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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제주도에서 사탕수수를 키울까

정연두 작가가 지난봄 제주시 한경면 ‘예술곶 산양’ 레지던시에 만든 온실에서 사탕수수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하와이에 가지 않고도 하와이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작업을 하기 위해 그는 제주도에서 사탕수수를 키우고 옷도 야자수 무늬 셔츠를 골라 입고 있다. 그의 작업은 서귀포 포도뮤지엄이 최근 개막한 기획전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에 초대돼 사탕수수 온실이 통째 미술관으로 옮겨졌다. 작가 제공


정연두 작가는 디아스포라 문제를 다룬 포도뮤지엄 기획전에 ‘사진 신부’를 주제로 사탕수수 온실과 함께 영상, 조각을 선보이고 있다. 설탕 공예 기법으로 제작한 ‘사진 신부’ 인물 군상. 손영옥 기자


‘사진 신부’ 포즈를 따라하는 모습. 포도뮤지엄 제공


영상에서 애월고 여고생들이 훌라춤을 추는 장면. 손영옥 기자


“사탕수수라고요, 그게 우리나라에서 자랄 수 있긴 한가요.”

지난 1월 서울에서 만난 미술작가 정연두(53)는 곧 제주도에 갈 거라고 했다. 뜬금없이 사탕수수를 키울 거라고 해서 놀라 되묻는 나에게 작가는 궁금하면 나중에 한 번 와보라고 제안했다.

성균관대 미대 교수인 작가는 올해 상반기 안식년을 얻었고 마침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운영하는 제주 한경면 소재 레지던시(정부 등이 무료로 제공하는 작업실) ‘예술곶 산양’에 입주할 수 있었다. 한국은 북회귀선 위쪽이라 노지에선 사탕수수가 자랄 수 없다. 레지던시에 온실을 짓고 사탕수수를 키웠다. 오키나와산 사탕수수 400주는 28도 이상의 온도가 유지되는 온실에서 쑥쑥 자랐다.

그 사탕수수 소식이 궁금해 작가에 연락했더니 온실째 서귀포시 안덕면 포도뮤지엄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포도뮤지엄에서 하는 기획전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에 초대된 것이다. 개막 하루 전인 지난 4일, 작품 설치를 막 끝낸 작가를 전시장에서 만났다.

정 작가가 도시 농부가 되고 싶어 사탕수수를 키운 것은 아닐 테다. 사탕수수를 매개로 그가 전하고 싶은 건 뭘까. 그는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인 개인전 ‘DMZ 극장’에 대한 얘기를 먼저 꺼냈다. ‘DMZ 극장’은 2017년부터 2년간 휴전선을 따라 동부전선에서 서부전선까지 13개 전망대를 50여 차례 방문하며 촬영한 사진, 인터뷰, 퍼포먼스로 꾸며졌다. 전시를 준비하려고 탈북자도 만나 인터뷰한 작가는 자기 땅을 떠나 이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국토를 동서로 횡단할 수는 있었지만, 북으로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던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그는 한국이 반도가 아니라 섬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관심은 그렇게 섬으로 확장됐다.

그 섬, 하와이는 그렇게 머릿속에서 떠올랐다고 했다. 사진과 영상, 설치미술을 넘나들며 작업을 하는 정연두는 어떤 작업을 하든 리서치를 한다. 인기 신혼여행지 하와이는 근대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사탕수수 이민 노동자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 그래서 박정희정권 때 ‘관광 제주’를 육성하기 위해 야자수를 심어 한국에서 가장 하와이 같은 풍광을 지니게 된 제주를 찾아가 사탕수수를 키우게 된 것이다.

김희영 디렉터가 기획한 포도뮤지엄 전시 주제는 ‘디아스포라와 세상의 모든 마이너리티’다. 갖가지 이유로 지리적·정서적 영토를 벗어나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존재들에 주목하면서 문화적 다양성을 수용하는 포용적 태도를 제안하자는 취지다. 김 디렉터는 “사회적 조건에 따라 주류, 비주류로 구분되기 이전에 우리는 수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전시를 통해 다양한 정체성이 공존하는 세상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국 작가로는 정연두와 함께 이배경 강동주, 외국 작가로는 호주로 이민 간 필리핀 부부 예술가 알프레도 & 이자벨 아퀼라잔, 존 레논의 배우자이자 일본 작가인 오노 요코, 스위스 미술가 우고 론디노네 등 7명(팀)이 초대됐다.

