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미분류  >  미분류

새 예배당 이전 감격적인 첫 예배 성전 차고 넘쳐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가 2005년 10월 경기도 용인 ‘프라미스 콤플렉스’ 입당예배 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다.


성도들의 기도 제목을 담아 봉인한 타임 캡슐.




2005년 7월3일. 경기도 용인 죽전으로 이전한 새 예배당 1층 비전홀에서 첫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것이 아닌가. 마음이 무거워졌다. “갑자기 이전하느라 광고도 두 주밖에 못 했는데 성도들이 잘 찾아올까.”

비가 내리는 창문가에서 흐린 하늘을 보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주여, 새에덴의 성도들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함께 감격적인 첫 예배를 드리게 하소서.” 역시 하나님은 살아계신 언약의 하나님이요, 새에덴의 하나님이셨다. 직분자들과 성도들은 누구 하나 말하지 않아도 각자의 맡은 자리에서 조금의 빈틈도 없이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해 줬다.

첫날부터 프라미스 콤플렉스(Promise Complex)로 들어오는 예배자들의 우산이 물결처럼 펼쳐졌다. 1부 예배를 드릴 때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눈물이 쏟아져 말을 잘 이어갈 수 없었다. 아직은 본당이 아닌 비전홀이었지만 예배 1부부터 4부까지 가득가득 차고 저녁 예배도 가득 찼다. 너무도 하나님께 감사했고 새에덴의 성도들에게도 눈물겹도록 감사했다. 할 수만 있다면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다 손을 잡아주며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고 싶었다.

설교 전 진심으로 성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큰절을 올렸다. 나와 동고동락하며 보필해 줬던 장로님들을 일으켜 세웠고 성도들은 함께 눈물을 흘리며 감격의 박수를 쳤다.

첫 예배를 드렸던 비전홀은 눈물과 감격의 도가니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다. 밤 예배까지 다섯 번의 예배를 드리고 난 다음 날, 구미동의 구 성전을 넘겨받은 교회 담임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소 목사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솔직히 나는 새에덴교회 성도들이 몇십 명은 남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단 한 명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얼마나 광고를 단단히 하고 성도들을 이 잡듯 잡아갔으면 단 한 명도 남지 않았단 말입니까. 구 예배당 앞의 빌라나 아파트에 사는 성도들이 단 한 명이라도 남아 있으면 내가 이런 전화 안 합니다. 어쩌면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물론 나에게 따지기 위해서 전화한 것이 아니라 감동 반, 당황 반의 전화였다. 성도들에게 반드시 다른 교회가 인수한 구 예배당에 남지 말고 새 예배당으로 오라고 광고한 적은 없었다. 그냥 7월3일부터 새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2주 광고를 했을 뿐이다. “단 한 명도 남지 않았다니.”

그다음 주 광고를 했다. 교회가 조금 멀어서 불편하신 분들은 구 예배당을 넘겨받은 교회에서 편안하게 신앙생활 하셔도 좋다고 말이다. 그렇게 광고를 했는데도 단 한 사람도 거기에 남은 사람이 없었다. 하긴, 예배당을 짓는 과정에서 단 한 사람도 건축 문제로 교회를 떠난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거의 갑절이나 부흥했으니 하나님의 은혜가 그처럼 압도적으로 임했다.

드디어 2005년 10월22일. 그토록 고대하던 새 성전 입당 감사예배가 열렸다. 구름떼처럼 몰려드는 성도들로 프라미스홀 뿐만 아니라 비전홀, 교육관까지 꽉 찼다. 예배는 1만명이 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님께서 설교해 주셨고 고 김준곤 목사님, 조용기 목사님, 오정현 목사님, 미국 새들백교회 릭 워런 목사님 등 교계 지도자와 고건 전 대통령 권한대행, 김원기 국회의장,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 힐러리 상원의원을 비롯한 수많은 정관계 인사들이 영상 축사 및 축하 편지를 보내왔다.

조용기 목사님은 “소 목사의 불꽃 같은 영성과 용기는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의 가슴에 큰 도전과 감동을 주었으며 침체된 한국교회에 새로운 활력을 주고 있다. 그 힘을 발판으로 다음세대를 이끌어갈 훌륭한 목회자로 계속 성장해 가시기 바란다”고 축하해 주셨다.

김준곤 목사님은 이렇게 축하해 주셨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2억명의 기독교인을 만들었듯이 소 목사도 한국의 빌리 그레이엄이 될 것을 확신한다. 새에덴교회가 한국의 영적인 장자교회가 돼 세계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위대한 교회가 될 것을 믿는다. 또한 소 목사는 꿈과 비전의 사람이므로 그의 꿈이 놀랍도록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나는 지금 거룩한 흥분 속에 쌓여있다. 내가 있는 지금 이곳이 바로 기적의 현장인 것 같다.”

