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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 60세 노동자 ‘김 여사’에게



한 여성이 있다. 그녀는 30살 결혼을 했고, 다음 해 바로 아들을 낳았다. 남편은 전자부품 회사를 다니며 꼬박꼬박 월급을 줬다. 그러다 사업을 시작한 남편은 외환위기 등 각종 경제위기에 휩쓸렸다. 단출한 살림에 ‘압류딱지’가 붙던 날 그녀는 15살, 18살 아이들을 뒤로하고 생계 전선으로 나갔다. 하지만 상업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해 전업주부로 살았던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동네 마트 계산원을 시작으로 보험 설계사, 반찬 가게 종업원, 대학교 청소원 등을 전전했다.

그리고 이제 그녀 나이 67세. 하지만 여전히 버스와 지하철 등을 3번 갈아타고 어느 가정집의 가사도우미 일을 하고 있다. 한평생 번 돈은 아이들 키우는 데 다 썼다. 노후 준비는 꿈도 못 꿨다. 당장 다음 달 월세를 내려면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한다.

한국 사회가 저성장과 고령화로 시름을 겪고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지표는 고령의 여성층에 관한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여성 고용률은 24.0%(2018년 기준)로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89년 이래 가장 높았다. 여성 고령층이 많은 가사근로 취업자 수(2019년 기준)도 역대 최대 규모로 증가했다. ‘가구 내 고용활동 및 달리 분류되지 않은 자가소비 생산활동’ 취업자 수는 전년 대비 2만7000명 늘었다.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4년 이래 가장 큰 증가폭이다.

고령화에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 영향으로 고령층 고용률은 계속 오르고 있다. 이 중 여성 고령층을 주목해야 하는 건 경제 부진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노동시장의 50대, 60대 이상 여성들은 남편이 생계 능력을 잃은 후 비자발적으로 취업에 나선 경우가 많다.

20~40대 여성들처럼 고학력의 자발적인 사회 진출이 아니다. 대부분 저학력이며, 전업주부로 살았기 때문에 사회 경험이 없다. 따라서 생산성이 낮아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가 제한적이다. 전업주부의 연장선인 청소·요리·간병 등 ‘저숙련 서비스업’이 대부분이다. 저임금·비정규직 일자리다.

문제는 이들이 은퇴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여성 생계부양자도 50, 60대가 되면 쉴 수 있었다. 반면 최근 엄마들은 쉴 수가 없다. 노후 준비를 못했는데, 고령화로 살아가야 할 날은 길다. 이 와중에 자식들의 삶도 팍팍해 손을 벌릴 수도 없다. 결국 엄마들은 생계 전선에 계속 머물거나 재진입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노동시장에서 가장 취약한 곳을 채우고 있다. 2018년 기준 여성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중은 50대 44.6%, 60대 이상 77.4%나 된다.

그러나 해결책은 없다. 학력이 낮고 노동시장 이력이 짧은 이들의 취약성, 여성 생계부양자를 2차 소득원으로 보는 부업 위주의 일자리, 경기 부진과 고령화, 저숙련 서비스업에 대한 수요와 공급 등 여러 요인이 얽혀 있어서다.

다만 일자리 ‘질’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해 본다. 다행히 저숙련 서비스업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가사도우미, 청소, 간병 등이다. 민간 시장이 이들을 원하고 있다.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괜찮은 일자리’로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현재 가사도우미의 경우 근로기준법에 ‘가사사용인에 대해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어 노동법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 중개업체들은 이들을 직접고용하되 노동법 일부만 적용하는 것을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도 엄연히 노동자다. 이들에게 일은 더 이상 반찬값을 벌기 위한 ‘부업’이 아닌 ‘생계’다. 안정된 일감, 임금과 휴식 등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면 어떨까.

그리고 사회도 이들의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칼럼은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고 있는 김 여사, 이 여사, 박 여사 등에게 바친다. 당신들도 우리 사회의 아름다운 노동자다.

전슬기 경제부 기자 sgj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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