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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배승민] 빈티지와 사람
근처에 빈티지 가게가 생겼다. 이것저것 둘러보다 진열된 그릇에 생긴 실금을 보았다. 무심코 “참 귀한 것일 텐데 금이 갔네요”라고 말을 건네자 주인은 배송 과정에서나 진열되어 있다가 부주의로 상처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그릇을 살펴보았다. 귀한 것으로 보여 내 것이 아닌데도 아깝다 싶었는데, 주인의 표정은 그다지 속상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몇 가지 도구로 능숙하게 그릇을 손질하고는 선반에 놓여 있던 장신구를 담아 순식간에 보석 받침대를 만들어냈다. 쓸모가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그릇이 원래부터 보석을 위한 것이었던 양 변신했다. 순...
입력:2019-11-15 04:10:02
[혜윰노트-홍인혜] 시험에 들고 난 뒤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것을 치른 지 오랜 세월이 지났다. 하지만 워낙 강렬한 기억인지라 몇 개의 이미지들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이따금 떠오른다. 깨진 유리처럼 날이 서 있던 11월의 공기라든지, 그날 내가 입었던 베이지색 패딩점퍼라든지, 사람이 한 일이 맞나 싶게 정확한 간격으로 열 맞춰 서 있던 고사장의 책상 같은 것들이 말이다. 그날 마주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욱 또렷이 떠오른다. 우선 나만큼 긴장했던 부모님의 굳은 표정이 기억난다. 시험장 앞에서 작별하는데 열없는 가족들이라 대단한 감동의 순간 같은 것 없이 머쓱하게 헤어졌다. 그리고 응원...
입력:2019-11-15 04:10:02
[한마당-신종수] “트럼프, 빌어먹을 멍청이”
“그는 빌어먹을 멍청이(f---ing moron)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임기 초 한 회의에서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한 뒤 회의실을 나가자 렉스 틸러슨 당시 국무장관이 했다는 말이다.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이 쓴 책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에 나오는 내용인데 여러 경로를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트럼프는 나중에 틸러슨을 ‘돌 같은 멍청이(dumb as a rock)’라고 응수하기도 했다. 책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2017년 7월 20일 오전 10시 국방부청사 펜타곤의 탱크(보안시설을 갖춘 합참 회의실)에서 열린 회의에서 트럼...
입력:2019-11-15 04:10:02
[세상만사-강주화] 개천에서 붕어로 살더라도
얼마 전 들른 서울 시내 한 중학교 교실 정면에는 이런 급훈이 액자에 걸려 있었다. ‘6년을 준비해서 60년을 산다.’ 중·고교 6년 공부가 대학을 결정하고 그 대학이 인생을 좌우한다는 의미를 담은 듯했다. 이 대학을 결정하는 14일 대학 수학능력시험에 48만여명이 응시했다. 이 시험에 대다수 수험생과 학부모는 사활을 건다. 대학 진학이나 전공에 따른 경제적 보상 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특성화고 졸업생 첫 연봉은 평균 2097만원이다. 대기업 대졸 신입사원 연봉은 4086만원이다. 2배 가까이 차이 난다. 이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 ...
입력:2019-11-15 04:05:01
[한마당-이흥우] 헝그리 정신
인간이 감내하기 어렵고, 시급히 해소하고 싶은 욕구 중 하나가 배고픔이다. 그러나 배고픔이 해소되면 나태해지고 무기력증에 빠지기 쉽다. 미국 애리조나 아파치족이 그랬다. 이들은 처음에 신대륙에 정착한 이주민과 치열하게 싸웠으나 “당신들이 원하는 만큼 식량을 무상으로 주겠다”는 애리조나 주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여 싸움을 끝냈다. 이들은 더 이상 싸울 필요도, 사냥할 이유도 없었다. 그 결과 아파치족의 40% 이상이 비만이나 무기력증에 빠졌다고 한다. 배부름의 역설이다. 우리나라는 1960~1990년대 압축성장을 했다. 이를 가능하게 한 시대정신이 ...
