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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햇옥수수
벌써 햇옥수수가 시장에 나왔다. 냉동옥수수는 껍질을 까서 팔기 때문에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싱싱한 옥수수를 사 껍질째 냄비에 쪄낸다. 노란 알맹이를 까 입에 넣으면 톡톡 터지면서 달착지근한 맛이 살아난다. 씹을 때마다 느끼는 쫄깃한 탄력이 식감을 더한다. 우리나라에서 개량한 찰옥수수. 요즘 농산물은 맛이 좋다. 그만큼 품종이 개량되었고 농부들의 재배기술도 향상되었다는 사실이다. 80년대만 해도 수박을 사려면 껍질에 칼을 깊이 찔러 넣어 삼각형으로 속살을 뽑아내 빛깔과 맛을 본 후에 사곤 했다. 수박은 겉으로는 속이 잘 익었는지 아닌지 모른다. 익숙한 ...
입력:2020-07-06 04:10:01
[살며 사랑하며] 장마가 아픈 사람들
어렸을 적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등하굣길이면 평소에 못 입던 우비와 장화 차림이 마치 무적의 갑옷인 양 물웅덩이를 텀벙였다. 어른이 된 지금은 비 소식을 들으면 다른 사람들처럼 출퇴근길 걱정에 한숨부터 나오지만, 내가 더욱 비 오는 날을 싫어하게 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어떤 아이들은 궂은 날씨에 증상이 더 안 좋아진다. 치료를 잘 받는 성인 환자라면 자신의 상태를 잘 알고 있으니 면담도 가능하고 그에 맞는 약 처방도 수월하다. 하지만 중증 자폐나 발달 지연이 있는 아이들은 자신의 불편한 몸과 기분을 다룰 줄 몰라 부지...
입력:2020-07-03 04:10:01
[살며 사랑하며] 좋은 엄마가 되려면
딸아이가 네 살 때의 일이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주다가 문득 아이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궁금해졌다. 특히 어떤 부분이 좋은 걸까 알고 싶어졌다. 자신의 마음을 과연 어디까지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지만 일단 물어보았다. “넌 엄마의 어떤 점이 좋아?” 질문을 받은 아이는 깊이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래, 네 살 아이가 대답하기에는 쉽지 않은 질문이겠구나 싶었다. ‘맛있는 음식을 주어서 좋아’라고 대답하려나? 아니면 ‘나랑 놀아주어서 좋아’ 혹은 ‘엄마와 숨바꼭질을 할 때 좋아’라고 답할지도...
입력:2020-07-01 04:10:01
[살며 사랑하며] 친구의 편지
친구로부터 새 편지를 받았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병역의무를 마친 후 먼저 이민 간 가족을 찾아 미국으로 떠났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지게 됐다. 둘 다 가난한 시골 출신인 우리는 늘 학우들 사이에서 주류에 끼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처지였다. 그래서 서로 의지하며 힘든 대학생활을 보냈던 것 같다. 그가 떠난 뒤 가끔씩 편지를 주고받았다. 얼마 후 미군에 입대했다며 제복 차림의 사진 한 장을 보내 왔다. 서울이 그리워 미치겠다고 했는데 한국 근무를 명받았다며 불쑥 나타났다. 용산에서 4년을 보내고 다시 캘리포니아, 텍사스, 그러다가 독일 근무 후 미국으로 ...
입력:2020-06-29 04:10:01
[살며 사랑하며] 질투라는 감정
대학원 시절 동기 중에 목소리가 아주 예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맑고 예쁜 목소리로 발표문을 읽으면 항상 주목과 칭찬을 받았다. 목소리가 더 예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오던 나는 그 친구가 발표문을 읽으면 질투가 났다. 발표문을 읽을 때 억지로 기침을 한 적도 있었다. 유치한 행동을 하는 자신이 무척이나 형편없어 보였지만 질투의 감정을 억누르지는 못했다. 질투심에 빠져 허우적대는 자신을 보며 한없이 괴로워졌고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질투의 대상은 계속 바뀌었다. 가족에 대한 질투부터 시작해 친구에 대한 질투, 내가 이루고 싶은 일을 수월하게 이룬 ...
