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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정진영] 여름 휴가 단상
하늘은 푸르렀고 공기는 상큼했다. 바다 위 구름은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지난 주말 남쪽 끝 섬 진도와의 대면으로 ‘7말8초’의 가족 여름휴가는 절정을 맞았다. 서울 집에서 진도의 목적지까지는 418㎞, 서울~부산과 거의 맞먹는 먼 길이었으나 마음은 가벼웠다. 신축된 지 보름 정도밖에 안 된 숙소는 수백 개의 객실 모두 바다 풍광을 안고 있었다. 침대에 누우면 베란다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장년인 내게 휴가는 ‘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굳이 재충전과 힐링을 생각하지 않는다. 먹고 자고 뒹굴다 어슬렁거리면 그만이다. 오후 늦게 입실...
입력:2019-08-08 04:15:01
[살며 사랑하며-문화라] 즐겁게 살아가려면
대학생 때, 화장대 거울 맨 위에 ‘즐겁게 살자’라는 글자를 써놓았던 적이 있다. 왜 그런 문구를 쓰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즐겁게 살지 못한다고 느꼈기 때문이지 싶다. 학과 공부, 아르바이트, 학회 활동 등에 쫓기며 심리적으로 여유가 없어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오히려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에 여행도 가고, 취미생활도 하면서 즐겁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만약 지금 방에 그때의 거울이 있다면 뭐라고 글을 써놓을까. 삶을 슬로건대로 살아나가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의미가 ...
입력:2019-08-07 04:05:01
[돋을새김-남도영] 다시 읽는 해방의 역사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38선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 결정됐다. 충칭의 독립운동가들도, 하와이의 독립운동가들도, 식민지하 지식인들도 38선이 어떻게 그어졌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38선을 그은 미국 군인들도 자신들이 그은 38선이 어떤 비극을 가져올지 몰랐을 것이다. 1945년 8월 10일 일본은 항복을 요구하는 미국 영국 중국의 포츠담 선언을 수용하겠다고 미국에 알렸고, 미국은 곧바로 일본의 항복 조건을 담은 ‘일반명령 제1호’를 작성했다. 미국 전쟁성 작전국 전략정책단 정책과장인 찰스 본스틸 대령과 딘 러스크 대령은 지도를 보며 한반도에 38선...
입력:2019-08-06 04:05:02
[살며 사랑하며-김의경] 폭탑방
지난봄부터였던가. 매일 같은 시간, 내 방 창문 앞에 동네 노인들이 모여들어 담소를 즐기기 시작했다. 쉼터라도 되는지 의자도 대여섯 개 놓여 있었다. 나는 반지하집에 사람이 사는 것을 모르나 싶어서 부러 창문을 여닫아 봤지만 그들의 모임은 계속되었다. 짜증이 났지만 매몰차게 남의 방 앞에서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말하기가 힘들었고 결국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본의 아니게 그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요 며칠간은 날씨가 더워서인지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커다란 라디오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남의 방 앞에서 ...
입력:2019-08-05 04:10:01
[가리사니-지호일] 직업 정치인으로서의 조국
‘논쟁적 비서’ 조국 전 민정수석이 웃으며 청와대를 나왔다. 나와서는 더욱 대중을 들썩이게 만들고 있다. 이미 예약해 둔 법무부 장관 자리로 가기 전 임시 민간인 신분일 때 할 말은 다해야겠다는 듯, 더욱 거리낌 없이 글을 쏟아내는 중이다. 역사상 조 전 수석만큼 정치적 이슈에 목청을 돋우며, 정치적 공방의 중심에 기꺼이 뛰어든 대통령 참모는 없었다. “저를 향해 격렬한 비난과 신랄한 야유를 보내온 일부 야당과 언론에 존중의 의사를 표한다”며 가시 넣은 퇴임사를 남길 정도니, 자기 정당화 능력이랄까, ‘미움받을 용기’만은 ...
입력:2019-08-05 04:05:02
[한반도포커스-박원곤] GSOMIA 파기 신중해야
황당하다. 국제 여론이 부정적이고 미국의 개입이 회자되면서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중단될 수도 있다는 일말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전후 자유무역질서에 적극 편입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던 일본이 정치적 이유로 우방국을 향해 비관세 장벽을 세웠다. 일본의 조치가 위안부 합의 파기와 강제 징용자 배상 판결과 관련한 보복임은 다 아는 사실이다.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이 각의 결정을 “한국의 수출 관리제도에 불충분한 점이 있기 때문이며, 대항 조치가 아니다”고 강변했으나 논리가 빈약하다. 한국은 전략물자 및 무기 수출을 통제...
