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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 바로 알기… 2000년 전으로의 여행

고고학의 발전으로 로마제국에서 시행됐던 십자가형의 실체가 밝혀졌다. 사진은 1세기 무렵 십자가형을 당한 사람의 유품에 근거해 그린 그림. 생명의말씀사 제공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예수의 양 손바닥과 양발의 못 자국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유명 화가의 작품에서 대체로 이렇게 묘사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고학이 밝혀낸 로마제국의 십자가형은 이런 이미지와 꽤 다르다. 로마인은 양 손목 뒤편에 못을 박았다. 이 경우 다리는 한 방향으로 틀어 발을 포갠 뒤 못 박았다(그림). 예루살렘 동굴에서 발굴한, 1세기 무렵 십자가 처형을 당한 이의 유품을 복원한 결과다. 손바닥뼈로는 몸무게를 견딜 수 없으니 손목에 못 박았다는 것이 고고학계의 해석이다. 이런 오해는 번역 과정을 거치며 더 커진다. 헬라어에서 ‘손’에 해당하는 단어는 손목을 포괄하지만, 라틴어는 그렇지 않다.

신약성경이 기록된 그리스·로마 세계 전반을 다루는 이 책은 대중에게 잘못 알려진 성경 속 이미지를 교정해준다. 저자는 미국 미시간주 호프대 역사학 학과장을 지낸 앨버트 벨 박사다. 책은 출판 20주년을 기념해 나온 개정판이다. 현대 표준어에 맞춰 용어가 수정됐고, 삽화나 사진도 최신 고화질 자료로 교체됐다.

투옥 중 초대교회에 편지를 쓴 사도 바울의 상황도 현대인이 생각하는 수감자의 모습과 다르다. 바울이 좁은 감방에 머물렀을 거로 생각하기 쉽지만, 로마에서 ‘투옥’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533년 편찬된 로마법전 ‘학설휘찬’에 따르면 감옥은 재판일까지 대기하는 곳이지, 형벌의 장소가 아니었다. 셋집에 2년간 있었고 거기에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는 성경 내용(행 28:23, 30)으로 볼 때 바울의 투옥은 가택 연금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확하다.

성찬식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처럼 예수와 제자들이 상 주변에 앉아있는 모습을 흔히 떠올리지만, 당시는 비스듬히 누운 채 식사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런 배경을 모르면 ‘제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해 누웠다’(요 13:23)는 구절을 ‘예수가 동성애를 했다’고 해석하는 오류가 생긴다.

그리스·로마의 종교를 이해하는 것도 성경을 바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저자는 올림포스 12신 등 당대의 종교관을 설명하며 바울이 사도행전 17장에 언급한 ‘알지 못했던 신’도 고대 문헌에 등장한다고 말한다. 이 가운데는 에베소에 큰 신전을 둔 여신 아데미(아르테미스)도 있다.(행 19:28)

신기한 점은 여신 신전이 훗날 마리아 헌당 교회로 전환됐다는 것이다. 부활절을 뜻하는 영어단어 ‘이스터’도 여신 이름인 아스타르테와 이슈타르에서 기원했다. 크리스마스는 당시 로마의 축제 ‘농신제’의 영향을 받아 4세기 중반부터 12월 25일로 제정됐다. 바울은 그리스도교 입문자에게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관해 설명하기 위해 당대 스토아 철학과 신비 종교의 언어를 사용했다.

저자는 “신약성경은 유대교나 이교, 기독교적 사상을 명확히 구분하기 힘든 복잡한 종교 상황에서 기록됐다”며 “기독교와 주위 종교의 본질적 차이는 제사나 지식이 아닌 ‘관계’로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것”이라 했다. 그리스·로마의 신은 국가와 민족을 보호하고 영혼 불멸을 약속하지만, 삶의 지침을 주진 못했다. 그는 “이 차이점 때문에 기독교인의 신앙은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1세기 로마의 가족 개념과 성 윤리, 영아 살해 및 출산 기피 현상도 다룬다. 여성은 보호가 필요한 미성숙한 존재로 딸은 공공연한 영아 살해 대상이 됐다. 남자 간 결합인 동성애는 최상의 관계로 여겨졌다. 귀족 여성은 힘든 출산과 양육을 꺼리며 향락에 몰두했다. 기독교인은 이런 문화와 정반대로 살았다. 그리스도인이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이라 불린 이유다.(행 17:6)

다소 두툼한 이 책은 저자가 평신도를 위해 쓴 것이다. 그는 “믿음의 기초인 성경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전에 왜 이런 식으로 표현했는지 먼저 질문해보자”고 누차 말한다. 매년 복음서를 1독하고 성경 관련 책을 2권 읽을 것도 제안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문화의 장벽을 넘어 더 넓은 신약의 세계를 접하고 ‘이해에 기반한 신앙’을 갖길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진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조언이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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