입력:2020-06-24 04:05:02
[살며 사랑하며] 샛강의 흰뺨검둥오리
서울 여의도 샛강은 물이 잔잔해서 물고기들의 좋은 산란처이다. 더구나 주변에 버드나무 숲이 우거져 있고 그늘이 져 고기들이 찾아들기 좋은 곳. 여기서 먹이를 찾는 청둥오리와 흰뺨검둥오리, 왜가리 같은 물새를 쉽게 볼 수 있다. 사진작가 J씨가 처음 보내온 사진에는 어미 흰뺨검둥오리가 새끼 여덟 마리를 이끌고 나란히 길을 건너고 있었다. 수많은 자전거들이 오가는 포장도로였다. 그 위험한 길을 오리 가족이 나란히 걷고 있다니. 사진에는 역광을 받아 반짝이는 새끼들의 깃털과 눈동자까지 선명하게 포착돼 있었다. 비록 사진이긴 해도 서울에서 이런 감동적인 ...
입력:2020-06-22 04:10:01
[살며 사랑하며] 바람을 맞으며
저녁에 비가 온다더니 바람에 날린 머리카락이 습한 피부에 달라붙고 눈을 찌른다. 평소라면 대충 묶고 나섰을 텐데 습기와 더위 때문인지, 심란한 일로 꼬인 심사 탓인지 도무지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았다. 끈질기게 달라붙는 머리카락을 떼며 생각해보니, 머리를 손질할 때가 한참 지나기도 했다. 다음 장소로의 이동 시간을 계산하며 잠깐 망설이다 미용실로 방향을 돌렸다. 언제나 쑥대머리 상태로 나타나곤 했던 내가 익숙해서인지, 원장은 불쑥 들어서는 나를 보자마자 ‘쯔쯔쯔’라는 표현으로 머리 상태 진단과 인사말을 대신했다. 그는 잘못된 머리손질법에 ...
입력:2020-06-19 04:05:30
[살며 사랑하며] 혐오와 선 긋기
전쟁, 테러, 전염병이나 자연재해가 사회를 뒤집어 흔들면, 어둠 속에 깊이 숨어 있던 혐오가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이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사례는 끝도 없이 많다. 대지진 후 민심이 흉흉해지자 과거의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말을 만들어 대학살을 자행했다. 독일에서는 유대인이 비난과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었고, 중세시대에는 힘없는 여자들이 마녀로 지목되어 불구덩이에 던져졌다. 거대한 불안이 덮칠 때 연약한 인간은 단순하고 간편한 적을 필요로 한다. 인종과 성별, 종교와 정치 성향 등 자신과 다르다고 선 그을 수 있는 모든 반대편을 적...
입력:2020-04-17 04:10:01
[살며 사랑하며] 한 표의 가치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스윙 보트’라는 영화를 보게 됐다. 미국 뉴멕시코주의 작은 도시에 사는 버드 존슨은 딸 몰리와 살고 있다. 학교 숙제로 부모님의 선거 참여 확인증이 필요했던 몰리는 대통령 선거에 아빠가 참여할 수 있게 신청해 놓았다. 그러나 아빠는 술에 취해 투표소에 나타나지 않고 화가 난 몰리는 대리투표를 한다. 그때 투표기의 전원이 꺼지며 무효표 처리가 된다. 두 후보의 표는 동수가 되고, 버드에게 10일 안에 재투표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이 한 표가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될지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버드는 두 후보자에...
