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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박민지] 말의 경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시행한 지 100일이 지났다. ‘직장 갑질 ○○% 줄었다’는 기사를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불과 며칠 전 지인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그게 벌써 시행된 상태야?” “응, 신고할 것 있으면 해보라던데” 하는 대화를 듣고 실소했던 기억 때문이었다(난 웃기만 했다). 자찬보다 아직은 고삐를 죌 때 아닌가 싶었다. 그래도 법인데, 시행했으면 뭐라도 달라지는 건 당연하지 않나.

“얼마나 괴롭혀야 괴롭힘으로 인정되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모두 말문이 막혔다. 근로기준법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직장 괴롭힘으로 정의했다. 이렇다 할 명확한 기준은 없다는 의미다. 이때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거나 선의로 포장되는 행위들이다. 교묘한 방법으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거나 과도한 참견으로 고통을 받은 이들의 괴로움까지 이 범주에 포함할 수 있을지 꽤 열띤 토론을 벌였는데 결론은 “그건 아니겠지”였다.

폭넓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상태에서 처벌보다는 경각심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그래야 장기적인 효용가치가 있다. 성희롱의 경우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신체적, 감성적 고통 모두를 포함해 판단한다. 이 법도 그랬으면 좋겠다(사회 통념상 타당한 수준의 업무 지시는 물론 제외돼야 한다).

토론을 하면서 직장 괴롭힘의 경계선을 넓힐 만큼 넓히다 보니 끄트머리에 잔소리가 남았다. 무분별하고 무례한, 선의이지만 불쾌하고, 업무와 관련이 없으니 불필요한 말들. ‘꼰대’ 기피 현상이 들불처럼 번져 ‘나 때는 말이야’를 조롱하듯 유행시킨 사회에서 “겪어봐서 안다”는 식의 말을 우리는 좋게 말해 잔소리라고 불러왔다.

잔소리의 역사는 깊다. 인간은 아주 오래전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살아본 이들의 지혜를 빌려야 했다. 적자생존 원리에 의해 뒤처지는 이는 도태됐으니 어른들의 가르침은 필수였다.

오늘날 인간의 목표는 생존이 아니다. 알고자 하면 다 알 수 있고, 사실 아직은 몰라도 되는 것도 많다. 이 시대가 그 시대도 아닌데 어른들의 가르침 욕구는 DNA에 새겨진 듯 쉬이 바뀌지 않고 있다. 김혜남 정신과 의사는 “옛 집단사회에서는 가깝다고 생각하면 남의 생활에 침투해도 된다는 의식이 있었지만 현대의 젊은이는 경계를 지키고 싶어 한다”고 지적했다.

말 자체보다 더 큰 문제는 그 말이 오고 가는 분위기다. 잔소리의 상황을 많은 젊은이가 편치 않게 여기는 이유는 무례하다는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묻지 않았고 궁금하지 않았다. 정유희 작가는 책 ‘듣고 싶은 한마디, 따뜻한 말’에 이렇게 적었다. “조언이나 충고를 해주고 싶을 때 먼저 생각해야 할 점은 조언과 충고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상대방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먼저 묻기 전에는 조언을 하지 않는 게 낫다. 내게 적용된다 해서 상대방에게도 강요하는 건 오만한 태도다.”

대처법은 도통 찾아보기 힘들었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란 책을 들여다보니 어른들이 오지랖으로 상처를 준다면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와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답하라고 적혀 있다. 그 정도였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가 딱히 중요하지 않은 이유는 잔소리를 하지 않으면 끝날 일이기 때문이다.

90년생이 왔다. 행동자유권과 인격의 자유발현권 그리고 생존권을 중히 여기는. 지금의 세대는 그렇다. 유별나지 않다. 그저 바로잡고 있을 뿐이다. 헌법에서 행복추구권은 ‘먹고 싶을 때 먹고, 놀고 싶을 때 놀며, 자기 멋에 살고, 멋대로 옷을 입어 몸을 단장하는 등의 자유가 포함되며 자기설계에 따라 인생을 살아가고, 자기가 추구하는 행복의 개념에 따라 생활함’을 의미한다. ‘사회생활’을 이유로 이런 권리를 반납하라기엔 이들의 논리가 꽤 탄탄하지 않은가.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 인간의 기본권을 말하고 있다.

이들의 선택권에 “해봐서 안다”며 침투하는 행위 정도는 용인해도 되는지 어른들이 생각해보면 좋겠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이, 안 하느니만 못한 말이 지금 여기 너무 많다.

박민지 온라인뉴스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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