입력:2019-11-14 04:10:01
[데스크시각-손병호] 美 사령관까지 언론플레이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비용 문제를 넘어 동맹의 ‘갑을’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해보다 5배나 더 많은 돈을 요구하는 ‘미치광이 전략’으로 동맹에 펀치를 날린 데 이어 정치적 발언을 금기시하는 군 장성들까지 나서서 연일 한국을 때리고 있다. 특히 미군 장성들이 내뱉는 말이 정치인 뺨치는 계산된 발언이다. 마크 밀리 합참의장은 지난 11일 일본행 기내에서 기자들에게 “보통의 미국인들은 한국과 일본이 매우 부유한 나라인데 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느냐고 묻는다”고 말했다. 또 &ldquo...
입력:2019-11-14 04:05:02
[한마당-박정태] 전태일과 힙합
한 해 평균 2400명이 일터에서 산업재해(사고+질병)로 목숨을 잃는 나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산재 사망률이 1위인 나라. 크레인에서 추락하고, 컨베이어벨트에 끼이고, 스크린도어 수리하다 숨지는 나라. 원청업체는 나 몰라라 하고 하청 노동자들만 희생되는 나라. 2016년 서울 구의역 사고로 외주업체 19세 청년이,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선 협력업체 24세 김용균이 그렇게 허무하게 하늘나라로 갔다. 그리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이들이 3∼4시간마다 1명씩, 하루 7명꼴로 죽어나간다. 산재공화국의 서글픈 현주소다. ‘위험의 외주화&rs...
입력:2019-11-13 04:10:01
[살며 사랑하며-문화라] 각자, 혹은 다르게
큰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이다. 미술 시간에 우유팩으로 가구 만들기를 한다고 우유팩 10여개를 준비해 오라고 한 적이 있었다. 우유를 먹은 후 그대로 씻어 보내기만 했는데 다음 주에 참관수업으로 학교에 가서 교실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을 보니 대부분 뒤처리가 깔끔하게 되어 있었다. 입구를 잘라서 본드로 붙여 기본 모양을 만들어서 보낸 분도 많았다. 아이의 거칠고 비뚤어진 의자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대학에서 수업을 할 때, 학생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중심으로 글을 쓰거나 발표를 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해 왔다. 팀 과제를 내주면 인터넷에...
입력:2019-11-13 04:05:01
[신종수 칼럼] 문 대통령, 조국에게 속았나
부인 공소장 보면 판단 설 것… 결백 주장 거짓으로 드러나 조국과 지지자들에게 미안함이나 부담감 느낄 필요 없어 정치적·심리적으로 조국 사태 악몽 떨치고 미래로 나아가야 검찰이 11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구속 기소했다. 공소장에 나오는 정 교수의 혐의는 금융실명제법 위반, 사기, 증거인멸교사 등 14개다. 검찰이 많은 인력을 동원해 두 달 넘게 탈탈 털어 나온 것이라고 해도 혐의 내용을 입증할 객관적 증거와 진술이 공소장에 가득 담겨 있다는 것이 법률 전문가들의 견해다. 재판을 통해 진실이 가려지겠지만, ...
입력:2019-11-13 04:05:01
[한마당-김명호] 유쾌한 B급 문화
요즘 펭수를 모르면 일단 자신이 꼰대 대열에 합류할 조짐이 있다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그다음, 그게 뭔지 한 번 동영상을 보거나 검색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무심하게 있으면 합류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해봐야 할 것 같다. 그다음, 유튜브나 TV를 통해 몇 번 본 뒤에도 좋든 싫든 도대체 아무런 감흥이 없다면 확실히 꼰대군에 포함됐다는 합리적 판단을 하는 게 좋겠다. 펭수는 2019년 4월 교육방송(EBS) 봄 개편으로 신설된 프로그램 ‘자이언트 펭TV’의 주인공인 남극에서 온 펭귄이다. TV 프로그램이지만 사실상 유튜브 기반이며, 가상 ...
