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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의 기적] “따뜻한 밥 먹을 수 있어서 오늘 행복했어요, 너무 너무…”

대전 가양감리교회 전석범 목사(왼쪽 두 번째)가 지난달 27일 아프리카 남부 에스와티니의 호호구 부헤부예즈 마을에 사는 시파만다 무둘리의 집을 찾아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시파만다 가족이 식수로 사용하는 집 근처 웅덩이의 더러운 물을 보며 착잡한 표정을 짓는 전 목사의 모습. 월드비전 제공


아이의 이름 시파만다는 ‘하나님 힘을 주세요’라는 뜻이다. 강한 사람, 힘이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러나 아이에겐 어쩌면 주님의 뜻에 따라 힘을 줄 누군가의 도움이 더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시파만다 무둘리(5)는 아프리카 남부 에스와티니의 제2 도시인 만지니에서 80㎞를 달려야 도착하는 호호구 부헤부예즈 마을에 살고 있다. 전석범 대전 가양감리교회 목사가 월드비전을 통해 지난달 27일 시파만다를 만났다. 아이의 손을 잡고 “널 만나기 위해 사흘의 시간, 기도하며 왔다”고 말하는 전 목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시파만다의 가족은 네 명이다. 보지도, 걷지도 못하는 여든을 훌쩍 넘은 할머니가 보호자다. 여기에 17살 누나 시넷질레 무둘리와 3개월 전 태어난 조카가 있다. 생계를 책임질 사람은 없다. 의지할 건 비정기적으로 나오는 정부 지원금뿐이다. 그마저도 턱없이 부족하다.

에스와티니는 2015년부터 엘니뇨로 인한 가뭄으로 기근이 심화됐다. 옆 나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경제를 의존해야 한다. 피해는 노인과 아이 등 취약계층에 고스란히 돌아갔다. 부모는 돈을 벌겠다며 아이를 버렸다. 시파만다의 부모도 그렇게 떠났다. 누나 시넷질레도 같은 이유로 아이와 함께 남자친구에게 버림받았다.

전 목사와 동행한 같은 교회 방장옥 장로와 이상민 장로의 후원 아동 시페실레 음크라바치(7)나 시보니소 마가굴라(10)도 다르지 않았다. 그나마 두 아이는 할머니의 나이가 많지 않고 건강해 형편이 나았다. 세 아이는 한국월드비전이 지원하는 에스와티니의 3개 지역개발사업장(ADP) 중 마들란감피시 ADP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이 사업장은 식수위생, 모자보건, 교육, 아동후원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전 목사가 시파만다의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갔다. 갈댓잎을 엉성하게 엮은 지붕이나 흙으로 세운 벽은 바람도, 비도 막지 못했다. 어두컴컴하고 2㎡ 남짓 되는 작은 공간엔 할머니가 흙바닥 위로 이불만 깐 채 힘없이 누워있었다. 전 목사와 일행이 할 수 있는 건 약간의 도움 그리고 기도뿐이었다.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전 목사가 시파만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시작했다.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어 기도 소리만 들렸다.

“종의 눈에 한없는 눈물이 흐른다”는 전 목사의 고백이 기도를 통해 흘러나왔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팔순이 넘은 귀한 할머니의 건강과…” 할머니를 위한 축복의 기도를 하자 꼼짝도 하지 않던 할머니가 마치 한국말을 알아들은 듯 왼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전 목사와 일행이 그나마 안심하는 부분이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에스와티니는 복음화율이 60%다. 시파만다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후원 아동 모두 교회를 다닌다. 시페실레는 ‘좋은 선물’, 시보니소는 ‘비전’이라는 뜻이다.

밖으로 나온 전 목사가 염소 한 마리를 아이에게 선물했다. 염소젖으로 영양을 섭취할 것이라 기대했다. 이 염소는 가양교회 성도들이 정성껏 모은 돈으로 샀다.

이 장로가 새로운 제안을 했다. 남매를 대신해 물을 길어다 주자는 것이었다. 전날 이들은 인근 잔돈도 마을에 월드비전이 세워준 정수시설을 보고 왔다. 이 시설이 있기 전 주민들은 먹을 물을 뜨러 물룰루 강까지 왕복 두 시간을 걸었다. 시파만다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시넷질레는 “건기 땐 한 시간 정도 걸어 강까지 가고 지금은 우기라 가까운 곳에서 물을 떠 온다”고 했다. 5분 거리라는 말에 안심하며 비탈을 내려가니 작은 웅덩이가 나왔다. 흙탕물이었다. 아니 폐수에 가까웠다. 나뭇잎과 흙은 물론 소, 염소 등 가축 배설물까지 떠다녔다. 한국의 낯선 이방인들이 안타까움에 신음을 내뱉을 때도 시파만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나뭇가지로 장난을 쳤다. 다섯 살 아이의 천진함이 처연하게 느껴졌다.

전 목사가 남매와 함께 ‘사마리 NO.2’ 교회를 찾은 것도 이 때문이다. 시파만다와 누이는 이 교회 교인이다. 할머니도 건강할 때는 같이 교회에 다녔다. 전 목사는 이 교회 둠싸니 누말로(61) 목사에게 “시파만다를 보살펴 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이 장로는 “아이들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달라”고 부탁했다.

쇼핑센터에 들러 아이들에게 급한 것부터 샀다. 먹을 것도 없었으니 아이들에겐 입는 것, 신는 게 사치였다. 쭈뼛대던 시파만다가 용기를 내 원하는 것을 고르기 시작했다. 전 목사가 무릎을 꿇고 아이의 발에 새 신을 신기자 아이는 자연스럽게 목사의 뒤통수에 손을 대 몸을 기댔다. 오래전 알고 지내던 것처럼 전 목사를 의지했다. 신발이 마음에 드는지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누나는 자신의 옷보다 기저귀, 분유 등 아이 물건을 골랐다. 월드비전 직원들이 아이의 물건도 모두 살 수 있다고 안심시킨 뒤에야 자신의 신발을 골랐다.

작별 인사를 하는 시넷질레가 속내를 털어놨다. 어설픈 영어에도 그녀의 소망이 담겨 있었다.

“오늘 너무 행복했어요. 너무 너무.”

그리고 20여일의 시간이 지났다. 시파만다를 대신해 누나가 쓴 편지가 월드비전을 통해 전 목사에게 전달됐다.

“먹을 게 없어 어려움이 많았는데 오늘은 따뜻하고 건강한 밥을 먹을 수 있었어요. 나의 후원자님, 저희 가정에 많은 도움을 주셔서 정말로 감사해요.”

만지니(에스와티니)=글·사진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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