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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김경택] 한·미 동맹의 빈틈



“철통 같은(ironclad) 한·미동맹.” “같이 갑시다.” 한·미동맹을 주제로 한국과 미국의 군 인사들이 참석하는 행사에 거의 매번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미 관계를 강조하며 “빛 샐 틈 없는 공조”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마법 같은 이 말들은 ‘한·미동맹은 으레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실제로는 한·미동맹이 긴밀해 보이지 않는 사례가 종종 나타나지만 별문제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착시현상을 빚게 할 때도 있다. 예컨대 유엔군사령부 전력(戰力)제공국에 일본을 추가하는 방안이 추진되는 것으로 오인된 주한미군 발간물이 논란을 일으켰다. 주한미군 홈페이지에 지난 7월 게시된 ‘주한미군 2019 전략 다이제스트’의 한국어 번역본에 “유엔사는 위기 시 필요한 일본과의 지원 및 전력 협력을 지속할 것”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것이다.

유엔사는 전력제공국에 일본을 포함시킨다는 시나리오를 기정사실화한 언론 보도가 나온 당일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 오류가 있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이 문제를 비롯해 몇몇 번역 오류를 바로잡아 달라는 한국군 당국의 요구는 3개월 넘도록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국군 관계자들은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번역본을 고치는 작업을 진행 중인데 주한미군사령관에게까지 보고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한·미동맹의 심장이라고 불린 한미연합사 본부를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인 험프리스로 이전하는 방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한·미 간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당초 한·미 군 당국은 연합사 본부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영내로 이전하는 방안에 사실상 합의했었다. 문 대통령도 지난해 국방부 청사를 방문했을 때 영내 이전안을 보고받으며 직접 그 후보지를 살펴봤다고 한다. 군 소식통은 “주한미군사령관뿐 아니라 미 국방장관과도 이미 상당한 협의가 이뤄졌던 사안이기 때문에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영내 이전안을 거부한 뒤 새로운 이전 장소를 물색하는 작업도 순탄치 않았다. 한·미 실무협의는 지지부진했다. 한국 국방부는 국방부 영내에다 인근 옛 기무사 부지까지 이전 후보지로 검토했지만 미국의 의중을 파악하기까지는 하세월이었다. 미국의 반응을 예상해 A안, B안을 만드는 식으로 대응해야 했다. 국방부 당국자들은 “미군과의 협의는 미국 측 여러 결재 단계를 거치느라 차일피일 미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 한두 번 벌어진 게 아니라는 의미였지만, 이미 익숙해져 있다는 투였다.

이들 사례는 한·미동맹에 금이 가는 전조라고까지 보기는 어렵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은 최근 서울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서 유엔사 역할 확대론에 관한 한국 언론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평가한 뒤 “한국군 주요 지휘관들에 대한 100% 신뢰를 갖고 있다. 우리 관계는 깨뜨릴 수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유엔사는 유엔사의 비무장지대(DMZ) 출입승인 절차를 문제 삼은 보도를 부정확하다고 지적하며 “모든 면에서 한국 정부와 계속적으로 긴밀히 협력해 나가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다만 한·미 군이 진심으로 “같이 가자”고 말할 요량이라면 비교적 낮은 단계에서부터 의사소통이 원활해야 할 것이다. 한·미동맹의 문제를 언론 탓으로만 돌리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 주한미군이나 유엔사가 한국 언론과 소통하는 창구를 얼마나 열어놓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를 끌어들이는 방식의 유엔사 확대를 통해 미국이 한반도에서 안고 있는 부담을 덜어 내려 한다’ ‘미국이 한국 정부를 믿지 못해 DMZ 출입 절차를 의도적으로 까다롭게 하고 있다’ 등의 의혹은 미국이 한국의 안보에 직결되는 정책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확대되는 것일 수 있다. 음모론은 사소해 보이는 오해가 쌓인 자리에서 피어오른다.

김경택 정치부 차장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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