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포도 한 상자



어제 과일가게에 갔다가 포도 한 상자를 샀습니다. 가을인데 아직도 포도가 나오니 신기했고, 올해 마지막 포도이겠구나 싶었습니다. 신학생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시간 강의로 생계를 이어가던 때라 여름방학이 되면 수업이 없어 경제적으로 참 힘들었습니다. 8월에 생일이 있는 아내는 포도를 좋아합니다. 아내 생일에 마트에서 포도 몇 송이를 집어 계산대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계좌 잔액 부족으로 결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해는 아내에게 포도 한 송이도 사주지 못하고 넘어가야 하나 싶어서 속상했습니다.

그 주일 교회에 갔더니 교육전도사로 섬기던 부서의 한 권사님이 포도를 한 상자 주셨습니다. 그런 적이 없던 분이었는데 그날은 포도를 교회로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 순간 권사님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입니다. 우리의 작은 소원 하나도 다 알고 들어주시는 분입니다. 포도 한 송이 먹지 못하고 넘어가지 않게 세밀하게 배려해 주시는 분입니다. 지금은 언제든 사 먹을 수 있고 상자째 살 수 있지만, 그해에도 포도 한 송이 못 먹어 한이 되지 않도록, 아내에게 정말 미안하지 않도록 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런 하나님이 너무 좋고 너무 멋있습니다.

손석일 목사(서울 상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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