입력:2019-11-12 04:10:01
[살며 사랑하며-김의경] 입동
떡집을 지나다가 시루떡을 샀다. 떡에 코를 갖다 댄 순간, 오래전 그곳으로 이동했다. 침대와 책상 하나만 놓인, 겨우 몸만 누일 수 있었던 방. 나는 오래전 작고 좁은 고시원 방에서 겨울을 났다. 그 당시 나는 많은 고시원을 전전했지만 그곳은 유독 기억에 남는 곳이었다. 사람이 정말 사는 건가 싶게 조용했고 거주민들끼리 어쩌다가 마주쳐도 서로 인사를 하지 않았다. 나는 복도에 누군가 다니는 소리가 들리면 그 사람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외풍도 심하고 공기도 탁해서 아무래도 이곳에서는 오래 살지 못하겠다 싶었다. 겨울만 지나면 바로 ...
입력:2019-11-11 04:10:02
[한마당-태원준] 외톨이 트럼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 데니스 맥도너가 백악관에서 기자간담회를 할 때였다. 대통령이 불쑥 들어왔다. 기자들과 농담을 하는데 맥도너가 말했다. “6시30분입니다.” 오바마가 대화를 끊지 못하고 이어가자 다시 말했다. “대통령님!” 그래도 계속되니 목소리가 커졌다. “저녁 먹으러 가시라고요!” 당시 백악관의 오후 6시30분은 오바마 대통령이 관저인 3층에 올라가 가족과 식사하는 시간이었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닌데 이 시간을 내지 못하면 비서들은 미셸 여사의 성난 얼굴을 마주해야 했다. 가족 식사...
입력:2019-11-11 04:05:01
[빛과 소금-노희경] ‘상하이의 쉰들러’ 허펑산
중국 상하이에 유대인 난민 기념관(Shanghai Jewish Refugees Museum)이 있다. 최근 상하이 여행 중에 알게 됐다. 아니,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를 피해 이렇게 먼 상하이까지 건너왔다고? 믿기지 않았지만 사실이었다. 그들은 기념관 인근에 게토를 이뤄 살았다. 유대인 기념관은 와이탄, 동방명주 등 멋진 빌딩과 야경을 자랑하는 상하이 중심에서 북쪽 훙커우구에 있다. 티란차오 역사문화관광지역의 옛 건물 복원이 한창인 허름한 건물들 틈에 3층 높이로 회당이 세워져 있었다. 1층은 모세예배당으로 불리는데, 상하이에 있는 두 개의 유대 회당 가운데 한 곳이다. 2, 3...
입력:2019-11-09 04:05:01
[혜윰노트-김윤관] 도식화된 경험은 위험하다
“자신의 경험을 진리 삼지 마세요. 끝!” 새벽 한 시. 동네 편의점 앞 파라솔. 2년 만의 개인전 중이었고 전시장을 찾은 지인들과 술을 마셨고 내가 취하니 술을 못 마시는 동료 목수 한 분이 나를 집까지 태워다주게 되었고 긴 운전에 지친 그와 헤어지기 전 편의점 앞에 앉아 하루의 마지막 담배를 피우게 된, 그런 일상적인 시간과 장소. 나에게 목수일을 배운 후 이제는 동료가 된 그가 “맨날 농담만 하지 마시고, 무언가 좋은 말 한마디 해보세요”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취기 때문인지 갑자기 용기가 생긴 나는 나도 모르는 새 정색을 하며 ...
입력:2019-11-08 04:10:01
[살며 사랑하며-배승민] 사랑의 매
“육아서에서 애는 혼내면 안 된다더니 역시 다 틀린 말이에요. 벼르다가 이번에 아주 혼쭐을 냈더니 울고불고 반항하던 애가 다음날 바로 천사가 됐거든요. 일어나자마자 아빠 사랑한다, 자기가 잘못했다며 시키지도 않은 편지를 줄줄 쓰는데~ 얼마나 의젓해졌는지 몰라요.” 아빠의 의기양양함과 달리 엄마 표정은 얼음 같다. 이런 경우 백이면 백, 아빠들은 버럭 화를 내는 자신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무섭게 비치는지 모른다. 장난꾸러기 아이가 (겁에 질려) 얌전히 있으니, 아빠 목소리가 한 톤 더 올라간다. “저 어릴 땐 더했어요. 우리 집은 양반이지.&rdqu...
입력:2019-11-08 04: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