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의경] 입동



떡집을 지나다가 시루떡을 샀다. 떡에 코를 갖다 댄 순간, 오래전 그곳으로 이동했다. 침대와 책상 하나만 놓인, 겨우 몸만 누일 수 있었던 방. 나는 오래전 작고 좁은 고시원 방에서 겨울을 났다. 그 당시 나는 많은 고시원을 전전했지만 그곳은 유독 기억에 남는 곳이었다. 사람이 정말 사는 건가 싶게 조용했고 거주민들끼리 어쩌다가 마주쳐도 서로 인사를 하지 않았다. 나는 복도에 누군가 다니는 소리가 들리면 그 사람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외풍도 심하고 공기도 탁해서 아무래도 이곳에서는 오래 살지 못하겠다 싶었다. 겨울만 지나면 바로 거처를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 무섭고 가끔씩 복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더욱 인정머리가 없어 보였다.

감기에 걸려 자리에 누워 있던 날,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나는 겁이 나서 문을 살짝 열었다. 옆방에 사는 사람이 서 있었다. 그녀는 유일하게 눈인사를 몇 번 한 사람으로 나보다 서너 살 많아 보이는 여자였다. 그녀가 은박지에 싼 무언가를 내밀며 말했다. “시루떡 좀 먹을래요? 입동이잖아요.” 입동에 시루떡을 먹는다는 것을 나는 처음 알았다. 내가 머뭇거리자 그녀가 방 안으로 떡을 밀어 넣었다. “어렸을 때 매해 엄마가 시루떡을 만들어줬거든요. 그냥 넘어가려니 섭섭해서 사왔어요. 혼자 먹기엔 많아요.” 은박지에 쌓인 떡은 아직 따끈했다. 그녀가 자기 방으로 간 후 나는 시루떡을 한 입 베어 먹었다. 고소한 팥시루떡이 혀에 부드럽게 감겼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녀와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치길 바랐지만 출근길에 서둘러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몇 번 보았을 뿐 대화를 나눌 기회는 얻지 못했다. 그녀는 늘 아침 일찍 나가서 늦은 밤에 들어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루떡을 얻어먹은 이후로 늦은 밤마다 마주하는 고시원의 어두컴컴한 복도가 예전처럼 무섭게 보이지 않았다. 옆방에 시루떡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산다는 것이 작은 위안이 되었던 걸까.

그곳에서 나오는 날까지 시루떡을 나눠 준 옆방 언니의 이름을 알아내지 못했다. 시루떡 언니. 그녀는 내게 그런 이름으로 남아 있다. 따뜻한 온기와 고소한 맛과 함께.

김의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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