사랑기부제’(일명 고향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2019년 10월 현재 모두 14건의 법안이 발의됐다. 다른 법안에 밀려 오랫동안 계류돼 있기는 하지만 여야 모두에서 발의될 만큼 당 정책과 이념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발의된 법안들을 살펴보면 ‘누가 기부하는지’ ‘어느 지자체가 받을 수 있는지’ ‘어느 정도까지 낼 수 있는지’ ‘받은 기부금은 어디에 써야 하는지’ ‘얼마만큼의 세액을 공제해야 하는지’ ‘답례품의 범위는 어느 정도인지&rsqu...
입력:2019-11-01 04:05:01
[세상만사-김경택] 한·미 동맹의 빈틈
“철통 같은(ironclad) 한·미동맹.” “같이 갑시다.” 한·미동맹을 주제로 한국과 미국의 군 인사들이 참석하는 행사에 거의 매번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미 관계를 강조하며 “빛 샐 틈 없는 공조”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마법 같은 이 말들은 ‘한·미동맹은 으레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실제로는 한·미동맹이 긴밀해 보이지 않는 사례가 종종 나타나지만 별문제 없다는 식으로 ...
입력:2019-11-01 04: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