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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김준동] 청량리의 추억
“오징어, 땅콩 있어요.” “삶은 계란, 김밥 있어요.” 철로의 이음매를 지날 때마다 ‘털커덩 털커덩’ 굉음이 객실 안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레일 바퀴가 빨라지는 만큼 기차는 속력을 더한다. 플랫폼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간 지 한참, 제복을 입은 홍익회 소속 남성의 거친 외침이 들려온다. 손안에 각종 주전부리를 그리 잔뜩 품을 수 있는지 참 신기하다. 망에 넣어 팔았던 삶은 계란의 맛은 잊히지 않는다. 사연을 담은 얘기들이 넘쳐날 즈음 열차는 터널로 기어들어 간다. 차창에 비친 자화상을 바라보며 저마다 회상에 잠긴다. 그것...
입력:2019-08-01 04:05:01
[살며 사랑하며-문화라] 나만의 공간
처음으로 내 방을 가지게 된 건 고등학교 때였다. 새로 이사를 가게 된 주택은 이층집이었다. 아래층에는 안방과 주방이, 이층에는 방이 세 개 있던 구조였다. 이사 가기 전 집을 구경하러 갔는데 이층의 방 중 하나를 내 방으로 쓰라는 말에 뛸 듯이 기뻤던 기억이 있다. 나만의 공간이 없어진 건 결혼하고 나서부터였다. 몇 번의 이사를 하고 난 후 서재가 생겼지만, 서재도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쌍둥이를 낳은 후 몇 년 동안 서재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잤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은 그때부터 따로 잠을 자기 시작했다. 2년 전 큰 애가 학교...
입력:2019-07-31 04:10:01
[길 위에서] 이스라엘보다 예수 더 말하기를
지난 14일부터 18일까지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이 공식 방한했다. 2010년 시몬 페레스 대통령 방한 이후 9년 만이다. 리블린 대통령은 80세의 고령에도 많은 일정을 소화했다. 그의 방한 일정 중 백미는 17일 저녁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방문이었다. 그는 ‘이스라엘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기도회’에서 메시지를 전했다. 그의 첫마디는 이랬다. “여러분에게 형제애와 사랑의 축복을 전하기 위해 거룩한 땅 예루살렘에서 왔습니다. 성경의 땅이자 유대인의 고향인 이스라엘의 대통령으로서 가족이 예루살렘에 7세대에 걸쳐 살아온 것을 ...
입력:2019-07-31 00:05:01
[돋을새김-한승주] 김복동은 외롭지 않다
지난 24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 굵어지는 빗줄기도 ‘수요집회’를 막을 수 없었다. ‘평화로’라 이름 붙여진 길 위에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이들이 차곡차곡 앉았다. 방학을 맞아 단체로 온 청소년들도 꽤 많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1992년 1월 8일 시작된 수요집회가 벌써 27년이 됐다. 일본 아베 정부의 참의원 선거 승리 이후 군국주의 부활이 우려되는 요즘, 이날 1397회 수요집회에는 올해 최대 인파가 몰렸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는 “27년간 이 자리에서 투쟁을 이어가면서 할머니들의 빈자리...
입력:2019-07-30 04:05:01
[살며 사랑하며-김의경] 영상통화
나는 집 앞 골목에서 매일 저녁 같은 사람과 마주쳤다. 서너 달 전부터 마주쳤지만 가끔 눈인사를 했을 뿐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었다. 그가 외국인이기 때문이었다. 스무 살이 넘었을까 싶게 앳되어 보이는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누군가와 영상통화를 했다. 통화 상대는 대체로 여성이었다.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 여성일 때도 있었고 청년과 비슷한 나이의 어린 여성일 때도 있었다. 이어폰을 꽂지 않고 통화를 하는 것을 보니 그 역시 타인이 자신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가 영어를 사용했더라면 용기를 내어 말을 걸어봤을지도 모르겠다...
입력:2019-07-29 04:10:01
[가리사니-전슬기] 노인의 유모차와 ‘먹고살 길’
지난해 여름휴가를 부모님과 보냈다. 특별한 일정 없이 부모님을 모시고 시내를 돌아다녔다. 그런데 그 짧은 며칠 동안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평소 커피를 좋아하는 엄마는 새로운 커피숍을 갈 때마다 주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온갖 영어로 뒤덮인 메뉴를 보면서 엄마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엄마는 우여곡절 끝에 주문을 했지만 이번에는 각종 포인트 적립, 할인 행사 등을 빠르게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 뒤에 주문을 기다리는 인파의 ‘눈치’에 결국 최종 주문은 내 몫이 됐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기차를 타고 싶고, 홈쇼핑...
입력:2019-07-29 04:10:01
[한반도포커스-이남주] 전환기 안보전략 준비할 때다
한·일 갈등의 고조, 러시아 공군기의 영공 침범, 북한의 단거리탄도미사일 발사 등으로 안보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 사건들이 제기하는 안보 위협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지만 막연한 위기론을 키우는 행동도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시간적으로 겹쳐 발생한 탓에 위기의식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냈지만, 이들은 각기 다른 출발점과 전개과정을 가진 문제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8월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 한·일 갈등의 고조는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따른 압류자산의 현금화 등이 계기로 작용했다. 러시아의 영공 침범은 중·러가 군사협력...
