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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구 칼럼] ‘친일’ 프레임, 케케묵지 않았나



해방 74년, 정치권의 ‘친일파’ ‘친일’ 낙인 찍기는 시대착오
시효 다한 낡은 프레임 벗어나 국익 위해 전력 기울일 때
전쟁상대 손잡고 경제 일으킨 베트남의 실용주의 참고해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페이스북을 잠정적이나마 접은 건 잘한 일이다. 그로서는 일본의 경제보복과 관련해 대통령이나 청와대의 피 끓는 심경을 알리고 싶었을지 모른다. 정부의 외교 무능을 질타하는 목소리에 맞서 단합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도 같다. 하지만 동학의 처절한 저항을 떠올리게 하는 ‘죽창가’를 올리고, 대일 대응의 방법론 논쟁을 애국과 이적으로 단순 이분법 처리하는 글을 올린 건 청와대 고위 공직자로서 적절하지 못했다. 일본의 태도 변화를 끌어내기 어려울 뿐더러 결과적으로 자신이 비판했던 우리 내부 분열을 스스로 촉발시키는 셈이 된 때문이다.

인터넷 공간에선 최근 나라 안팎 상황을 구한말과 비교하는 글들이 여럿 등장했다. 청나라와 일본, 러시아와 미국 등의 틈바구니에 끼인 당시 국제정세가 미·중 무역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지금과 유사하다. 경제력을 동원해 국제 협업 질서를 깨트리고 나온 철면피 일본도 당시와 닮았다. 러시아와 중국의 군용기가 독도 영공과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하는 사태까지 빚어졌으니 강대국 각축의 광경으로 ‘기시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대통령을 임진왜란 당시 선조나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저항하던 인조로 패러디한 글들도 나와 확산되고 있다. 국민들의 위기의식이 전쟁에 견줄 만큼 크다는 의미다. 대처법이 마땅찮다는 불안감도 있을 것이다. 국민들이 자연스레 느끼는 감정이야 할 수 없지만,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가 앞장서서 전쟁과 투쟁의 역사 기억을 소환하고. 위기감을 부추기는 건 위험하다. 자칫 상황을 호도하거나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접근보다 감정에 치우친 대응으로 이끌 수 있다.

각국이 국익을 최우선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적이건 동지건 영원하지 않다는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다른 점도 많다. 지금은 제국주의의 시대가 아니다. 여전히 힘의 논리가 지배하긴 하지만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국제평화를 지킬 목적의 국제기구도 존재한다. 당시는 한반도가 단일체였다. 분단이 되고 동족상잔까지 치른 현재는 고려해야 할 변수가 더 많고 그만큼 우리가 운신하기 어렵다.

일본의 경제보복을 틈타 정치권에서 삐져나오는 ‘친일파’나 ‘친일’ 딱지 붙이기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다. 친일파의 실체가 과연 지금도 존재하는지 곰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해방둥이들이 벌써 74세가 됐다. 광복 당시 20세 성인이었던 이는 94세다. 평균수명으로 볼 때 생존해 있는 이들이 거의 없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이용해 치부하고 권력을 향유했던 인물들은 역사에서 퇴장한 지 오래다.

더구나 일본의 미흡한 반성을 대하면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듯 느끼는 데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진보-보수, 여야 구분도 없다. 일제 강점사에 같이 통곡하고, 일본의 우경화가 너도나도 눈엣가시 같다. 한·일전이 열리면 축구건 배구건 농구건 목이 터져라 응원한다. 일본에 관한 대처법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갈등과 협력 사이 목표 수위도 차이가 난다. 실용주의적 접근도 있고, 명분을 보다 중시하는 주장도 있다. 누가 더 옳다고 하기 어렵다. 상황에 따라 정답이 바뀔 수 있다. 그런데도 ‘친미’나 ‘친중’처럼 단순히 외교적 경향성을 의미하지 않고 ‘친북’처럼 강한 부정적 이미지를 동반하는 ‘친일’ 낙인을 찍는 것은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베트남을 보면 놀랍다. 1955년 시작된 남북 내전이 1964년부터 미군 등 외국군이 참전하는 국제전으로 비화됐다. 1975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20년간 베트남 인구만 해도 96만~381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베트남은 1995년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처럼 해방 후 20년 만이었다. 양국 정상이 상대국을 방문하고, 경제는 물론 군사 부문의 교류도 하고 있다. 1964년부터 8년여 참전했던 한국과도 1992년 외교관계를 회복했다. 베트남인들도 과거의 아픔과 분노를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 함몰되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위해 1986년부터 ‘도이머이(개혁·개방정책)’를 선택했다. 전후 초토화됐던 베트남은 2017년 국내총생산이 세계 46위로 도약했다.

우리 국민들은 타인을 향해 함부로 친일파나 친일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은 지 오래됐다. 유독 정치권에서 이런 단어가 종종 등장한다. 여론몰이를 통해 정적을 대중과 유리시키기 위한 정치적 의도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그들의 정파를 위한 것이지 진정으로 국익을 추구해서는 아니다. 케케묵은 프레임에서 이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우리 외교가 미국이나 중국이나 일본처럼 국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 뛰도록 정치가 뒷받침해야 한다. 도그마가 강하면 외교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해방 후에도 국민을 적으로 몰아대는 낙인으로 사용됐다는 ‘빨갱이’가 청산돼야 한다면 연원이 더 오래된 ‘친일파’ 낙인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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