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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사학법 세월호… 교계, 사안 따라 두 목소리로 갈라져

2003년 보수 기독교계가 서울광장에서 연 ‘나라와 민족을 위한 6·25 구국기도회’에서 대형 태극기와 성조기, 6·25 참전국 국기가 나란히 펼쳐진 모습. 국민일보DB


#1. 2007년 3월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여전도회전국연합회 임원 15명이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대강당에서 사립학교법(사학법) 재개정을 요구하며 삭발했다. ‘삭발 투쟁’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가세하면서 보수 교단 전체로 확대된 뒤였지만, 여성들까지 삭발에 동참함으로써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다. 당시 삭발한 목사와 장로만 500명이 넘었다.

참여정부는 당시 4대 개혁 입법 중 하나로 사학법 개정을 추진했다. 사학 비리를 막기 위해 개방형 이사제를 도입하고 이사장의 배우자나 직계 존·비속의 교장 임명을 제한하는 게 법안의 골자였다. 논란 끝에 2005년 12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제1야당이던 한나라당과 교계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2007년 7월 재개정을 통해 원점으로 돌아갔다.

한나라당은 삭발까지 한 보수 교계에 적지 않은 기대를 걸었다. 교계가 사학법 재개정에 사활을 걸었던 건 교단 산하에 신학대를 비롯해 종합대학과 중고등학교 등 사학이 많았기 때문이다. 예장통합만 해도 직영 신학대만 7개고 유관 종합대학이 11개에 이른다. 중고등학교와 초등학교도 20개가 넘는다.

반면 진보 교계는 개정 사학법을 지지했다. 2007년 3월, 국회의사당 맞은편에 모인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목정평) 관계자 150여명은 사학법 개정을 통해 이사회의 전횡을 막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참석자들은 이날 보수 교계와 정부를 싸잡아 비판하면서 개정 사학법의 재개정에 반대했다. 갈등은 봉합되지 못했다. 교계에서는 한동안 ‘삭발파’와 ‘비삭발파’가 사학법을 둘러싸고 빈번하게 충돌했다.



#2. 한국교회는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때도 둘로 나뉘었다. 모 신학대 교수는 세월호를 추모하는 노란 배지를 달고 교회 강연에 나섰다 곤욕을 치렀다. “잊자는데 왜 자꾸 세월호 타령이냐” “반정부 세력이냐”는 등의 공격을 받았다. 몇몇 대형교회 담임목사들의 설교도 구설에 올랐다. “세월호 참사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는 등의 발언이 유가족에게 상처를 줬다.

세월호 유가족 곁에서 아픔을 나누며 위로한 이들도 목사들이었다. 2015년 9월 경기도 안산에 문을 연 ‘416 희망목공방’을 위해 경기도 용인 고기교회(안홍택 목사)를 비롯해 기독교대한감리회와 예장통합 총회가 십시일반 지원했다. 목공방은 세월호 유가족의 위로와 회복을 위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목회자들은 참사 이후 매주 목요일 저녁 6시 안산 정부합동분향소 개신교 기도처에서 목요기도회를 열고 유가족을 보듬었다.



교회가 갈등의 중심에 선 대표적 사례들이다. 갈등의 중재자가 돼야 할 교회가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격돌했다. 해외 교회들도 진보와 보수 성향으로 나뉜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사안마다 입장이 확연하게 갈리는 경우는 많지 않다. 유독 한국교회에선 양극단에서 접점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지나친 이념갈등은 신앙은 있는데도 교회를 외면하는 ‘가나안교인’을 양산한다.

정병준 서울장신대 교수는 28일 “1969년 박정희정권의 3선개헌 때부터 진보와 보수 기독교가 나뉘기 시작했다”면서 “그러다 전두환정권 때 기독교의 이념분열이 더욱 커졌고 89년 한기총이 출범하면서 연합기구가 이념으로 양분됐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한기총 출범의 결정적 계기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주도했던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으로 봤다. ‘88선언’으로 알려진 이 선언은 “남한의 기독교인들이 반공 사상을 종교적 신념처럼 우상화해 북한 동포를 저주한 죄를 범했다”고 고백했다. 민간 통일운동의 지평을 연 선언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88선언을 이끌었던 진보 성향의 연합단체에 대응해 보수 성향의 연합단체가 만들어졌고 이로 인해 진보와 보수 기독교의 갈등 구조가 고착됐다.

한기총 출범 이후 ‘진보와 보수 기독교’라는 말은 보통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일부 기독교’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서로를 밀어내는 분위기가 생긴 것도 이때부터다. 모두 기독교가 분열하면서 생긴 현상들이다.

이형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교수는 “교회뿐 아니라 다른 종교도 대부분 절대성을 추구하고 선과 악의 영적 싸움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해져 있다”면서 “이는 피할 수 없는 종교의 성격”이라고 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종교는 절대적 성스러움으로 세속적 갈등을 넘어 사랑과 평화의 사도의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일제강점기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불굴의 용서와 사랑을 실천한 손양원 목사와 농촌운동가 최용신 같은 신앙 선배들의 사랑과 평화의 정신을 지금 교회도 기억하고 회복해야 한다”면서 ‘용서와 사랑’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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