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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스웨그백



스웨그(swag).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한여름 밤의 꿈’에서 처음 사용한 swagger에서 유래한 말로 ‘거들먹거리다’ 정도로 번역된다. 도둑들의 약탈품이라는 속어로도 쓰인다. 요즘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자신만이 낼 수 있는 멋이나 분위기를 일컫는 말로 힙합 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으로 많이 사용된다. 스웨그에 음악회나 전시회 등에서 나눠주는 무료 판촉물이나 상품이란 뜻도 있다.

스웨그백. 아카데미 시상식 주요 부문 후보자들이 상을 못 타더라도 빈손으로 가지 않도록 주는 선물 가방이다. 배우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받은 후 아카데미 선물 가방까지 화제가 됐다. 한 보따리 두둑하게 챙겨주는 이 가방의 가치는 대략 2억원이 넘는다. 외신이 공개한 스웨그백은 화려하다. 캘리포니아 골든도어 스파 숙박권, 성형시술권, 자산관리 교육권 등 각종 서비스 이용권과 초콜릿 위스키 같은 먹을거리로 채워져 있다. 지난해는 남극부터 지중해까지 항해하는 초호화 크루즈 여행권 2장도 들어있었다고 한다.

함정이 있다. 무료로 주긴 하지만 세금을 내야 한다. 미국 국세청이 부과하는 세금은 50%. 2억원 상당의 이 가방을 받으면 1억원 정도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세금 폭탄 가방인 셈이다. 오스카 후보자들은 선물 수령을 거부할 수 있지만, 대부분 기념으로 받아 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방은 오스카상을 주관하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와 관련이 없다. ‘디스팅크티브 에셋’이라는 회사에서 마케팅 차원으로 마련했다. 스타들의 유명세를 활용해 상품 홍보를 원하는 업체의 제품을 모아 만든 것이다. 캘리포니아에서 합법인 각종 대마초 성분 제품도 들어있다. 이미지 훼손을 우려하는 아카데미로서는 오히려 골칫거리다. 아카데미는 2016년 소송을 내 이 업체가 오스카와 전혀 관련 없음을 가방에 명시하도록 했을 정도다.

지난해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올해 ‘미나리’의 윤여정에 이어 내년엔 또 어떤 한국 영화인이 스웨그백을 만나게 될까. 이런 상상, 행복하지 아니한가.

한승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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