입력:2019-08-05 04:05:02
[김진홍 칼럼] 아베, 무엇을 위한 도발인가
1500년 넘은 한·일 관계史에 오점으로 기록될 일본의 만행 아베, 확인된 역사 수용하고 한국 국민에 사죄한 오부치 전 총리 본받았으면 문 대통령은 대일 포용정책 등 한반도 주변 외교에 치밀하게 나섰던 DJ로부터 배워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흡사 전쟁 전야 상황을 연상시킨다. 파국으로 치닫는 현재의 한·일 관계의 끝은 어디일까. 이러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파기와 외교관계 단절까지 가는 건 아닐까. ‘영원한 이웃’일 수밖에 없는 한·일 양국이 서로를 적대시해도 한반도 안보 환경은 괜찮은 것일까.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
입력:2019-08-05 04:05:02
[빛과 소금-윤중식] 재팬 보이콧을 넘자
매일 아침 일본 왕이 있는 도쿄를 향해 절을 하고 ‘황국신민의 맹서’를 소리 높이 외치며 자랐다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자신의 책 ‘생각’(생각의 나무)에서 지금도 소년시절을 생각하면 가위눌릴 때가 있다고 고백했다. 이 전 장관은 책에서 “일제에서 해방된 지 반세기가 훨씬 지난 오늘날에도 편견과 고정관념 그리고 흑백논리의 덫에 친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면서 “사지가 묶여 있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지만, 생각이 갇혀 있는 답답함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고 꼬집었다. 한국인 가운데 충무공 이순...
입력:2019-08-03 04:10:01
[살며 사랑하며-배승민] 마음의 장면
몇 해 전 짧은 여행을 갔다. 일정 중 반나절이 비던 차에 요가 무료체험 수업 안내문을 보고 호기심에 혼자 숙소 밖 요가스튜디오를 찾아갔다. 숲 한가운데에 자리한 오두막의 문을 열자, 제각각의 언어로 소곤거리는 투숙객들이 보였다. 그들이나 나나 낯선 수업에 우연히 떨어진 초보 중의 초보들이었다. 그러나 전면의 창으로 숲이 보이는 요가스튜디오에서 우리는 어설픈 동작일지언정 강사의 한 호흡, 한 호흡을 따라가며 자연의 거대함 속에 함께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학교와 병원 외에 트라우마 피해자들을 위한 곳에서 일을 한다. 이곳에 오는 이들에게...
입력:2019-08-02 04:10:01
[혜윰노트-전석순] 별거 아닌 질문
K는 잠이 오면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매번 눕는 순간 후다닥 달아나곤 했다. 어느새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까지 닿았다. 전문기관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쉽게 걸음을 떼지 못했다. 어디를 찾아야 할지 알 수 없었고 진료기록이 남는 것이나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곤란함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도 뚜렷한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K의 망설임은 며칠 후 나에게도 이어졌다. 검사를 마치고 나서려는데 보건소 담당자가 불러 세웠다. “시간 괜찮으면 마음건강상담실 이용해 보시겠어요?” 담당자가 가리키는 쪽으로 시선을 틀...
입력:2019-08-02 04:05:01
[샛강에서-김준동] 청량리의 추억
“오징어, 땅콩 있어요.” “삶은 계란, 김밥 있어요.” 철로의 이음매를 지날 때마다 ‘털커덩 털커덩’ 굉음이 객실 안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레일 바퀴가 빨라지는 만큼 기차는 속력을 더한다. 플랫폼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간 지 한참, 제복을 입은 홍익회 소속 남성의 거친 외침이 들려온다. 손안에 각종 주전부리를 그리 잔뜩 품을 수 있는지 참 신기하다. 망에 넣어 팔았던 삶은 계란의 맛은 잊히지 않는다. 사연을 담은 얘기들이 넘쳐날 즈음 열차는 터널로 기어들어 간다. 차창에 비친 자화상을 바라보며 저마다 회상에 잠긴다. 그것...
입력:2019-08-01 04: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