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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전석순] 봉투 필요하세요?



최근 받은 우편물 봉투는 유난히 더러웠다. 내용물이 망가지진 않았지만 여기저기 얼룩이 묻어 있었고 떼어낸 자국이나 낙서까지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상했던 마음은 SNS를 보고 달라졌다. 한 번 쓰고 버려지는 봉투가 아까워 재활용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나라는 1995년 쓰레기종량제가 시작되면서 환경문제가 더욱 주목받았다. 그 결과 독일에 이어 두 번째로 재활용률이 높은 나라라고 한다. 이 때문에 ‘이제 좀 덜해도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쓰레기 문제는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느슨해져도 괜찮은 문제가 아니다. 세계경제포럼은 2050년 바다에는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많을 거라고 한다. 환경부는 2027년 매립지가 포화 상태일 것으로 내다봤다. 2017년 우리나라 전체 쓰레기는 1억5000만t이 넘었다. 재활용률을 고려해도 매립하려면 여의도의 40%에 가까운 땅이 필요하다. 소각장에서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을 넘어선 쓰레기가 나오고 있어 문제인 지역도 꾸준히 늘고 있다.

예전에는 후손에게 아름다운 지구를 물려주기 위해 환경에 힘써야 했다면 최근에는 지금 당장 우리의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 대표적인 예가 미세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은 분해할 수 있는 미생물이 없다 보니 분해에만 500년 이상 걸린다고 알려져 있다. 그사이 잘게 부숴져 해양생물의 먹이가 되고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 이미 한 사람이 일주일에 신용카드 한 장 크기의 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함부로 버린 쓰레기가 후손보다 먼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비닐봉지만 하더라도 2013년에만 190억장이 쓰였다. 매일 5200만장을 사용한 셈이다. 그로 인한 오염이 심각해지면서 무상 제공을 금지하고 종이봉투를 활용하고 있지만 완벽한 해결 방안은 아니다. 비닐봉지는 1959년 스웨덴 공학자가 나무가 베어지는 것이 안타까워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비닐봉지로 인해 환경이 오염되자 지금은 종이봉투로 돌아가고 있다. 종이는 비닐보다 분해가 빠르지만 생산을 위해선 여전히 많은 나무가 필요하다.

해결책 중 하나는 쓰레기를 자원으로 재활용하는 것이다. 폐비닐은 공업용 기름이 되는 등 생각보다 활용 방식이 다양하다. 하지만 기준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어려움이 있다. 이를테면 페트병이나 유리병은 음식물이 들어가 있으면 재활용할 수 없다. 코팅된 종이나 오염된 스티로폼도 일반 쓰레기로 분류해야 한다. 칫솔도 여러 가지 재질이 섞여 있으면 종량제봉투에 담아야 한다. 거울도 재활용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깨진 유리와 마찬가지로 일반 쓰레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시 일일이 분류하는 작업을 거칠 때가 많다. 이제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넣는 것에서 나아가 버리는 방법까지 배워야 할 때다.

그 과정에서 업사이클링이 주목받고 있다. 업사이클링은 재활용을 넘어 새로운 제품으로 만드는 활용이다. 군용텐트를 이용해 지갑을 만들거나 폐현수막으로 가방을 만드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어머니는 수선하고 남은 천 조각을 모아뒀다가 방석이나 식탁보를 만들기도 했다. 한 관광지는 버려진 소주병 처리를 고민하던 중 꽃병으로 만들거나 가공해서 담장을 장식했다. 뿐만 아니라 직접 만들어보는 공방을 열어 인기를 끌었다. 이 모두가 가만두면 버려졌을 쓰레기에 생명을 부여하는 일이다. 그 외에도 조깅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킹’이나 물건을 살 때부터 재활용이 되는지 따져보는 ‘프리사이클링’도 있다. 따로 포장하지 않고 개인이 용기나 봉투를 가져오면 덜어주는 판매 시스템도 조금씩 늘고 있다. 이런 방식이 일상생활 전반으로 퍼져나가면 어떨까.

하지만 여전히 생소하게 느끼거나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잠깐 유행처럼 이어지다 사라지기도 한다. 과대포장을 막는 등 구체적인 제도 마련과 홍보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인 노력과 공감 없이는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 어렵다. 해결방식은 거창하거나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나는 봉투나 박스를 따로 모아놓고 텀블러를 챙기기 시작했다. 휴대할 수 있는 접이식 장바구니도 가방 안에 넣어뒀다. 작은 행동이 모이다 보면 나중엔 “봉투 필요하세요?”란 질문이 낯설어질지도 모르겠다.

전석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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