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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 배움의 전능



작년 크리스마스에 기타를 선물 받았다. 언젠가 기타를 치고 싶다고 떠들어온 나에게 주어진 사려 깊은 선물이었다. 나는 내 첫 통기타를 거실 한켠 녹보수 나무 곁에 세워 두었다. 나무들끼리 친하게 지내라는 뜻에서였다. 봄이 무르익을수록 한 나무는 잎사귀를 늘리며 생기를 더했다. 곁의 나무는 두 계절째 고요히 말라갔다. 단정한 직선과 풍부한 곡선으로 이뤄진 이 아름다운 악기의 침묵을 바라보고 있자니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기타를 치겠다고 수없이 입을 놀렸던 업보를 회수할 시간이었다.

기타 레슨을 받고자 탐색을 시작했다. 온라인 강습이나 학원 수업도 있었지만 좀 더 낭만을 쫓고 싶었다. 그때 평소 좋아하던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수업도 진행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운이 좋게도 자리가 있어 제자가 될 수 있었다. 첫 수업을 들으러 가는 날 커다란 기타를 메고 도심 복판을 가로지르는데 묘한 흥분감이 들었다. 그것은 ‘뭐라도 된 듯한’ 마음이었다. 물론 이 바쁜 현대 사회에서 거리를 스쳐가는 이가 기타를 짊어지고 가건, 알파카를 들쳐 업고 가건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방랑 뮤지션이었다. 도레미파도 모르는 주제에 서툰 낭만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첫 수업에서 기타를 잡는 자세와 기초적인 음악 이론을 배웠다. 먼 옛날 나무의자가 삐걱거리는 음악실에서 주워섬긴 먼지 낀 지식들이 소환됐다. 으뜸음, 버금음, 딸림화음 같은 단어들이 등장할 때마다 선생님의 보면대, 고개를 까딱거리던 메트로놈, 반질거리던 리코더 따위가 떠올랐다. 그다음 시간에는 코드를 배웠다. 개방현으로 퉁기면 저마다의 수다에만 여념이 없어 듣기 거북했던 소음들이 왼손으로 맥을 좀 짚어주자 정돈된 화음으로 탄생하는 것이 신기했다. 내가 음계를 건축하고 있었다.

기본 코드들을 익히자 곧장 완결된 곡으로 넘어갔다. 세상 모든 노래는 ‘노래 제목+코드’라고 검색하면 누군가 친절히 정리해둔 악보가 튀어나왔다. 마치 가나다를 배우고 나면 세상 모든 글을 읽는 권능을 획득하는 것처럼 코드를 알기 시작하자 음악을 읽어낼 수 있었다. 나는 평소 좋아하던 노래, 평생 듣기만 하던 노래의 코드를 익혀 나갔다. 음악이라는 것은 아름다운 풍경이 끝없이 이어지는 기차 여행 같았는데 그 선로에 일종의 규칙성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비밀 암호를 알아낸 기분이었다. 오랜 세월 사랑해온 두 노래가 비슷한 코드로 진행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천기누설이라도 당한 기분이었다.

근래에는 내 반주에 맞춰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한국인답게 가무를 좋아하지만 그 앞에는 ‘음주’라는 단서가 붙곤 했다. 회식 자리에서 흥이 잔 밖으로 넘칠 때 우리는 꼭 노래방에 갔다. 어두운 조명과 취기로 부끄러움을 이겨낸 사람들이 힘껏 노래하곤 했다. 하지만 근래에는 팬데믹 시대를 맞이해 마이크를 잡아본 지도 아득했다. 그래서 처음엔 노래 자체가 다소 어색했는데 듣는 이 없이 부르는 노래는 혼잣말처럼 금세 편안해졌다. 어느 날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흥얼거리며 깨달았다. 나는 하나의 새로운 언어를 손에 넣은 거라고.

평소 시와 노랫말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오곤 했다. 나는 시적인 걸 넘어서 시를 압도하는 가사들을 알고 있다. 그 글귀들은 실제 문학적 가치도 충만하지만 굉장한 조력자를 갖고 있다. 그 언어는 멜로디를 타고 진행되는 것이다. 글줄 다루는 사람들이 그다지도 부여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 감성, 리듬, 심상이 글과 다른 차원의 방식으로 협응하고 있었다. 말에 리듬과 가락이 붙으면 글자를 더듬는 것보다 풍성한 언어가 된다. 이 언어는 동물적이면서 식물적이었다. 포효하고 도약하면서도 파고들고 번성했다. 그 무한한 세계의 낌새를 알아챈 나는 몹시 설렌다. 붓과 펜을 넘어 내 속엣말을 표현할 도구가 늘어났다는 사실이. 물론 이 흥분은 막 문외한을 벗어난 초심자의 기본 정서일 것이다. 나는 한창 이럴 때다.

홍인혜 (시인·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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