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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두상달 (11) 한국 기독교 전체가 이뤄낸 큰 역사 ‘엑스플로74’
1974년 ‘엑스플로74’가 열린 서울 여의도광장에 마련된 텐트촌 전경. ‘엑스플로74’는 한국 교계 전체가 참여해 이뤄낸 큰 역사였다. 한경직 목사님이 대회장이셨고, 김준곤 목사님은 준비위원장을 맡으셨다. 당시 교계 지도자들도 모두 참여했다. 이들 모두 대회의 주역이었다. 무려 30만명이 모이는 집회였다. 행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초대형 행사를 준비하는 건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다. 우선 여의도광장에 8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텐트를 쳤다. 이걸로 부족해 영등포구와 마포구 용산구 서대문구에 있는 학교까지 빌려 숙소로 ...
입력:2021-08-24 03:10:02
[역경의 열매] 두상달 (10) 계획 없던 ‘엑스플로74’ 서울 개최 깜짝 발표에…
두상달(왼쪽 네 번째) 장로가 1972년 미국 댈러스에서 열린 ‘엑스플로72’ 대회에 참석해 외국 참가자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1972년 미국 댈러스에서 ‘엑스플로72’ 대회가 열렸다.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전도훈련 집회였다. 56명의 한국대표단도 참석했다. 나도 나사렛 형제들 10여명과 함께 했다. 전 세계 CCC가 2년 동안 준비한 엄청난 규모의 집회였다. 미국은 대단한 선진국으로 별천지였다. 미식축구가 열리는 댈러스 코튼볼 운동장에 8만명이 모였다. 숙소도 번듯한 호텔이었고 뷔페에서 음식도 마음껏 먹...
입력:2021-08-23 03:05:03
[역경의 열매] 두상달 (9) 한국 CCC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한 민족복음화운동
두상달 장로가 지난 16일 경기도 양평 자택에서 ‘민족 복음화의 환상과 기도’라는 제목의 김준곤 목사의 기도문을 앞에 두고 CCC 운동의 여정을 설명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1971년 정동에 한국CCC 회관 건물이 마련된 뒤 민족 복음화 운동은 빠르게 확산됐다. 외부 골조만 세워진 미완공 상태일 때부터 전국에서 핵심 요원이 1000명 단위로 참여해 전도 요원 훈련을 했다. 나사렛 형제들의 헌신이 큰 역할을 했다. 매년 여름에는 전국대회를 열었고 겨울에는 원단 금식기도회를 진행했다. 이 기도회는 매년 12월 31일에 모여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
입력:2021-08-20 03:05:03
[역경의 열매] 두상달 (8) 평신도 정성 모아 ‘복음화 센터’ CCC회관 세워
1971년 완공된 서울 중구 정동의 CCC회관 전경. ‘월간 CCC’ 표지로도 수 차례 사용됐다. 한국이 20세기 최대의 영적 부흥을 이룩한 데는 훌륭한 영적 지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분들이 지금도 계신 게 감사할 뿐이다. 순수하게 기도와 전도로 민족 복음화의 불씨로 살아온 수많은 평신도의 헌신이 있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한국CCC 운동에도 평신도들의 헌신이 녹아 있다. “오늘의 학원 복음화는 내일의 세계 복음화”라는 구호 아래 한국CCC는 1958년 시작됐다. 학생 운동은 돈이 투입되는 곳이지 나오는 곳이 아니다. 결국 경제...
입력:2021-08-19 03:05:05
[역경의 열매] 두상달 (7) 집사 신분에 술 접대 늘 마음에 걸려 “술 대신 초콜릿…”
두상달(오른쪽) 장로와 아내 김영숙 권사가 1970년대말 독일에서 바이어 가족을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비즈니스를 위해 지금이나 그때나 술자리 접대가 따라다닌다. 외국 바이어들도 한국에 오면 당연히 그런 접대를 받는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나도 그런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체질적으로 술이 약했다. 회사에서 영업과장을 하던 시절 이야기다. 경찰복 납품 때문에 내무부 담당 과장을 만났는데 이 사람이 술고래였다. 양주와 맥주를 섞은 ‘양폭’을 돌리기 시작했다. 잘 보여야 하는 자리여서 안 마실 수가 없었다. 술자리가 끝나고 회사 ...
입력:2021-08-18 03:05:04
[역경의 열매] 두상달 (6) 위기가 기회 된 모험과 도전… 종합상사로 급성장
두상달 장로가 1983년 사업차 쿠웨이트를 방문해 아내 김영숙(가운데) 권사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꿈 많은 대학 신입생 시절, 아직 예수를 믿지 않을 때 염리동 자취방에서 룸메이트가 자주 암송하던 영어 구절이 있었다. “더 로드 이즈 마이 쉐퍼드, 아이 쉘 낫 원트(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내용도 모르고 친구 따라 외우게 됐고 그때부터 늘 입가를 맴돌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는 막내인 나를 두고 눈을 감을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손을 꼭 잡고서 “상달아 집을 ...
입력:2021-08-17 03: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