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두상달 (7) 집사 신분에 술 접대 늘 마음에 걸려 “술 대신 초콜릿…”

두상달(오른쪽) 장로와 아내 김영숙 권사가 1970년대말 독일에서 바이어 가족을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비즈니스를 위해 지금이나 그때나 술자리 접대가 따라다닌다. 외국 바이어들도 한국에 오면 당연히 그런 접대를 받는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나도 그런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체질적으로 술이 약했다.

회사에서 영업과장을 하던 시절 이야기다. 경찰복 납품 때문에 내무부 담당 과장을 만났는데 이 사람이 술고래였다. 양주와 맥주를 섞은 ‘양폭’을 돌리기 시작했다. 잘 보여야 하는 자리여서 안 마실 수가 없었다. 술자리가 끝나고 회사 차에 실려 집에 왔는데 기억이 없었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집에 들어오며 “이 세상에 어떤 자식이 술을 만들어 날 이렇게 괴롭히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는 것이었다. 아내가 겁이 나 술 깨는 약을 사러 나간 사이 잠들었다고 했다.

술도 못 마시는 데다 교회 집사인데 술 접대하는 게 늘 마음에 걸렸다. 바이어들도 한국에 올 때마다 양주를 선물로 사 오다 보니 주변에 늘 술이 있었다. 지금이야 양주가 흔해도 그 시절에는 정말 귀했다. 잘 보관했다 연말에 거래처들에 선물하면 정말 좋아한 기억이 난다. 나는 이것부터 끊기로 하고 바이어들에게 “술 대신 초콜릿이나 너희 나라 기념품을 선물해 달라. 우리 아이들이 행복해할 것이다”라고 했다.

사실 외국에 자주 다니는 사람들은 그 나라의 평범한 가정식을 먹고 싶은 바람이 생긴다. 호텔 음식은 세계가 다 똑같다. 술 접대를 끝내기로 마음먹은 뒤 생각해 낸 방법이 집으로 바이어를 초대하는 것이었다.

독일과 인도, 홍콩 바이어가 중요한 파트너였다. 이들이 주로 동작동에 있던 우리 집에 자주 왔었다. 주방에 딸린 식당이 있었지만, 상은 늘 안방에 차렸다. 된장찌개부터 김치와 불고기, 생선구이 등을 정성스럽게 대접했다.

서양 사람들은 좌식 문화가 없어 양반다리로 앉는 걸 어려워한다. 옆으로 앉았다가 다리를 폈다가 어찌할 줄 몰라 했다. 고통을 겪어보라고 그냥 내버려 뒀었다. 20분쯤 가만히 뒀다가 “다리를 뻗고 등을 벽에 기대라”라고 팁을 알려줬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바이어와 친구가 됐다. 나중에는 가족들끼리 서로 가정을 방문했다. 아이들끼리도 교류가 있었다.

술 접대 대신 선택한 가정식 접대는 나와 바이어 사이에 든든한 신뢰를 쌓아줬다. 신뢰는 안정적인 거래로 이어졌다. 은행에서 수출입 업무를 위해 발행하는 신용장도 회전신용장을 열어줬다. 이를 담보로 무역금융도 쓸 수 있었다. 현금이 융통되다 보니 하청 업체에도 선적한 뒤 4~5일이면 바로 현금으로 결제해 줬다. 바이어나 하청 업체 모두에게 인기가 많았다. 늘 우리 회사를 찾았다.

요즘에도 술 때문에 고민하는 직장인들이 많다. 불이익을 받을까 봐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거절하지도 못할 것이다. 나도 그랬지만 구태를 버리고 창의적인 접대 방법을 통해 신뢰를 얻었다. 결국, 예수 믿어 신뢰를 얻고 사업을 확장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신뢰는 사회적 자산이자 사업의 자본이다. 여건을 탓하지 말고 새길을 열면 더 큰 기회가 생긴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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