입력:2019-07-29 04:05:01
[김명호 칼럼] ‘한국형 반덴버그 결의’를 하라
준비 없고 친구도 없는데 못난 정치까지 가세해 한국을 외교안보 위기에 밀어넣어… 정파싸움은 국경선에서 멈춰야 해 대통령·여야는 붕당정치 그만하고 외교안보정책에서 국가핵심이익에 대한 초당적 합의이끌어 내고 대외전략 세워야 미국이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뒤 민주당의 해리 트루먼 행정부는 외교안보정책 수립에 어려움을 겪는다. 냉전 시작으로 소련 팽창을 저지하는 게 최우선 목표인데, 여론은 갈렸다. 소련에 대응할 국방예산 증가나 해외기지 증강에 반대가 많았고, 무엇보다 외교안보정책이 국내 정치에 휘둘리기 시작했다. 1948년 ...
입력:2019-07-29 04:05:01
[빛과 소금-송세영] 불의한 이익
가습기살균제를 딱 한 번 사본 적이 있다. 2003년쯤이었다. 초음파 가습기가 유해세균의 온상이라고 해서 세균 번식 우려가 적은 가열식 가습기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지인으로부터 초음파 가습기를 선물로 받았다. 디자인이 세련된 데다 소음이 적고 분무량도 많아서 사용하기에 편리했다. 하지만 세균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매번 초음파 진동자를 청소해야 하는 게 번거로웠다. 그 무렵 대형마트에 갔다가 가습기살균제 판매대를 봤다. 간편하게 유해세균을 없앤다는, 혹할 수밖에 없는 광고 문구에 1+1 세트를 구입했다. 다행히 겨울이 끝나가던 무렵이어서 한두 번 사용...
입력:2019-07-27 04:05:01
[김의구 칼럼] ‘친일’ 프레임, 케케묵지 않았나
해방 74년, 정치권의 ‘친일파’ ‘친일’ 낙인 찍기는 시대착오 시효 다한 낡은 프레임 벗어나 국익 위해 전력 기울일 때 전쟁상대 손잡고 경제 일으킨 베트남의 실용주의 참고해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페이스북을 잠정적이나마 접은 건 잘한 일이다. 그로서는 일본의 경제보복과 관련해 대통령이나 청와대의 피 끓는 심경을 알리고 싶었을지 모른다. 정부의 외교 무능을 질타하는 목소리에 맞서 단합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도 같다. 하지만 동학의 처절한 저항을 떠올리게 하는 ‘죽창가’를 올리고, 대일 대응의 방법론 논쟁을 애국...
입력:2019-07-26 04:10:01
[살며 사랑하며-최주혜] 소확행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던 옛날 우리 선조들은 무더운 여름을 어떻게 보냈을까. ‘동국세시기’에는 선비들의 여름 나기로 탁족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탁족은 강물이나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자연의 경치를 감상하는 피서법이다. 시린 계곡물이 열기를 내리고 흐르는 물살이 발바닥을 자극해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일석이조의 여름 나기 비법으로 조선시대 선비들 사이에서 성행했다. 주로 남산과 북한산 계곡에서 탁족을 많이 했고 가장 유명한 곳으로는 세검정 일대였다고 한다. 지난 주말, 후텁지근한 날씨 탓에 손가락 하나 꼼짝 하기 싫을 때였다. 요리 프로...
입력:2019-07-26 04:10:02
[혜윰노트-홍인혜] 걸터앉아 하늘까지
얼마 전 인도네시아 발리에 다녀왔다. 이번 여행에서는 예산을 대폭 줄일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특가 항공권을 구했기 때문이다. 발리는 아시아권에 있는 나라임에도 비행기 삯이 상당한데 이번에는 저가항공사에서 그 반값도 안 되는 돈으로 비행기 표를 구할 수 있었다. 성수기의 국적기와 비교하면 거의 3분의 1 가격이었다. 물론 직항으로 7시간가량 걸리는 구간을 경유를 통해 12시간에 걸쳐 가야 했지만 금액을 생각하면 버틸 만했다. 환승까지 하는 장거리 비행에 저가항공을 이용하는 것은 처음인지라 다소 긴장했지만 뭐 일반 항공사와 크게 다를까 싶었다. 하지만 ...
입력:2019-07-26 04:05:01
[한마당-김명호] 아베의 ‘강한 일본’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꿈은 ‘강한 일본’이다. 전후세대 첫 총리로서, 최연소 총리로서, 그가 2006년 제90대 총리에 취임했을 때도 물론이고 2012년 두 번째 권력을 잡았을 때도 그의 슬로건이었다. 그 이전이나 지금이나 아베는 강한 일본이란 직접 표현을 쓰거나 이를 연상케 하는 언행을 보여 왔다. 대북 강경책, 역사 왜곡, 도덕 교과서 부활, 독도 영유권 주장 등 그의 ‘강한 일본 행보’는 주변국의 우려에도 아랑곳없다. 아베와 우익 세력에게 헌법 개정은 강한 일본을 위한 핵심 축이다. 군대 보유와 교전권을 금지한 평화헌법을 개정해 집단...
입력:2019-07-25 04: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