입력:2020-04-15 04:10:02
[살며 사랑하며] 꽃이 다 떨어지고 난 후에
지금 전 세계인은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바이러스에 의해 목숨이 위협받고 있다. 이와 동시에 집에 갇혀 있음으로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자유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나 같은 사람의 숫자가 제법 많은지 수준 높은 문화공연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온라인 공간에 가득하다. 작년에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전시로 큰 관심을 모았던 데이비드 호크니가 프랑스 노르망디에 머물면서 그렸다는 최근 신작이 그중 하나로 비록 실물을 보지 못했지만 예술가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일반적으로 대가들의 작품이 주는 범접할 ...
입력:2020-04-13 04:10:01
[살며 사랑하며] 쑥 버무리
전례 없는 위기에도 봄을 즐긴다며 안전수칙을 어기고 공동체를 위협하는 이들도 있지만, 많은 이들은 사회적 거리 지키기와 조심스러운 쳇바퀴 생활에 계절을 느낄 짬도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다를 바 없이 이 봄을 그냥 지나치던 차에, 어느 위중한 사건으로 관련자들이 급히 소집된 날이 있었다. 다행히 모두가 기민하게 움직여준 덕분에 걱정했던 상황은 잘 정리가 됐고, 마지막 마무리 작업만 남긴 채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한 분이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었다. “식사를 못해 챙겨온 건데, 집에서 대충 만든 떡이라 모양은 좀 엉망이지만….”...
입력:2020-04-10 04:10:01
[살며 사랑하며] 밑줄 긋기
고등학교 때, 정규수업 후에 한 시간 동안 방송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인터넷 강의는커녕 컴퓨터도 없던 그 시절, 방송실에서 각 교실에 학습 테이프를 틀어주는 방식이었다. 당시에 듣던 수업은 국어 과목이었는데 유명 참고서를 만들었던 분이 녹음한 강의였다. 강의를 할 때 자신만의 유행어를 자주 사용했는데 아직까지 기억나는 말은 “밑줄 쫙! 진달래 꽁이야”라는 말이다. 진달래는 별표를 뜻한다. 중요한 곳이 나오면 밑줄을 긋고 별표를 하라는 뜻이었다. 예전에 독서모임을 하면서 독서 습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책에 밑줄을 긋는가에 ...
입력:2020-04-08 04:10:01
[살며 사랑하며] 전염병과 예술가
코로나19의 위협이 잠잠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거세지는 지금, 전 세계가 바이러스 공포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우주를 향해 최첨단 로켓을 발사하는 선진국들이 기본적인 의료장비 부족으로 환자들을 제때 치료하지 못해 아까운 희생자가 속출한다. 이게 안타까움을 넘어선 공포로 다가오는 것은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100년 전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전염병의 역사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그것의 실체에 대한 여러 진실을 보여준다. 전염병이 창궐하고 제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든 혼란기에도 재능 있는 예술가들은 그 ...
입력:2020-04-06 04:10:01
[살며 사랑하며] 절전 모드
인간의 뇌를 혹사시키는 것 중 하나는 ‘불확실성’이다. 직장 내 중요한 정규 회의의 진행을 맡게 됐다고 생각해보자. 처음에는 회의 준비에 매우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점차 시간과 노력을 적절히 분배하고 일정을 조정해 가능할 때에는 휴식을 취하는 등 나름 적응해 나갈 것이다. 그런데 만약 상사나 회사 상황이 너무 변덕스러워 회의가 언제 열릴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내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를 전혀 예측하기가 어렵다면 어떨까? 설령 이런 기습 회의들이 종종 예상보다 쉽게 끝난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뇌는 이런 불규칙...
입력:2020-04-03 04:05:02
[살며 사랑하며] 디지털 안식일
요즘 부쩍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되었구나 싶었는데 이제는 잠시만 눈에 보이지 않아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 정도면 심각한 스마트폰 중독이구나 싶어서 휴대폰 하는 시간을 줄이기로 결심을 했다.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일처리가 늦어지는 가장 큰 이유로 휴대폰을 하는 시간이 많아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방법이었다. 어떻게 하면 제일 좋을까 고민을 하다가 휴대폰 사용 시간을 줄이는 방법을 찾아보니 여러 가지가 있었다. 휴대폰을 다른 방...
