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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산다] 봄날은 간다



제주도도 전국의 어디와 마찬가지로 올해 봄 축제는 모두 취소됐다. 제주의 아이콘인 유채꽃축제도 취소됐다. 유채꽃이야 이맘때 제주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축제가 열리는 제주 녹산로 유채꽃도로가 하이라이트다. 중산간동로 가시리사거리에서 비자림로 제동목장 입구 교차로까지 장장 10㎞ 구간 2차로 도로 양옆에 폭 5m가량으로 유채꽃이 만발했다. 그런데 서귀포시는 지난 7일 이 유채꽃을 8일부터 모두 파쇄한다고 발표했다. 꽃밭을 갈아엎겠다는 것이다. 축제가 취소됐음에도 관람객이 몰리자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한 이곳 가시리마을회가 제기한 민원을 시가 받아들인 것이다. 우울한 봄이다.

요즘 제주에서 유채를 작물로 재배하는 농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관광객을 상대로 사진을 찍게 하고 돈을 받기 위해 재배하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그래도 아무 시골이나 다니면 길가, 밭두렁, 집 주변 등에 유채꽃이 자연스럽게 피어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유채 씨는 지름이 2㎜가 안 되게 작아 쉽게 바람에 날아가며 잘 퍼지기 때문인가 싶다. 이맘때 제주에선 카메라 앵글 어디를 대도 유채가 들어간다. 까만 밭담 옆에 소복하게 피어난 노란 유채꽃은 특히 아름답다. 올해는 이 유채를 보고 예쁘다 할 관광객이 없어 그런지 쓸쓸해 보인다.

제주는 벚꽃도 좋다. 제주시 연삼로 정부합동청사로부터 제주공항 입구 사거리까지 약 3㎞ 도로 양옆은 가로수로 벚나무가 잘 가꾸어져 있다. 이 긴 구간에 지난달 말부터 벚꽃이 만개해 도시를 아름답게 했다. 이 도로를 자동차로 3분 만에 갈 수도 있고 10분 동안 갈 수도 있다. 지난주부터 꽃이 지며 꽃잎이 눈처럼 날리더니 지금은 나뭇가지에 푸른 잎이 돋아나고 있다. 화려하지만 짧게 피었다 지는 벚꽃이라지만 제주의 벚꽃은 유난히 짧다. 바람 때문이다. 어쨌든 제주의 벚꽃 시즌은 벌써 끝났다.

제주 벚꽃축제는 유채꽃축제에 앞서 4월 초 제주대학교 진입로와 삼도1동 전농로, 애월읍 장전리 등 3곳에서 열린다. 구도심 가운데 있는 전농로는 2차로 도로변에 20년에서 100년 된 벚나무들이 꽃을 피운다. 제주대는 진입로 1㎞가 벚꽃터널을 이루고 캠퍼스 전체에 벚꽃이 흐드러진다. 애월읍 장전리는 앞의 두 곳보다 수령이 적지만 한적한 제주의 농촌마을을 함께 볼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올해 제주 벚꽃축제도 당연히 취소됐다. 제주대는 학교 입구에 ‘코로나19 조기 종식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 4월 5일까지 외부인 캠퍼스 출입을 제한하니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써 붙였다. 학생들은 비대면 인터넷 수업을 하고 있다. 이 대학은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2주 연장함에 따라 출입 제한도 2주 더 시행한다. 전농로에는 벚꽃 관람객이 하도 찾아오니 주민들이 자율방재단을 구성해 발열체크 부스를 만들고 행인들의 열을 쟀다. 차라리 벚꽃이 원망스럽다.

제주의 봄날은 이렇게 가고 있고 갈 것임에 틀림없다. 여름이 간다, 가을이 간다, 그리고 겨울이 간다고 또 써야 할지 걱정이다.

박두호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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