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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원의 메디컬 인사이드] 신종 바이러스의 습격, 그리고 ‘원헬스’



연초부터 ‘미지(未知)의 바이러스’ 기세가 등등하다.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신종 코로나)의 확산세가 꺾일 줄 모른다. 전자현미경으로 겨우 볼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바이러스 습격에 인간이 속절없이 당하고 있다. 중국에서 첫 감염자가 나온 지 한 달여 만에 6000명 가까운 확진자가 나왔다. 사망자는 130명을 넘어섰다. 2002~2003년 중국을 휩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전파 속도를 추월했다는 보도도 있다.

이런 상황이 빚어진 데는 중국 정부의 초기 상황 오판과 초동 방역 실패 탓이 크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악마’로 칭하며 “우리는 악마가 활개 치고 다니게 놔두지 않겠다”고 전쟁을 선포했다. 하지만 현재로선 그 악마의 위세에 눌려 기를 못 펴는 모양새다.

신종 바이러스는 중국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번지고 있다. 최소 14개국에서 다수 감염자가 발생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감염병의 글로벌 대유행, 즉 ‘판데믹(pandemic)’에 가까워졌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으나 세계보건기구(WHO)는 “중국 밖에서 걷잡을 수 없는 확산은 없다”며 국제 공중보건 위기 선포에 신중한 입장이다.

염려스러운 건 신종 코로나의 정체를 아직 잘 모른다는 점이다. 바이러스의 전파력과 치사율은 사촌쯤 되는 사스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와 비교해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 어느 정도 힘을 갖고 있는지, 언제까지 위력을 떨칠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돌연변이를 잘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의 특성상 전염성이 더 세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래도 한 가지 설득력을 얻고 있는 건 신종 코로나의 발원지와 관련해서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한 수산물도매시장에서 암암리 거래되던 야생동물로부터 바이러스가 처음 유래됐을 것이란 데 상당수 전문가들이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세균과 달리 세포 형태가 아니어서 숙주 세포 안에서만 증식할 수 있다. 수산물시장에서 판매되던 야생동물을 숙주 삼아 숨어있던 바이러스에 변이가 일어나 종간(種間) 장벽을 뛰어넘는 이른바 ‘스필 오버(spill over)’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실제 사람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병원체의 60%가 동물에서 비롯됐으며 새로 출현하는 전염병의 75%는 인수(人獸)공통감염병이란 연구보고가 있다. 특히 박쥐는 ‘바이러스의 창고’로 불린다. 박쥐 몸에는 130여종의 바이러스가 살고 있으며 이들 중 60여종이 직간접적으로 사람에게 전파돼 병을 일으킨다. 사스와 메르스는 박쥐에 있던 코로나바이러스에 변종이 생기면서 각각 사향고양이와 낙타를 거쳐 사람에게 옮아갔다는 게 학계 정설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역시 사스, 메르스처럼 박쥐에서 발원했고 밍크, 대나무쥐 등이 중간 숙주로 지목받고 있다. 하지만 박쥐가 감염병 매개체라는 인식이 낮아 식용은 물론 애완용으로 거래되기도 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생물학과 네이선 울프 초빙교수는 저서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에서 그동안 인간과 접촉이 없거나 소수에 그쳤던 숲속 야생동물들이 가축을 통해서 혹은 직접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옮기는 일이 빈발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서식지를 빼앗긴 야생동물들이 살아남기 위해 새 서식지를 찾아 사람 곁으로 다가오면서 ‘스필 오버’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에볼라나 에이즈(HIV) 바이러스가 대표적이다. 결국 신종 바이러스의 공격은 인간이 초래한 예고된 인재인 셈이다.

앞으로도 낯선 바이러스의 출현은 계속되고 그 주기 또한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런 신종 감염병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공중보건 및 방역체계에 ‘원헬스(one health)’ 개념을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람과 동물, 생태계의 건강이 상호의존적이며 서로 연결돼 있다는 통합적 시각으로 신종 질병에 접근하는 것이다.

물론 당장의 급선무는 창궐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기세를 꺾는 일이다. 방역 체계를 재정비해 추가 확진자를 조기에 걸러내고 지역사회 확산을 막아야 한다. 유행 상황이 종료된 뒤 원헬스 논의를 위한 정부 부처 간 협력체계 구축과 국제 공조에 적극 나서야 한다. 원헬스에 대한 국민의 인식 제고도 필요하다.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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