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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in 이건희 컬렉션] 프로이트 만난 달리, 초현실주의 대신 고전주의로 기울어

살바도르 달리, ‘켄타우로스 가족’, 캔버스에 유채, 35 ×30.5㎝, 1940년 작.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스페인 작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는 시계가 마치 치즈처럼 축 늘어져 있는, 그 유명한 그림 ‘기억의 지속’(1931년 작)으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이 작품이 보여주듯 초현실주의 작가로 분류된다.

시인 앙드레 브르통이 이끄는 초현실주의는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의 정신분석학에 영향을 받아 무의식의 세계나 꿈의 세계를 형상화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이듬해인 1919년에 시작돼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까지 약 20년간 프랑스를 중심으로 성행했다. 참혹한 전쟁을 겪으며 현실 세계에 대한 불신과 문명에 대한 혐오가 커지자 이성이 아닌 상상력이 예술과 사회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초기에 인상주의 입체주의 미래주의 등을 섭렵하던 달리는 1929년부터 초현실주의 운동에 가담했다. 이 해 그는 초현실주의의 대표적인 시인 폴 엘뤼아르와 함께 그의 부인 갈라를 동시에 만났는데 그만 갈라와 불륜에 빠졌다. ‘기억의 지속’은 불륜 사실이 알려져 아버지에게서 쫓겨나 고향 근처에 살던 시절에 그린 작품이다.

파티가 끝난 후 두통으로 혼자 집에서 쉬던 그는 잠이 들었다 깨어나 시계를 보게 됐다. 너무 느리게 흐르는 시간이 카망베르 치즈처럼 녹아 흐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며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됐다고 한다. 녹아내리는 시계를 걸쳐둔 상자는 계단의 또 다른 이미지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1900)에서 계단이나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것은 성행위를 뜻한다. 프로이트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달리의 그림에는 이 계단이 많이 등장한다.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된 ‘켄타우로스 가족’(1940)은 초현실주의가 아니라 르네상스 미술의 고전주의를 지향하며 그린 것으로 해석된다. 초현실주의 운동은 무의식을 표현하는 게 핵심이고 그림에서도 의식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켄타우로스 가족’은 매우 의식적으로 르네상스 대가들이 사용한 삼각형 구도와 균형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내용은 그리스 신화의 반인반마(半人半馬) 종족인 켄타우로스에게 캥거루처럼 육아낭이 있어서 거기로부터 아기들이 빠져나오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달리는 프로이트의 제자인 심리학자 오토 랑크의 이론에 영향을 받아서 이 그림을 제작했다. 랑크는 인간이 출생할 때 겪는 육체적 고통과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분리되는 정서적 고통이 최초의 트라우마이며, 이러한 출생 트라우마가 인간의 불안과 신경쇠약의 근원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선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반영한 작품을 여럿 남겼던 달리는 “낙원 같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갈 수 있는 켄타우로스가 부럽다”고 했다.

그는 이 그림에서 왜 초현실주의를 버리고 고전주의를 택했을까. 우상 프로이트를 만난 경험이 작용했을 것이다. 1938년, 달리는 죽기 1년 전의 프로이트를 런던에서 만났다. 프로이트는 “사실 지금까지 나를 수호성인쯤으로 여기는 초현실주의자들을 어릿광대쯤으로 생각해왔네. 하지만 이 에스파냐 젊은이가 내 생각을 재검토하게 했다네”라며 극찬했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더 했다. “당신 그림에서 내 관심을 끄는 건 무의식이 아니라 의식이군요.”

이 시기는 초현실주의 동료들로부터 배척당하던 때였다. 달리의 그림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성적인 암시가 지나치게 반동적이며, 사회 비판이라는 초현실주의의 정치적 이상을 상실했다는 비난을 받자 그는 초현실주의자와 결별했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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