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기타

[세상만사-문수정] 유니클로의 의도



‘의도하지 않았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의도와 상관없이 벌어진 일이다.’ 익숙한 수사(修辭)다. 공인이거나 조직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 기업이나 정부의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식 석상에 나오면 으레 하는 말이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라는 변명. 높은 분들에게만 해당하랴. 평범한 사람들도 일상생활에서 많이 쓴다. 대개는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 알지만 바로 사과하자니 자존심 상하거나 머쓱할 때 고의성 여부를 슬며시 들이민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았다’는 변명은 대체로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때때로 해결의 물꼬를 틀 수는 있어도 고의성 여부에 따라 잘잘못이 가려지지는 않는다. 법적으로는 양형에 참작될 수 있겠으나 도의적으로는 오히려 상대의 부아를 돋우고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의도적인 게 분명하다’는 확신만 일으키는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잘잘못을 따지는데 고의성 여부를 거론할 수조차 없는 일도 있다. 음주운전 사고를 생각해보자. ‘사고를 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술을 마시고 운전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음주운전자가 사고를 낸 뒤 “고의는 아니었다”고 말한다면 거의 모든 경우 명명백백 사실일 것이다. 이 정도는 괜찮다는 안일한 생각에 운전대를 잡았거나, 만취 상태의 길 잃은 판단력으로 호기롭게 운전석에 앉았을 것 같다. 혹은 아주 나쁜 버릇일 수 있겠다. 의도가 없었을 뿐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헛된 자신감까지 가졌으리라. 음주운전에 분노하는 이들은 “술은 죄가 없다”고 단언하지만, 반복적인 음주운전자들은 “죄가 있다면 내가 아니라 술”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사고 경위가 어떻든 음주운전자가 “의도한 일이 아니었다”고 했을 때 “그래, 사실만을 말한 네 말이 옳다”며 따뜻하게 받아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의도하지 않았다는 게 분명한 팩트일지라도 그 사실이 음주운전 사고라는 잘못을 덮어줄 수는 없다. 일말의 양심이 있는 자라면 술 마시고 사고를 낸 뒤 의도를 운운하지도 않을 테다.

잘못을 저지른 이가 본인의 의도에 대해 짧게든 길게든 이야기하는 것은 좀 치졸하다. 경우에 따라 몹시 억울할 수 있겠으나 피해를 입은 이가 모든 걸 제쳐두고 헤아려줄 사안은 아니다. 사과(또는 사죄)와 용서의 커뮤니케이션이 양측을 오간 뒤에야 논할 수 있는 게 고의성 여부다. 의도에 대한 논의를 먼저 시작하는 것도 피해를 입은 쪽이어야 합당하다. “그래,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건 알겠어.” “의도와 상관없이 벌어진 일이라 속상했겠다.” 사건이 종결된 뒤 후일담으로 나눌 만한 주제인 것이다.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냐고?” 유니클로의 이 광고 자막이 공분을 일으키자 유니클로 측은 “전혀 의도적인 게 아니었다”는 점을 거듭 밝혔다. 그것 말고는 할 말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물의를 빚어서 죄송하다는 게 유니클로의 ‘유감 표명’이었다(아무리 생각해도 이걸 사과로 볼 수는 없기에 모호한 수사 중 하나인 유감 표명으로 갈음했다).

인간의 선의와 사회성을 믿는 한 사람으로 나는, 이 사태가 의도한 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믿고 싶다. 수많은 결재 과정에서 누구 하나쯤은 거를 수 있지 않았겠느냐, 그러므로 의도적인 게 확실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지만 어처구니없는 실수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든 아니든 그게 뭐 대수겠는가. 이 상황에서 의도를 따지는 건 음주운전자의 변명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논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의도했을 것’이라 의구심이 드는 일이 있다. 유니클로가 광고 사태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는 것. 익명의 관계자 목소리를 빌려 유감을 표하는 대신 책임 있는 누군가가 앞으로 나와 고개를 숙여야 한다. 사과는 빠를수록 좋지만 조금 늦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 그러나 그런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이건 일부러 그러는 것이 분명하다.

문수정 산업부 차장 thursday@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