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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동철 칼럼] 무용지물 인사청문회



숱한 도덕적 흠결에 전문성도 부족한데 황희 문체부 장관
임명한 것은 인사청문회 취지 무력화하는 인사권 남용
야당 반대에도 임명 강행 문재인정부 29건 역대 최다
청와대, 인사 검증 강화하고 지명 후에 중대한 결격 사유
확인되면 지명 철회해 제도 실효성 높일 책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정의용 외교·황희 문화체육관광·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정 장관과 황 장관은 야당이 반대했는데도 문 대통령은 여당 단독으로 인사청문 경과 보고서가 채택된 다음 날(11일) 임명을 재가했다. 대통령에게 인사권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도 뒷맛이 씁쓸하다. 특히 야당은 물론 다수 언론이 부적격이라고 평가한 황 장관을 임명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도덕성, 전문성 어느 쪽을 보더라도 그는 적임자로 보이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재선 의원인 황 장관은 후보자로 지명된 후 숱한 도덕성 논란에 휩싸였다. 당초 한 달 생활비가 60만원이라고 밝혀 정치자금 유용 등 비정상적 지출 경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자초했다. 회기 중 가족 해외여행, 박사학위 논문 국회 보고서 베끼기 의혹, 특목고·자사고 폐지를 주장하면서도 자녀는 외국인 학교에 보낸 사실 등으로도 구설에 올랐다. 국회 본회의 기간에 병가를 내고 가족과 함께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것은 일반적인 수준의 도덕관념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부적절한 처신이었다. 황 장관은 이런 의혹들을 말끔히 해소하지 못했다. 전문성에서도 그는 내세울 게 없어 보인다. 부동산·도시 분야 전문가를 자처했고 상임위도 국토교통위와 국방위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문체부 장관 적임자라고 하기엔 무리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황 장관이 친문 의원 모임의 주요 멤버라서 자리를 챙겨준 것 아니냐는 세간의 추측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취임해 장관직을 수행하고 있는 마당에 이런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이번 인사가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를 상기시킬 필요가 있어서다. 흠결이 많아도 임명되면 그만이라는 여권의 안이한 인식에 균열을 내고 싶어서다.

문체부 장관은 문화·체육·관광 행정을 총괄하는 정부 부처의 수장이고, 정부의 최고정책심의기관인 국무회의 구성원이다. ‘내 사람’이라고 선심 쓰듯 앉혀도 되는 자리가 아니다. 황 장관 임명은 인사청문회 취지를 망각한 것이다.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의 자의적인 인사권을 견제하고 능력과 도덕성을 겸비한 인재를 고위 공직자로 발탁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 아닌가.

역대 대통령들이 후보자의 흠결에도 임명을 강행한 사례가 많지만 문 대통령은 정도가 가장 심하다. 국무위원이 인사청문회 대상에 포함된 이후 야당의 반대에도 임명한 사례는 노무현정부 3명, 이명박정부 17명, 박근혜정부 10명인데 출범 3년10개월째인 이번 정부는 벌써 29명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야당이 인사청문회를 정쟁의 장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불만이지만 인사청문회가 무용지물이 되다시피 한 데는 문 대통령과 여당의 책임이 더 크다. 최재형 감사원장,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한정애 환경부 장관 등 야당이 청문보고서 채택에 협조한 사례가 꽤 있는 걸 보면 야당 탓으로 돌릴 일이 아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무리한 인사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인사청문회가 통과의례로 전락하면서 무용론이 나오고 있다. 여당은 후보자 감싸기에, 야당은 후보자 망신시키고 의혹 부풀리기에 급급하고 대통령은 청문회 결과가 어떻든 무시하고 임명을 강행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이런 청문회를 계속해야 하느냐는 소리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인사청문회의 순기능이 크기 때문이다. 고위 공직자의 도덕적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부적격자들에게 일정 정도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고 공직사회는 물론 우리 사회 전반의 도덕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 제대로만 운영된다면 국회가 대통령의 자의적 인사권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다. 취지와 장점을 살리고 단점, 부작용은 줄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 실효성을 높이는 게 바람직하다.

도덕성은 비공개, 정책과 자질은 공개 검증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도덕성 검증이 위축되는 방식은 곤란하다. 무엇보다도 청와대는 더 엄격한 인사 검증을 통해 부적격자를 걸러내야 한다. 인물난을 호소하지만 내 사람, 내 편만 보지 말고 중도층 전문가로까지 인재풀을 넓히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검증에서 파악하지 못한 결정적 흠결이 추후 드러나면 지명 철회도 열어둬야 한다. 인사청문회 무용론을 불식시킬 열쇠는 청와대가 쥐고 있다.

라동철 논설위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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