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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림의 인사이드 아웃] ‘한국판 앙테르미탕’보다 고용보험법 통과가 먼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위기 경보가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격상되면서 전국 주요 공연장들이 줄줄이 휴관 조치에 들어갔다. 사진은 지난 13일 인천시 연수구 아트센터에서 방역업체 직원들이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극장을 소독하는 모습. 연합뉴스





예술인 고용보험제도와 코로나

‘코로나 19’ 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된 지난 주말부터 전국의 주요 공연장들이 폐관 내지 휴관 조치에 들어갔다. 예술의전당을 비롯해 문체부 산하 공연장과 여기에 상주하는 예술단체들은 모두 25일부터 공연을 중단하고 있다. 공연장이 문을 닫으며 예정된 공연들 또한 줄줄이 취소 내지 연기됐다. 공연장들의 공식적인 업무 중단은 다음 달 8일까지지만 다수의 관계자들은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도 비관적이다. 그만큼 이번 사태를 모두 장기전으로 내다보고 있다.

닫힌 공연장은 관객에겐 일상의 즐거움을 잃는 아쉬움이지만 업계 종사자들에겐 당장 생계의 위기다. 예정된 공연을 올리지 못하게 되면서 공연단체와 기획사들은 제작비 손실부터 해결해야 한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정부와 공공 기관들이 비교적 신속하게 대책마련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공연예술분야 코로나19 전담 창구를 운영하며 취소된 공연들의 대관료를 지원해줄 예정이다. 이밖에도 민간 공연단체나 기획사들은 국세청, 중기부, 금융 위원회, 신용보증재단 등으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부랴부랴 펼친 사회보호망에 안전하게 포섭되지 않는 존재들이 있다. 바로 공연계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프리랜서 예술인들이다(예술인 복지법의 정의에 따르면 ‘예술인’은 무대에 서는 아티스트뿐 아니라 공연 제작에 참여하는 비정규직 스태프들을 모두 포함한다). 여러 공연들이 우후죽순처럼 취소되고 있는 와중에, 이들 개인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유리한 계약서를 쥐고 있는 경우는 지금까지의 관행상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봐야 한다. 제작사나 공연단체가 영세할수록 그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게다가 일터인 공연장이 문을 닫은 동안 이들은 생계유지를 위해서 전문분야와 상관없는 일자리나 돈벌이를 찾아야 한다. 문체부가 예술인 긴급 생활안정자금 융자제도를 실시할 예정이지만, 그 또한 그저 언젠가 갚아야 할 ‘빚’에 불과하다.

이 같은 프리랜서 예술인들의 불안정성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지금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바로 2018년 11일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고용보험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그것이다. 이 개정안은 실업의 위험에 노출되어 사회·경제적으로 보호받을 필요가 있는 예술인과 같은 특수형태근로종사들을 위하여 생활 안정과 조기 재취업을 위한 고용보험을 적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은 예술인권리보장법과 더불어 문재인 정부의 대선공약이자 ‘문재인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 100대 과제’중 하나였지만 임기의 절반이 넘어선 지금까지도 방치되고 있으며 이번 임시국회가 지나면 폐기될 예정이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민주당 의원들은 프랑스 예술인 고용 보험제도를 본 딴 ‘앙테르미탕’을 4·15 총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표준계약서를 비롯한 공정한 근로조건으로 화제를 모았던 영화 ‘기생충’의 유명세에 숟가락을 얹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하지만, 이 프랑스 제도는 2년 전 새정부예술정책 TF에서 한국 상황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부적격판정을 받았고 현재 국회 계류 중인 고용보험법 개정안이야말로 전문가들의 자문을 거쳐 마련된 현실적 대안책이었다. 예술인들의 생계가 걸린 문제를 그저 공허한 표몰이 공약으로만 재탕할 속셈이 아니라면, 상정된 법안부터 빨리 처리하시라. 총선도 코앞인데, 허접한 공약 남발에 표 떨어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음악 칼럼니스트·숙명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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