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 삶 보듬기] 넘어지면 일어나면 되는 것, 이제는 일어설 때

꼭 한 주간 전인 지난 3월 10일 우리 조국 대한민국에서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국민들의 손으로 직접 뽑았던 대통령을 파면시키는 판결이 있었다. 필자는 차 안에서 헌법 재판소 소장 권한 대행을 하고 있던 이정미 판사의 판결문을 생중계로 직접 들었다. 이렇게 귀결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많이 착잡했다. 처음에는 마음이 혼란했다. 앞으로 한국에는 어떤 지도자가 세워져야 할 것인가 하는 숙제가 머리를 무겁게 했다. 그러나 이왕 이렇게 됐다면 다음 단계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를 놓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이라면 어땠을까? 우리는 미국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2001년 9월에 일어났던 9.11 사건을 잘 기억하고 있다. 미국도 민 당과 공화당으로 분리되어 있는 나라다. 그런데 그 사건이 일어 난 후에 보여 주었던 정치 지도자들 이나 국민들의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눈시울을 뜨겁게 했었다. 언론들도 마찬가지였다. 연일 우리는 다시 일어 날 수 있다는 소망적인 기사들을 내 보냈다. 의견이 다르고 쟁점이 달라 경쟁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나라를 다시 일 으켜 세우는 일에는 완전히 하나가 되는 모습이었다.

우리 국민들도 바로 이런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좋겠다. 어찌 나 한 사람만의 생각이겠는가? 지금 한국의 실정은 너무 어렵다. 중국의 사드 문제나 일본의 위안부 문제나 북한의 핵무기 문제가 계속 꼬리를 물고 옥죄여 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판국에 언제까지 촛불이냐 태극기냐 하면서 분열의 자리에 앉아 있겠다고 하는가? 우리 민족의 근대사에도 많은 시련과 질곡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었다. 일본에게 나라의 주권과 의식을 송두리째 빼앗긴 채 36년 간을 지나왔고 해방된 후 5년도 채 못 되어 동족상잔의 아픔을 당했다. 그 뿐인가 4.19 학생혁명이나 5.16 군사 혁명의 소용돌이도 지나오지 않았나? 그때 마다 우리들은 다시 일어서는 저력을 발휘해왔다.

분열은 멸망이다. 나뉨은 아픈 역사를 만든다. 분열의 자리에서, 나뉨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서 손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민족이 살 수 있다. 오래전에 읽었던 짧은 수필 한 토막이 머리에 떠오른다. 글쓴이는 사냥을 좋아해 주말이면 시골로 사냥을 다녔다. 그런데 시골로 사냥을 나가면 그 동네 개구쟁이들이 사냥꾼을 졸졸 따라 다닌다. 사냥꾼들에게는 여간 성가신 존재들이 아니다. 그래서 으름장으로 그들을 쫓아 보내기 일쑤다. 그 날도 많은 개구쟁이 들이 쫓아오다가 다 쫓겨 갔는데 유독 한 개구쟁이만은 끝까지 따라 오는 것이 아닌가. 형색을 보니 이건 말이 아니다. 검정 고무신에 더러운 반바지를 입고 콧물을 들여 마셨다 냈다 하면서 두어자나 될까 말까한 새끼토막을 휘두르고 있다. 나이는 대 여섯 살이나 들어 보이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사냥꾼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 조용한 목소리로 소년을 타일렀다. “애야 아저씨 따라 오다가 넘어지면 어쩌려고 따라 오니”라고 했다. 그 개구쟁이가 사냥꾼을 빤히 올려다보면서 “으응? 이상하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되지 뭐!”라고 대답을 하더라는 글이다.

어린 코흘리개 개구쟁이의 말이 맞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면 된다. 우리 한 민족의 삶이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젠 다시 일어서면 되는 것이다. 태극기도 촛불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이제는 내려놓자 나뉨의 자리에서 일어서자. 손을 마주 잡고 다시 우리나라를 세워 나가는 일에 힘을 모아보자. 하나님은 우리가 일 곱 번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게 해 주실 것이다. (잠 24:16 참조)
 

송정명 목사 (월드미션대학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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