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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부터 해방까지 한국 미술시장의 변천사 조명

1905년 영국 런던에서 발행되던 매체 ‘더 그래픽’에 실린 삽화. 조선 상인이 서양인을 상대로 항아리 가격을 흥정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푸른역사 제공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풍경을 떠올려보자. 전시장에 들어서고, 작품들이 걸려 있고, 천천히 그림을 감상하고,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구매하고…. 그런데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전시장에서 그림을 관람하는 문화는 한국인에겐 언제부터 보편화됐을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1920년대다.

예상하다시피 조선 시대엔 지금과 같은 미술시장이 존재하지 않았다. 조선총독부가 1922년 주최한 조선미술전람회는 ‘전람회의 시대’ 개막을 알리는 예광탄이었고, 30년대가 되자 백화점들은 상류층을 겨냥한 갤러리를 만들었다. 한국인 수장가와 중개상이 파워를 과시한 것도 이때부터다. 개항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자본주의적 미술시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내용 외에도 ‘미술시장 탄생’를 읽으면 한국 미술시장의 역사를 속속들이 알 수 있다. 한국의 미술사를 다룬 책이야 서점가에 널렸지만 미술시장 역사를 파고든 작품은 거의 없었던 듯싶다. 저자는 손영옥 국민일보 미술 문화재 전문기자다. 그가 이 주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2011년쯤이었다. 즉, 이 책은 저자가 10년 넘게 공을 들인 역작이자 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는 한국에서 근대적 미술시장이 태동한 개항기(1876~1904) 풍경을 그리면서 시작된다. 벽안의 외국인이 미술시장에 새로운 수요자로 등장했고, 화가들은 풍속화를 수출용 그림으로 내걸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이 한국 미술시장을 장악했다. 미술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허투루 여겨지던 예술품이 재조명되는 일도 이어졌는데, 조선백자가 그런 경우다. 찾는 이가 거의 없어 조선백자는 헐값에 거래됐었는데, 일본 지식인들이 조선백자의 가치를 간파하면서 30년대에는 ‘백자 붐’이 일었다. 이 시기부터는 카페에서 전시가 이뤄지는 등 이전까지 보지 못한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저자는 1876년부터 해방이 될 때까지 70여년간 급속하게 달라진 한국 미술시장의 변화를 세세하게 그려낸다. 다채로운 분위기를 띠는 그림과 사진은 가독성을 크게 끌어올린다. 책을 읽으면 해방 이후의 미술시장 변천사를 다룬 후속작을 기대하게 된다. 저자는 이런 후속작을 낼 수 있을지에 대해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서도 이런 글을 적어두었다. “그러나 또 모를 일이다. 자료가 축적되고 생각이 익으면 샘물이 솟아나듯 내 안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을지도.”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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