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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산다] 제주, 코로나보다 두려운 경제추락



육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은퇴한 A씨(67)는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바닷가에 펜션 2동을 6년째 운영하고 있다. 이달 예약이 6실이다. 지난해 같은 달 예약은 37실이었다. 2동이니까 한 달 모두 차면 60실이지만 여름 성수기에도 40실이 넘으면 힘들어 예약을 더 받지 않는다. 함께 운영하는 카페는 문을 닫은 지 한 달 넘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던 길손이 오는지 알 수 없어 그냥 닫았다. 집세를 내지 않으니 견뎌보자고 있단다.

B씨(57)는 지난해까지 구좌읍 종달리에서 펜션 5실을 운영하다 올해 성산읍에 27실 규모 리조트를 임대했다. 27실이면 한 달 800실이 들어야 한다. 1월에 손님이 조금 있었고 2월에 설날이 지나며 예약 해지가 이어져 93실 남았고 3월에는 현재 53실 예약돼 있다. B씨는 리조트 임대료 1700만원을 매달 내고 있다. 전기료는 500만원 나온다. 도에서 주는 지원금을 신청했다. 지원금이라지만 빚이다. 이 상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가늠할 수 없으니 하루하루가 그저 캄캄하다.

세화리 한 오겹살 집에서는 요즘 대패삼겹살만 판다. 오겹살은 6~8㎏ 단위의 진공포장 상태로 납품되는데 일단 포장을 뜯으면 냉장고에서도 이틀을 넘기기 어렵다. 6㎏이면 30인분인데 요즘은 3일 안에 못 판다. 이달 초 포장을 뜯었던 오겹살은 상태가 변해 모두 불고기를 만들어 친척과 이웃에게 나눠줬다. 그래도 자기 집에서 장사하니 견딜 수 있지 않냐 했더니 이게 어디 내 집이냐 은행 집이지, 이자는 미루지도 못해 더 무섭다는 답이 돌아왔다.

지난주 동호회 골프모임이 있었다. 11시50분 티업이니까 평소라면 차를 클럽하우스에서 멀리 대야 한다. 그런데 주차장이 한산해 가까이 댈 수 있었다. 우리 팀을 안내한 캐디는 3일 만에 카트를 배정받았다고 한다. 이날 프런트에서 계산한 그린피, 카트비는 6만5000원이었다. 도민, 단체 할인이 적용됐지만 카트비가 2만원이라면 그린피는 4만5000원인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골프장에서 할인행사를 한다는 문자메시지가 잦다.

하도리 우리 집 주변 무밭은 지금쯤 대부분 수확을 마치고 서울의 각 마트에 제주무가 쫙 깔려있을 때다. 그런데 그 무밭에 작업하는 인부는 별로 보이지 않고 곳곳에서 수확을 포기하고 갈아엎고 있다. 무 수확에는 여자 인부 10~15명, 화물차에 실어 운반하는 상차팀 남자 7~8명, 이들을 따라다니는 밥차, 밤새 기계를 돌리는 세척공장까지 여러 공정, 많은 인원이 함께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이들이 동네 식당에서 밥 먹고 옷도 사고 애들 신발도 사주고 밤에 술집으로 간다. 제주 농촌에서는 무와 당근을 수확하는 철이 경기가 제일 좋을 때다. 이렇게 돌아가야 하는 제주 경제가 지금 절반 정도로 줄었다. 뉴스에서 늘 보아 익숙하겠지만 규모가 큰 호텔, 쇼핑몰, 렌터카, 재래시장, 음식점 등 관광객을 상대로 한 기업 대부분이 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15일 동네 낚시동호회 월례모임은 식당을 피해 바닷가 해녀작업장에서 했다. 회원들은 제주도에 코로나19 확진자가 4명에 그치고 그들이 모두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며 특히 지역사회 감염으로 번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 조금은 안도하고 있다. 감염도 무섭지만 언제일지 끝도 알 수 없는 경제의 무한 추락이 더 두려웠다.

박두호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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