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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로를 깨우러 가자”… 2020년 부활절로의 초대



인간의 이성이 납득할 수 없는 두 단어를 택하라면 창조와 부활입니다. 스스로 가장 이성적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가장 외면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창조가 없다면 인간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고, 부활이 없다면 인간의 목적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들은 그래도 존재 자체는 문제 없다는 입장입니다. 문명과 과학도 점점 이 둘을 배척합니다. 점점 더 인간 중심의 사고에 갇혀서 모든 것을 인간으로부터 시작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인간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았 습니다.

예수님은 타락한 인간이 왜곡시켜놓은 시작과 끝을 새롭게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시작과 새로운 끝을 보여주십니다. 거듭남과 부활이 곧 새로운 시작과 새로운 끝입니다. 인간의 시작과 끝은 출생과 사망이지만, 새로운 시작과 끝은 거듭남과 부활입니다. 때문에 끝은 끝이 아니라 소망입니다. 나사로 사건은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는 서곡이자, 새 생명의 능력을 펼쳐 보이는 티저 영상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나 빛 가운데서는 실족하지 않는다는 말씀에 이어 제자들에게 나사로에게 갈 시간이 되었음을 알립니다. 병으로 위중하다는 전갈을 받고도 이틀을 더 묵으시고 비로소 나사로 얘기를 꺼내신 것입니다. 나사로가 확실히 잠들었고 내가 분명히 깨울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잠들기를 기다렸고 이제 깨울 시간이 되었다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말뜻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당시 아픈 환자는 대부분 의원에게 가지 않았습니다. 집에 머물렀고 통상 더 많은 잠을 잤고 많은 경우 계속 잠을 자고 나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잠들었다는 표현을 그 상식대로 이해했고 이제 나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생각을 아시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나사로는 죽었다.” 그러면 왜 잠들었다고 하셨습니까? 예수님께는 잠과 죽음이 하나라는 뜻입니다. 인간에게는 잠은 생명의 단락이고, 죽음은 생명의 단절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주인에게는 잠이나 죽음이나 생명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남겨두고 떠나실 것입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거듭남과 부활에 대해 무지합니다. 그들은 아직도 땅의 것들을 위해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희생과 헌신에 대한 보상의 기대가 가득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위로부터 오는 생명과 그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는 것이 목적이지만, 제자들은 기적을 일으키는 예수님의 능력을 덧입어 세상을 취하는 것이 꿈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나사로 사건을 통해 그들이 전해야 할 복음의 본질을 가르치시기로 결정하십니다. 복음의 본질은 성공이 아니라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음을 맞을 때 그곳에 있지 않았던 이유를 밝히십니다.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다.” 무엇을 믿게 하시고자 합니까? 부활입니다. 물론 나사로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과 예수님의 부활은 같지 않습니다. 나사로는 오히려 두 번 죽습니다. 예수님은 그러나 나사로를 통해 부활이란 어떤 생명 현상인지를 보여주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나사로가 잠든 것이 기쁘다고 하십니다. 죽음이란 잠든 것이고, 예수님은 잠든 자를 깨우듯 죽음에서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니셨다는 것을 제자들이 믿도록 하는 것이 이 사건의 목적입니다.

제자의 길이란 믿음의 길입니다. 제자의 길이란 자기부정의 길입니다. 날마다 다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이 길은 날마다 소진되는 땅의 생명이 아니라 다함이 없는 위로부터의 생명으로만 갈 수 있는 길입니다. 이 길은 이 땅의 죽음이란 잠시의 잠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갈 수 있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을 이 길의 입구까지 이끌어오셨고, 제자들은 머지않아 치르게 될 부활생명에 대한 믿음의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있습니다.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불쑥 말합니다. 그는 얼마 전에 유대 땅에서 예수님이 체포될 뻔했던 사실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굳이 그곳으로 다시 가겠다는 예수님을 동행하기 위해 나름대로 용기를 냅니다.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도마는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막연하게나마 주님과 동행하는 길이 십자가의 길임을 감지했습니다. 그러나 도마를 비롯한 어떤 제자도 십자가의 길이 죽음으로 끝나는 길이 아니라 부활로 새롭게 시작되는 길임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십자가는 온 인류에게 BC와 AD의 분기점입니다. 그 갈림길이 이번 사태로 인해 코로나 이전과 이후, 즉 BC와 AC로 대체되는 일은 없습니다. 죽은 자나 산 자나 우리 모두에게는 여전히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갈림길이 될 뿐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죽음에 끌려갈 것인가 아니면 죽음을 이길 것인가 마지막 선택은 언제나 이 갈림길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흘러내리는 부활 생명이 없이는 누구도 죽음을 이길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죽음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졌습니다.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바이러스 때문에 온 인류가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해 깨어났습니다.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손을 씻으며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부활은 이 모든 환경을 초월하는 담대함을 허락합니다. 부활은 아무 것도 갖지 못한 자가 모든 것을 갖고도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는 능력입니다. 부활은 이 땅의 어떤 것도 인간에게 줄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의 유일한 원천입니다.

조정민 목사(베이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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