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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근 목사의 묵상 일침]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우리는 정체성 혼란 시대에 살고 있다. 청소년이나 청년만 정체성 혼란을 겪는 게 아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누구인지 혼란스러워한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불분명하면 방황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하지 못하면 나이가 들어도 후회로 가득한 인생을 살기 쉽다.

성경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아야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고 말씀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분의 소생이며 우리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야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나의 정체성이 파악된다.

우리가 잘 아는 구약성경 시편 23편 1절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말씀한다. 그분과 나의 관계가 목자와 양의 관계처럼 형성되어 있다. 양은 전적으로 목자에게 의존하는 존재다. 스스로 길을 개척하거나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전무하다. 오직 목자의 인도와 보호 속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양이 가는 길은 목자가 주도한다.

곧이어 시인은 하나님을 목자로 둔 인생에는 부족함이 없다고 노래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 목자가 되시기만 하면 날마다 좋은 꼴을 먹고, 쉴 만한 물가에서 배불리 마시면서 지낸다는 이야기인가. 그러면 좋겠는데 우리의 지난날을 돌아보면 그렇지 못했던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 지금 이 시간, 여러 걱정과 근심에 둘러싸여 있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상황을 중심으로 모든 일을 생각하기 쉽다. 오로지 ‘내가 아무 부족함이 없는 상태’가 되는 것에 관심을 둔다. 그런데 이 시는 ‘하나님이 나의 목자’라는 사실에 그 중심을 두게 한다. 다시 말해 부족함이 없는 상태는 다른 여건들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이 나의 목자라는 사실 하나에서 나온다. 나머지 여건들은 거기에 종속될 뿐이다.

광야에서 불평과 원망에 휩싸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공급이 아무리 있어도 만족하지 못했다. 광야에서 음식을 내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셔도 놀라워하지 않았다. 물이 없어 죽겠다 하고 하나님이 내려주신 음식은 ‘하찮다’고 불평했다.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을 목자로 여기지 않는 것이 본질적인 문제였다. 하나님을 목자로 인정하지 않으면 어떤 풍족함도 하찮은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다는 말은 우리의 신앙고백과 다르지 않다. 곧 하나님께서 가장 최선의 것으로 우리에게 주신다는 확신이다. 목자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선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아시며, 그분이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

그렇기에 우리의 지난날을 감사하자. 힘든 시간도 많았고 어려움도 있었다. 눈물이 앞을 가리게 아픈 시간도 보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셨기에 이만큼 버틸 수 있었음에 감사하자.

2023년 새해, 우리 앞에 놓인 여정을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기대하자.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다른 사람들 눈에 그 길이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 안에서 만족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이 굵은 고백이 우리의 정체성과 삶의 태도를 규정하는 근거가 되길 소원한다. 그분이 인도하시는 길은 광야길 같을지라도 가장 선하다. 그 선하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흔들림 없이 걸어가는 한 해가 되길 소원한다.

송태근 삼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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