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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손님, 머리 어떻게 잘라 드릴까요



몇 십년 동안 머리를 자르기 위해 미장원을 들렀지만, “손님, 머리 어떻게 잘라 드릴까요?”라는 미용사의 질문에 나는 또 고민에 빠졌다. 고민 끝에 나는 몇 십년간 사용했던 3초짜리 답을 또 해버렸다. “그냥 알아서 깔끔하게 잘라 주세요”라고. 더 신기한 것은 미용사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성큼성큼 가위질을 시작하고 있었다. 내가 살짝 당황하며 웃었더니 미용사는 묻지도 않은 영업 비밀을 누설하기 시작했다.

남자 손님의 머리 자르기는 아주 쉽다고 한다. 남자 머리 스타일은 하나밖에 없다고 한다. 손님에게 원하는 머리 스타일을 물으면 90%가 ‘깔끔하고 단정하게’를 외친다고 한다. 사실 ‘깔끔하고 단정하게’라는 말은 미용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멋지고 예쁘게’와 별반 차이가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용사는 추가 질문 없이 나름의 해석을 기초로 손님의 머리를 잘라버린다. 더 재미있는 영업 비밀은 이런 과정을 통해 머리를 잘라도 95%의 손님들은 아무런 불평 없이 미용실을 떠난다는 것이다. (우스갯소리처럼) “어디로 모실까요?”라는 택시 운전사의 질문에 “전설의 고향으로 가주세요” 하면 예술의전당에 정확하게 데려다주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지만 여자 손님의 머리를 자르는 것은 예술의 끝판왕이라고 한다. 요구하는 머리 스타일이 아주 구체적이고 다양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원하는 스타일을 미용사가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신의 영역에 속한다고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주문 내용에 따라 머리를 잘라도 최종 결과물(?)에 만족하는 손님을 보기는 어렵다고 한다. 그 머리는 손님이 원했던 머리가 아닌 것이다. ‘예술의 전당으로 가주세요’라는 손님의 요구에 예술의전당에 갔더니 ‘내가 말한 예술의 전당은 여기가 아닌데?’라고 말하는 손님과 같은 이치이다.

남녀 차이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진정한 차이는 머리를 자른 뒤 친구들을 만났을 때 일어난다. 남자가 머리를 자르면 네 가지 일이 벌어진다. 첫째, 대다수의 주변 남자들은 머리 자른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둘째, 알아챈 주변 남자 중에서도 그 남자의 머리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셋째, 혹시 언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말은 99% ‘야, 너 머리 잘랐냐?’이다. 넷째, 그 말을 들은 남자는 99% ‘어’로 답하고 (머리에 관한) 모든 대화는 끝이 난다.

하지만 여자가 머리를 자르면 세상이 달라진다. 99%의 주변 여자들은 머리 자른 것을 알아챌 뿐만 아니라 바로 ‘야~, 너 머리 어디서 했어? 너무 예쁘다~’로 대화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날 대화는 머리로 시작해서 머리로 끝난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미용사가 머리를 잘 잘랐는지 아닌지’는 그날 주변 여자들의 반응을 통해 최종 결정된다.

많은 남녀 갈등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의 남녀 차이에서 발생한다. 남자들은 관계보다 결과에 민감하고 여자들은 결과보다 관계에 민감하다. 미장원은 남자에게 (긴) 머리만을 자르는 곳이지만 여자에게는 아름다움을 가꾸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고 꿈꾸는 곳이다.

‘야, 너 머리 잘랐냐?’가 결과에 집중한 남자의 최대 관심 표현이라면, ‘야~, 너 머리 어디서 했어?’는 이미 결과를 넘어선 관계에 집중한 여자의 최소 관심 표현이다. 그래서 ‘도대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야?’ ‘할 거야 말 거야?’ ‘그래서 어떡하라고?’ 등과 같은 결과 중심적인 말들과 ‘너, 내 말 듣고는 있는 거야?’ ‘그걸 꼭 내 입으로 말해야 알아들어?’ ‘내가 화난 이유를 알고는 있는 거야?’ 등과 같은 관계 중심적 말들이 남녀 싸움에서 단골손님일 수밖에 없다.

김영훈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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