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배승민] 사랑의 매



“육아서에서 애는 혼내면 안 된다더니 역시 다 틀린 말이에요. 벼르다가 이번에 아주 혼쭐을 냈더니 울고불고 반항하던 애가 다음날 바로 천사가 됐거든요. 일어나자마자 아빠 사랑한다, 자기가 잘못했다며 시키지도 않은 편지를 줄줄 쓰는데~ 얼마나 의젓해졌는지 몰라요.” 아빠의 의기양양함과 달리 엄마 표정은 얼음 같다. 이런 경우 백이면 백, 아빠들은 버럭 화를 내는 자신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무섭게 비치는지 모른다. 장난꾸러기 아이가 (겁에 질려) 얌전히 있으니, 아빠 목소리가 한 톤 더 올라간다. “저 어릴 땐 더했어요. 우리 집은 양반이지.” 이제는 하얗게 질린 아이 엄마와 아이 표정을 아빠만 보지 못한다.

홈 스위트 홈이라고들 하지만 현실은 끔찍한 일일수록 남들이 못 보는 집 안에서 벌어진다.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도 일하다 보니,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사건들을 마주하면서 이를 더 실감하게 된다. 사실 가정은 그야말로 동물의 왕국이다. 사회화된 가면을 안 써도 되는, 남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돈을 벌고 힘이 있는 가족은 무소불위의 권력, 또는 본인의 규칙만이 옳다는 군주가 된다. 아이들은 이런 권력 아래에서 생존을 위해 눈치 빠르게 굴거나 반항하다 도망치거나 나쁜 것들을 하나하나 배우며 속으로 쌓아간다.

“어렸을 때 다른 애들은 속 썩여도 이 애만은 천사 같았는데”라며 진료 중 한탄하는 어머니 모습은 앞서의 가정이 몇 년 뒤 겪을 일이다. 고분고분하던 아이가 사춘기라서, 나쁜 친구를 만나서, 선생님과 엇나가서, 원하던 무언가가 안 돼서 등, 어떤 계기로 갑자기 달라졌다는 부모의 말은 대다수 마음속에 칼을 품고 겉으로는 아닌 척 견디느라 곪아터진 아이의 속을 몰라서일 때가 많다. 비정상적으로 흐르던 일방적인 마음은 되돌아오지 않는 사랑과 인정을 다른 데서 강요하며 폭력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나는 주변 사람들과 일방적인 관계는 아닌가? 어른끼리는 기브 앤드 테이크를 잘 하면서, 아이나 부하 직원은 다르게 대하지는 않는가? 카드 연체를 돌려막듯 인간관계도 메우며 넘기고 있지는 않은가? 얼어붙은 표정으로 진료실을 나가는 아이와 가족의 뒷모습을 보니 왜인지 공기가 더 차갑기만 하다.

배승민 의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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