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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실수라는 거름



실수는 아차, 하는 순간에 나왔다. 상황을 알아차리고는 온통 뒷수습에 매달리느라 깊이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는데, 막상 일이 수습되자 이상하리만치 그 실수가 머릿속에서 떨쳐지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일이 많으니 그럴 수도 있다, 잘 수습이 됐으니 신경쓰지 말라고 위로해줬지만, 왠지 바닥에 떨어져 뭉개진 마음은 좀처럼 추슬러지지 않았다. 예전에도 일정이 겹쳐 중요한 회의를 놓치거나, 수업하러 가야 할 시간을 잘못 알고 있다가 허둥지둥했던 적도 있었는데, 왜 유독 이번에는 뼈아프게 괴로운 상태가 가시지 않았던 걸까.

‘실수는 성공의 아버지’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고들 한다. 아이들이 실수하고 당황하면, 많은 어른들이 누구나 처음에는 실수하니 괜찮다, 다음에 잘하면 된다면서 웃으며 넘긴다. 그런데 그게 과연 위로가 될까? 이렇게도 쉽게 일어나는 실수인데, 아무리 조심해도 혹은 반복해도 나아지지 않고 또 잘못하면 어쩌나 싶어 불안이 더 커지지는 않을까? 나 역시 실수를 맞닥뜨린 순간 그 자체의 경중보다는, 이제는 사회초년생도 아닌데 혹시 또 이러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더 짓눌렸던 것 같다. 복잡한 사회를 사는 현대인에게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는 하나의 미덕인 듯 보인다. 하지만 적당히 쓰면 약인 것도 과다하면 독이 되듯, 완벽을 위해 쏟는 에너지는 언젠가는 고갈돼 결국 문제가 된다. 기계도 고장이 나고 컴퓨터도 오류를 일으키듯, 아무리 완벽하려 해도 100% 완벽한 무결점 인생이란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아니길 바라지만, 지금까지처럼 나는 앞으로도 살아가며 또 실수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민망한 통증에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거나 뚜껑이 열린 채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그 경험을 다듬어 양질의 거름으로 만드는 노력은 끝이 없음을 받아들일 나이가 된 것 같다. 생각할수록 여전히 속이 뜨끔해지는 그날의 실수를 떠올리며 다시 한 번 호흡과 마음을 가다듬는다.

배승민 의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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