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세균없는 생명체는 지구상에 없다.

가난했던 시절을 겪은 어르신들이 하는 말씀이 있다. 옛날 아이들은 지저분한 데서 아무렇게나 길러도 씩씩하게 자랐는데 요즘 애들은 깨끗하게 잘 먹는데도 더 골골한다고. 약이며 백신 같은 게 훨씬 좋아졌다는데 아토피니, 비염이니 하며 병원을 찾는 아이들은 줄지 않는다. 이런 요즘 아이들을 보면서 어르신들은 "온실 속에서만 키웠으니 툭 하면 아프지…" 하면서 혀를 찬다.

옛날보다 모든 면에서 깨끗해졌다. 아이들의 성장 환경도 마찬가지다. 예전 같으면 아이들이 흙에 뒹굴며 야생 동식물과 자연스럽게 접촉하면서 자연계의 온갖 바이러스나 균에 노출되었을 것이다. 이런 외적 요인에 몸이 적응하면서 항체도 형성시키고 웬만한 바이러스나 균에는 견뎌낸다. 그러나 각종 위생처리, 항균제품, 청결시설 등으로 철저하게 '깨끗한'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작은 환경 변화에도 몸이 화들짝 놀라며 반응한다. 외부의 적에 대해서 몸이 방어하는 기능을 '면역'이라고 볼 때 '무균생활'은 작은 영향에도 과도한 반응을 부르는 원인이 된다. 그런 과도한 반응은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

일본의 나구모 요시노리 박사는 사람의 몸을 국가라고 할 때 면역은 몸을 지키는 군대에 비유했다. 그의 설명을 빌려보자. 외부에서 침투하는 적(세균 또는 바이러스)에 대비하기 위해 어느 정도 '군사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예산의 대부분을 군사비에 쓰는 '군사국가'라면 어떻게 될까. 적을 발견하면 기관총을 쏠 것이고, 아마도 비밀경찰이 24시간 국민을 감시할 것이다. 기관총으로 적을 제압할 수 있지만 그 총탄에 시민이 다치기도 하고 주택도 파괴될 것이다. 더 지나치면 의심스러운 국민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숙청하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국토는 황폐해지고 국가기능은 마비될 것이다. 몸으로 치면 이런 상태가 바로 '면역 과잉'이다. 꽃가루 앨러지나 비염, 특정 음식에 대한 과민 반응, 아토피 이런 것들은 흔히 볼 수 있는 면역 과잉 증상들이다. 즉, 면역이 지나치다 보니 자신의 세포나 조직을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이 생긴 것이다. 나구모 박사는 사람이 걸리는 질병의 원인을 따져볼 때 50% 정도는 생활습관에서 비롯되며 나머지 가운데 25% 정도는 과잉 면역 때문에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면역 반응이 지나치게 활성화되면 사이토카인 같은 독성 화학물질이 분비돼 장기와 혈관을 손상시키고 결국은 노화로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균이나 바이러스와 적당히 '공생'하는 '면역 관용'이 있어야 최적의 건강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조그마한 세균도 허용치 않겠다는 과잉 면역이 오히려 몸을 망치는 '자기 파괴'의 결과를 가져오듯이 마음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나의 생각만이 옳고 다른 의견은 잡균이기 때문에 절대로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태도 역시 면역 과잉 이라는 점에서 자기 파괴적이다. 지난해 한국 정국이 돌아가는 모습이 꼭 그랬었다. 파리를 잡기 위해 기관총을 쏘아대는 식의 과잉 면역 반응을 보이는 군사국가 같은 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다. '세균의 씨를 말려버리겠다'는 식으로 '정화'에 열광하는 나라, 이게 과연 건강한 사회일까. 자기 파괴의 부작용은 생기지 않을까. 대한민국은 적당한 세균과 '공생'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면역 관용'을 갖춘 나라다. 다만 위기와 불안을 먹고 사는 자들은 끊임없이 대한민국의 허약함을 강조하며 면역·청결을 부르짖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세균 없는 생명체는 지구상에 없다.


이원영 LA중앙일보 논설실장 (한의학 박사)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