정연두의 작품 제목은 ‘사진 신부’다. 하와이 이주 노동자의 역사를 조사하던 그는 책에서 한 장의 사진을 발견하곤 눈을 떼지 못했다. 대한제국기인 1903년 처음 하와이로 건너간 노동자들은 점점 증가해 그 수는 1905년 이주 노동이 금지될 때까지 약 7200명에 달했다. 대부분 독신이었던 그들은 신붓감을 고국에서 데려왔다. 남편감의 사진만 보고 이역만리 하와이로 간 사진 신부의 행렬은 1910년부터 24년까지 이어졌다. 그들 중 11명의 아가씨가 현지 사진관에서 찍은 빛바랜 사진이 기록처럼 남아 있었던 것이다. 신랑감들이 10년 전, 20년 전 사진을 보낸 탓에 삼촌뻘, 아버지뻘 남자와 살아야 했던 18세 전후의 앳된 얼굴에는 불안과 두려움, 기대가 교차한다. 식민지 조선에는 유학을 통해 이국을 경험한 나혜석 같은 부유층 신여성도 있었지만, 이처럼 ‘가족과 단절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땅으로 떠났던 또 다른 부류의 신여성’도 있었던 것이다. 과일이 땅에 굴러다니고 돈도 빗자루로 쓸어 담을 정도로 많이 벌 수 있는 낙원이라는 감언이설에 속아 한 달 넘게 배를 타고 온 하와이는 그들이 감내해야 할 또 다른 현실이었다.

정 작가는 “하와이에 가지 않고도 하와이 이주 노동자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작가는 애월고등학교 여학생 11명과 워크숍을 했다. 100여년 전 하와이로 떠난 18세 전후의 가난한 신여성들의 마음을 읽기 위해서다. 지금의 이들은 사진 속 과거의 그들과 같은 숫자이고 같은 나이인 18세 소녀들이다.

작가가 의도했던 바에 가까이 가려면 포도뮤지엄 내 사탕수수 온실에 설치된 영상을 오래도록 봐야 한다. 지금의 이들은 영상 속에서 ‘사진 신부’의 한복 복장을 하고 그들처럼 사진을 찍는다. 훌라춤을 배워 가장 하와이 같은 장소인 올레길 7코스에서 훌라춤을 춘다. 모슬포항의 식당 ‘글라글라하와이’도 이름 덕분에 로케이션 장소가 됐다. 얼핏 제주에서 ‘하와이 흉내 내기’를 하는 것 같은 작품으로 오인하기 쉽다. 하지만 영상을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뭉클해지는 지점이 있다. 작가는 지금의 18세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낙원이란? 결혼이란? 가족이란? 또 헤어짐과 고통이란? 낯선 장소에서의 희망과 꿈은 또 뭐냐고?”

영상 속에서 면사포를 쓰거나 머리에 큼지막한 꽃을 단 채 등장한 지금의 18세들이 답한다. “결혼은 두 사람이 하는 거니까 제가 실패하면 함께 실패하는 거잖아요.” “저는 (결혼에) 긍정적이에요. 엄마 아빠가 사이가 엄청 좋거든요. 저희 앞에서 뽀뽀하고 그런단 말이에요.” “낙원요? 밥 먹고 싶을 때 밥 먹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거 그게 낙원이 아닐까요.”

영상 속에서 지금의 18세들은 깔깔거리고 훌라 춤을 추며 매력적인 웃음을 짓고 어떤 질문에는 와락 눈물을 쏟아내기도 한다.

분명 현재의 그들이 답하는데도 100여년 전 사진 신부들이 오버랩되는 지점이 있다. 사탕수수를 옮겨심기 위해 토심만큼 미술관 바닥을 올려서 조성한 온실에는 흙냄새가 밴 열기가 후끈했다.

정 작가는 서울대 미대 조소과를 나왔다. 그럼에도 좀체 조각을 하지 않았지만, 이번엔 설탕을 사용해 조각 작품을 했다. 작가는 “설탕은 16∼17세기 유럽에서 후추와 더불어 귀한 수입품이었다. 금보다 귀한 것이어서 왕이 파티를 열 때 설탕으로 조각을 만들어 부를 과시했을 정도”라고 했다. 지금도 케이크의 장식에 ‘슈가 크래프트’의 전통이 남아 있다. 작가는 조각에서 쓰지 않는 재료인 설탕 반죽을 사용해 사진 신부들의 이미지를 입체 작품으로 만들었다. 사탕수수 잎으로는 종이를 만든 뒤 그 위에 야자수 무성한 풍경을 그려 넣어 사진관의 배경 스크린처럼 내걸었다. ‘이발소 그림’처럼 일부러 촌스럽게 그린 회화, 조야하게 만든 조각품이 묘하게 레트로 감성을 자아내며 우리를 과거로 날아가게 만든다.

작가는 “우리는 사탕수수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런데 사탕수수에서 나오는 설탕은 매일 먹는다. 그 낯선 익숙함이 궁금했다”고 했다. 가장 익숙한 것이 가장 이국적인 게 되는 역설이다. 익숙함을 뒤집어 보고 애환의 근대사를 더듬어보고 싶다면 관람을 권한다. 내년 7월 3일까지.

서귀포=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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