입력:2020-04-01 04:05:01
[살며 사랑하며] 동네서점
인터넷에서 ‘동네서점’을 검색하면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이름들이 흘러나온다. 꽃피는책, 사슴책방, 그건그렇고, 구름책방, 소리소문, 모모, 단비책방, 나이롱, 여행가게…. 이름만 들어서는 서점이라는 것을 알기 힘든 곳도 여럿이다. 서점 주인들은 서점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름을 짓는 과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달에는 평소 가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가보지 못했던 동네서점을 찾아다녔다. 나는 홀로 일곱 군데의 작은 서점을 탐방했다.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이 더 걸리는 서...
입력:2020-03-30 04:10:01
[살며 사랑하며] 이타주의, 유머, 승화
요즘 사회 어디에나 긴장과 불편함의 수위가 높아서인지, 학생 때 시험공부 기간에 아무 생각 없이 달달 외웠던 성숙한 방어기제(무의식적으로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방법) 몇 가지가 문득 떠올랐다. 이타주의(altruism), 유머(humor), 승화(sublimation). 많은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남 탓을 하며 불쾌한 감정을 외부로 투사한다. 또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술이나 파티를 하는 등 미숙하게 퇴행하거나, 반대로 힘든 감정을 분리해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묻어두고 일상에 몰두하기도 한다. 한두 번은 이런 꼬인 방법이 상황을 넘기는 데 도움이 될지 몰라도, 반복...
입력:2020-03-27 04:10:01
[살며 사랑하며] 루틴은 나의 힘
초등학교 때 일이다. 개인위생을 중시하셨던 아버지가 어느 날 비누와 수납 바구니를 사 오셔서 가족들에게 나누어주신 적이 있다. 이제부터는 각자 자신의 것을 이용하라고 하셨다. 어느 날 화장실에 갔다가 별 생각 없이 아버지의 비누를 썼다. 사용 후 비누를 대강 올려놓았다. 그땐 몰랐지만 아버지에게는 비누를 놓는 자신만의 규칙이 있으셨다. 물기를 빨리 마르게 하기 위해 사용 후에는 비누를 세워놓으셨다. 이 사실을 모르고 대강 놓았던 나는 그날 야단을 맞았다. 사실 지금도 비누란 모름지기 어떻게 놓여 있어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 성격이다. 어린 시절 아버...
입력:2020-03-25 04:10:01
[살며 사랑하며] 이토록 다양한 일상
SNS를 하면서 감탄하는 것 중 하나는 세상에 이토록 다양한 일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종종 대리만족을 경험한다. 앉은 자리에서 해외여행을 하기도 하고 각 지역의 음식을 눈으로 맛보기도 한다. 누군가는 콘서트 사진을, 누군가는 전시회 사진을 찍어 올린다. 한 사람의 SNS에 올라오는 글은 한 가지 색이 아니다. 활기로 가득 찬 삶을 보여주던 사람이 어느 날 우울의 정점을 찍기도 하고 늘 담담한 어조를 유지하던 사람이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여기저기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들이 경쟁하듯이 올라올 때도 있다. 누군가는 헬스장에서 역기를 들어 올리...
입력:2020-03-23 04:10:01
[살며 사랑하며] 마음 운동
다리를 다친 후 재활치료를 받다 보니, 평소 잘못된 습관과 태도가 몸에 불균형을 만들어 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익숙한 자세로만 지내왔던 세월이 쌓이며 차곡차곡 병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현대인들은 구부정한 C자 자세로 지내는 시간이 길어 복근과 허벅지뿐 아니라 등 근육까지 많이 망가져 있다고 한다. 그러니 목, 허리, 무릎, 발목과 같이 무게를 지탱하는 부위들에 통증과 이상이 자꾸 생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편하고 어색한, 평소에 하지 않던 움직임을 일부러라도 해서 몸의 균형을 맞춰야 한단다. 돌이켜보니 그동안 등과 옆구리의 근육을 생각하며 살아...