입당 감사예배를 마친 후, 언약기도문을 작성해서 타임 캡슐에 담아 봉인했다. 성도들은 어린 자녀의 이름 등 가족 모두의 이름을 적고 자신들의 기도 제목을 적어서 제출했다. 그 모든 기도문을 함께 모아 타임 캡슐에 넣었다. 타임 캡슐 언약기도문은 30년 후 함께 감사예배를 드리며 열어서 하나님의 축복과 기적을 확인할 계획이다.

나는 3M(맨손, 맨몸, 맨땅)으로 시작해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놀라운 목회의 축복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은 내 노력이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 새에덴교회는 죽전 신도시로 이전을 한 후 부흥의 폭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은 새에덴교회를 쓰시고자 예비하신 하나님의 섭리요, 인도하심이었다.

▒ 왜 ‘생명나무 목회’인가
선악과적 신앙을 택한 사람들

고라와 다단, 아비람, 온은 선악과를 선택하는 불행을 겪었다. 고라는 레위 지파 고핫의 손자로 이스할의 아들이며 모세의 사촌이다. 모세와 가까운 위치에 있어 성막을 쓸고 손보는 일을 맡았다. 얼마나 아름다운 직분이며 축복되고 귀한 사역인가. 그런데 선악과를 선택하다 비참한 종말을 맞고 말았다.

고라, 다단, 아비람, 온은 어떻게 선악과를 선택해 저주와 심판의 길로 가고 말았는가. 첫째, 그들은 모세의 영적 권위에 도전했다.(민 16:1~2)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향해 “너만 하나님의 종이냐. 우리도 하나님의 종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너희를 회중 앞에서 높이지 말라”고 대적하며 사람들을 선동하고 다녔다. 그때 그것을 지켜보던 총대(족장급에 속한 유지) 250명도 그들 편에 서서 함께 모세의 영적 권위에 도전했다. 하지만 모세는 좋은 말로 그들을 타일렀다.

그러나 다단과 아비람은 모세의 말을 무시하고 오히려 온갖 불평과 원망을 쏟아냈다. 그들은 자신의 기준과 선악논리로 모세를 판단하고 공격했다. 그들 생각으로는 자기들이 끝까지 옳은 소리를 하는 줄 알았지만 결국 하나님 앞에는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멸망과 파멸의 당사자가 되고 말았다.

둘째, 그들은 모세의 영적 지도력에 도전했다.(민 16:12~14) 자신의 생각이나 선악 마인드로 하나님의 뜻을 판단하고 모세의 영적 지도력에 반기를 들었던 것이 얼마나 무서운 심판과 저주를 불러오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명나무 신앙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악과적 신앙을 선택했다. 교회에서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이 ‘덕’이다. 그리고 ‘덕’보다 중요한 게 ‘사랑’이다.(벧후 1:5~7) 똑같은 일을 처리하더라도 덕을 세우면서 사랑으로 처리해야 한다. 공동체에는 덕이 되고 내게는 은혜와 생명이 돼야 한다.

셋째, 그들은 하나님의 권위와 약속에 도전했다.(민 16:11) 성경은 모세를 거스르는 것을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백성들의 모세에 대한 원망은 곧 그를 세우신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고라와 다단, 아비람과 온을 지진과 불과 염병으로 심판하셨다.(민 16:31~35)

그리고 이것을 지켜보며 원망한 백성들에게까지 염병을 내려 심판하셨다.(민 16:49)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지도력을 부인하거나 도전해서는 안 된다.

반면 하나님께서는 고라 일당의 사건 이후 모세의 권위와 지도력을 더 높여 주셨다.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 살구 열매가 맺는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모세와 아론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셨다.(민 17:8~9) 그리고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언약궤 앞에 두도록 했다.(민 17:10) 앞으로 올 다음세대에게 절대로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의 영적 권위와 지도력을 부인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신 것이다.

오늘날도 생명의 마인드로 영적 지도자를 대하지 않고 선악의 마인드로만 판단하면 자칫 영적 지도자의 권위에 도전하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중직자일수록 더 그렇다. 이상하게 초신자일 때는 오직 교회, 오직 목사님밖에 모르던 사람들이 안수집사가 되고 장로가 될수록 더 목이 뻣뻣해지고 자기 생각만을 앞세우려는 현상이 종종 나타난다. 이것은 신앙을 불행하게 만드는 아주 치명적인 선악과적 생각이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선 각 직분에 상응하는 영적 권위를 주셨다. 그러므로 그 영적 권위를 파괴하는 것은 하나님이 절대로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선악적 마인드로 교회 생활을 하지 말고 생명나무의 마인드를 가지고 교회 생활을 해야 한다. 교회 안에 생명나무 신앙이 풍성하면 아름다운 영적 질서 안에서 복된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소강석 목사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