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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균·임경섭의 같이 읽는 마음] 일본인은 어떻게 ‘혐한’에 빠져들었나

한국인을 혐오하는 일본인의 ‘혐한’ 정서는 갈수록 공고해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13일 일본 도쿄돔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한 일본인 남성을 촬영한 것이다. 플래카드에는 “오랑캐를 몰아내자”는 뜻의 한자 ‘양이(攘夷)’가 적혀 있다. 이 단어는 극우 혐한 시위자들의 대표적 구호이기도 하다. 뉴시스






한국무역협회 발표 기준, 1984년부터 2019년 7월까지 한국 주요 수출 품목에 대한 월평균 수출 금액과 무역수지 조사에서 단연 1위는 반도체였다. 2위인 자동차와 비교했을 때도 1.5배 이상의 무역수지를 기록하고 있을 만큼 한국의 반도체 의존도는 상당히 높다. 우리의 이러한 무역 상황을 모를 리 없는 일본의 반도체를 겨냥한 경제 보복 조치는 두 나라 간의 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행위였다. 지난 7월 1일, 우리나라의 핵심 수출품인 반도체의 소재부품을 일방적으로 ‘특별 관리’하겠다는 선언에서 시작된 일본의 경제 보복, 그로 인해 차가워지기 시작한 한·일 관계가 ‘냉담’을 넘어 ‘혐오’로 치닫고 있는 요즘이다.

꼭 일본과의 문제뿐 아니라 최근 수없이 논의되다가 급기야 격렬한 싸움(굉장히 이상한 형태로)의 장이 되어버리기도 하는 ‘젠더’의 문제, ‘정치 성향’의 문제, ‘님비’의 문제 등을 통해서라도 이 ‘혐오’라는 단어에 우리는 익숙해져 왔다. 말하자면 지금 우리는 ‘혐오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면 ‘혐오’란 무엇일까.

최근 우리와 일본과의 관계에서 불거져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혐오’의 문제를 심층 취재한 책이 출간됐다. “경제 보복 조치 이후 한·일 관계는 최악의 상황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6일 출간된 이 르포 시사 비평서의 첫 문장이다. 책의 이름은 국내 최초로 혐한(嫌韓) 및 일본의 혐한 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 노윤선이 쓴 ‘혐한의 계보’. 책은 혐한 담론의 출현과 정치화되고 있는 혐한까지 그 계보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혐오란 “강렬한 싫음과 강렬한 기피가 결합된 정서”이고 “인간은 누구나 나와 닮은 것에는 호감을 느끼는 반면, 다른 것에는 낯설어하고 불안함을 느낀다는 점”으로 볼 때 “혐오의 대상은 나와 다른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다른 인종, 다른 성별”일 때를 예로 들면서 저자는 “그렇게 보면 혐오는 어떤 것이 나에게 해로움을 끼칠 것이라 판단하여 그것을 배척하는 감정이며, 사회적 행위로도 연결될 수 있는 감정”이라고 지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혐한은 “한국 혹은 한국인을 싫어하는 것을 뜻하며, 한국(한국인)에 대해 혐오 발언하는 행위나 감정을 포함해 일컫는 말”이다. 혐한이라는 말이 국내에 알려진 건 2000년대 들어서이지만, 일본 내에서 이 단어가 처음 등장한 건 그보다 훨씬 빠른 1992년의 일이다. 혐한은 한국인에 대한 혐오감, 멸시감, 체념, 우월감, 공포감, 위화감의 현상을 짚는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현재 일본은 국내 혹은 국제 정치에서 혐한을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눈앞의 현실을 살피는 가운데 그 기저에 있는 뿌리 깊은 역사까지 파헤친다. 혐한의 사고방식은 무엇이고,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그것이 일본 내 문화와 결합하면서 어떻게 거부감 없이 일본인들에게 주입됐는지, 혐한의 체제와 원리에 대해 정확한 맥을 짚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일본인을 전쟁 피해자로 묘사한 ‘반딧불이의 무덤’을 비롯한 일본 내 베스트셀러들을 아주 치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작품이 널리 읽히는 현상 자체가 가족애와 결합된 애국정신의 전형적 퍼포먼스라고 지적한다. 또한 이것은 혐한이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강화되어가는 모습이라고 평가한다. 우경 문학이 일본 문학 내에서 하나의 장르로 성장해 과거 역사에 대한 구체적 배경은 제시하지 않고 자신의 민족성만 재평가하며 오로지 일본을 재건하는 일에 집중하는 모습은 매우 우려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2019년이 저물어가고 있다. 올해 역시 여느 해와 다름없이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하지만 여느 때와는 다르게 일본과의 문제는 참으로 안타까운 형편으로 불거지고 흘러간 한 해가 되어버렸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일본은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나라다. 혐오의 시대, 2019년을 마무리하면서 독서를 통해 혐한의 역사를 계보학적으로 정리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임경섭·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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