입력:2020-03-20 04:10:02
[살며 사랑하며] 나눔의 확산
최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감동적인 기사를 몇 편 읽었다. 어느 장애인이 파출소에 마스크를 기부한 사연이었는데 그분이 쓴 편지에는 ‘부자들만 하는 게 기부라고 생각했는데 자신도 도움이 되고 싶어 용기를 낸다. 너무 작아서 죄송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어느 자치구에서는 마스크를 만들어 나누어주기 위해 자원봉사자를 모았는데 300명이 자원했다고 한다. 구청 대강당에 모여 함께 마스크를 만드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어릴 적, 아버지는 매일 신문을 스크랩하셨다. 빼놓지 않고 모으던 기사는 미담에 관한 내용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
입력:2020-03-18 04:10:01
[살며 사랑하며] 셀프빨래방
늦은 밤 셀프빨래방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대체로 계절이 바뀌는 시점에 빨래방에 간다. 빨래방에서 빨래를 하고 나면 계절을 마무리 짓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때마침 세탁기가 고장 나는 바람에 평소보다 자주 빨래방에 가야 했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지만 손님이 두 명 있었다. 이십대 여성은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문제집을 풀었고 중년 남성은 건조기에 옷을 넣은 다음 한쪽에 놓인 안마의자에 앉아 안마를 받았다. 나는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그리고 건조기로 옮긴 세탁물이 건조되는 한 시간 남짓 동안 텔레비전을 봤다. 건조가 끝난 후 건조기에서 세탁물...
입력:2020-03-16 04:10:01
[살며 사랑하며] 봄, 봄, 봄비
세상에. 봄비가 온다. 토닥토닥 빗소리에 번잡한 세상의 소음은 먼지와 함께 한 톤 낮아진다. 차분히 앉아 창밖을 보면 내 마음이 한 뼘 더 가까이 느껴진다. 감염 예방을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지만, 지나치게 부대끼며 경쟁하던 현대사회에서는 심리적으로도 필요한 노력 같다. 참으로 안타깝지만 인류 역사상 사회가 과열되고 인구가 폭증할 때마다 새로운 전염병이 나타났다. 우리의 삶도, 마음도 그간 지나치게 과열되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 식사만 균형이 필요한 게 아니다. 사람 간의 거리도, 삶의 모습도 균형이 필요하다. 하나 더, 사...
입력:2020-03-13 04:10:01
[살며 사랑하며] 적당한 운
얼마 전 대학원 졸업과 취업, 결혼을 연이어 하게 된 후배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들으면서 정말 운이 좋은데, 라는 생각을 했다. 그 후배처럼 운이 아주 좋은 경우도 있었지만 정말 노력했는데 운이 따르지 않은 친구도 있었다. 젊은 시절에는 운보다는 실력이라 믿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이루어질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 운이 삶에서 많이 작용한다는 생각이 커져갔다. 공들여 노력한 일은 되지 않고, 기대하지 않은 일들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운만 바라는 건 안 되겠지만 일의 결과를 기다리면서 운이 따르기를 희망하곤 했었다. ...
입력:2020-03-11 04:10:02
[살며 사랑하며] 임산부 배려석
지난달 말 이른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병원에 갔다. 의사가 모니터 한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아기집이에요.” 임신테스트기로 두 줄을 확인했을 때도 임신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없었지만 아기집을 보고서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아직 태동도 느껴지지 않았고 몸이 무겁지도 않았다. 한두 번 아랫배에서 콕콕, 하는 통증이 느껴지긴 했다. 병원에서 발급해준 임신확인서를 들고 보건소에 방문해 임산부 배지(badge)를 받아 들고서도 실감이 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지하철에서 임산부 배려석에 앉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남자가 앉아 있기도 했지만 ...
입력:2020-03-09 0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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