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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 봄바람처럼 마음을 녹이고 천국으로 이끄는 아름다운 힘

픽사베이


인간의 성품은 홀로 있을 때는 숨길 수 있지만,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는 숨길 수 없다. 특히 ‘온유’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성품이다. 온유는 내적인 강한 힘이다. 온유는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따뜻한 마음이다. 따라서 관계를 이어주며 타인과 조화를 이루는 데 꼭 필요한 성품이다. 온유의 사전적 의미는 ‘성격이나 태도가 온화하고 부드럽다’이다. 온유한 사람은 말 그대로 ‘타인에게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간혹 ‘온화하고 부드러운 사람’을 연약한 사람, 줏대 없는 사람, 고분고분한 사람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온유는 무기력이나 연약함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강한 것을 부드럽게 하고 견딜 수 없는 상황을 끝까지 이겨낸 사람에게 주는 아름다운 선물이다.

온유가 강한 이유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은 온유한 성품의 소유자다. 이삭이 가나안 땅에서 번성하자 이를 시기한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이 판 모든 우물을 메우고 이삭을 쫓아낸다. 이후에도 이삭이 이주한 곳마다 찾아와 그가 판 우물을 계속 빼앗는다. 이삭은 이들의 무례함에 얼마든지 무력으로 대항할 수 있었지만 온유하게 대처한다.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창 26:22)

이런 이삭의 온유함과 하나님의 축복은 결국 블레셋 왕 아비멜렉을 감동하게 했다.(창 26:28~29) 사람들은 외적으로 강한 사람이 아니라 온유한 사람에게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다. 온유한 자는 사람들을 자신의 올바른 믿음으로 설득하거나 선교하지 않아도 그의 온유함이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평생을 “예, 아버지”라 말하며 순종의 삶을 살았던 독일의 영성가 바실레아 슐링크는 “온유와 인내는 얼음을 녹이는 봄바람처럼 마음을 녹이는 힘이 있다. 온유한 마음이 천국으로 이끈다”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이 우리를 시련의 어두운 길로 이끄실 때 “얘야 너는 지금도 나를 믿겠니” “내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여전히 믿겠니”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할 수 없을 때도 내 말과 행동, 내가 주는 시련에 대해 변함없이 예라고 동의할 수 있니”라고 물으실 때 “예, 아버지”라고 순종해야 한다고 말한다. 온유는 바로 이런 순종의 열매다.

온유는 천성적으로 부드러운 성품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은 후에 성령으로 길들여진 성품,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변화된 성품이다. 하나님은 모세가 이 세상의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온유하다고 말씀하셨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 12:3) 하지만 모세의 천성은 결코 온유하지 못했다. 이집트의 왕자로 있을 때 누구보다 혈기왕성했고, 온유한 자가 될 때까지 광야에서 배우고 훈련하며 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온유란 순종의 열매를 맺기까지 우리는 광야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사막의 교부들도 온유의 영성을 강조했다. 이들이 영성 생활을 하는 목적은 ‘온유한 사람’이 되는 데 있었다. 교부 에바그리우스는 “성경을 많이 읽고 어려운 수행을 할지라도 온유가 없다면 결코 그리스도의 신비를 이해할 수 없다”며 온유가 그리스도를 인식하는 원천임을 강조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놀라운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온유한 사람이다.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아무리 체험한다 할지라도 폭력적인 사람은 결코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온유한 사람은 사람들을 의사결정에 참여시켜 더 나은 결과와 더 깊은 관계를 만들어낸다. 조직에서 권위적인 힘을 갖는 게 강해 보이지만 결국 대인관계에서 이기지 못한다. 온유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리더십이다. 외적인 강함은 경쟁을 부추기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단절시키지만, 온유함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줘 우리의 지경을 넓혀 준다.

크리스천의 ‘신념 있는 교양’

온유함은 현대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잃어버린 소중한 성품 중 하나다. 특히 개인은 물론 사회와 국가 간에도 시민 교양이 실종됐다. 사람들은 운전할 때 다른 차가 끼어드는 일, 남에게 작은 공간을 내어주는 일에서조차 분개한다. 그러나 크리스천의 특징은 친절과 온유함이 돼야 한다.

리처드 마우 전 풀러신학교 총장은 저서 ‘무례한 기독교’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잃어버린 온유한 성품에 대해 안타까움을 전했다. 특히 그는 ‘신념 있는 시민 교양’이란 개념을 제시하며 크리스천은 신념을 가진 시민 교양(온유)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친절하고 온유한 삶을 살도록 창조됐다. 사실 친절과 온유함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5장에서 열거하는 성령의 열매에 속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친절과 온유함의 표준에 부합하지 못할 때 하나님이 뜻하시는 백성이 아닌 셈이다.… 남을 존중하고 좀 더 온유한 사람이 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길이다.”(‘무례한 기독교’ 중)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와 하나님의 섭리를 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를 겸손히 받아들이고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삶이 고난의 길이라도, 혹은 나의 뜻과는 반대되는 것이라도 가장 선한 것임을 신뢰하는 사람이다.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 앞에 전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 사람이다.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길들여진 사람이다. 온유한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성취할 수 있으며 성령의 은혜로 배우고 훈련해야 얻을 수 있다.

성경이 말하는 온유

온유는 성령의 9가지 열매 중 하나(갈 5:23)이며 팔복 중 하나(마 5:3~5)이다.

예수님은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마 11:29) 와서 배우라고 말씀하셨다. 성경은 또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시 37:11), “마음이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라고 기록했다.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은 부동산이 생긴다는 뜻이 아니다. 주님이 주시는 사명을 전심으로 따를 때, 이 땅에 주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보게 되고 그 주님의 나라가 바로 그 사람의 유업이 된다는 의미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장 온유하다고 했던 모세는 자신이 그리던 가나안 땅을 느보산에 올라가서 바라만 봤을 뿐, 들어가지 못했다. 예수님도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고 하셨다. 돌아가실 때도 겨우 남의 무덤을 빌려 장사 되셨고 부활하셨기에 무덤도 없다.

온유는 현대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잃어버린 소중한 성품 중 하나다. 온유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온전한 순종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부드러운 관용을, 자신을 향해서 절제를, 죄악을 향해서는 거룩한 분노를 드러내는 성품이다. 온유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열매 맺어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다. 2020년을 시작하는 지금, 온유의 재발견이 필요하다.

뉴콘텐츠부장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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