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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전석순] 지로용지를 고집하는 이유



상담원은 지로용지 대신 이메일이나 스마트폰으로 요금고지서를 받아보면 장점이 많다고 했다. 종이 낭비도 줄일 수 있고 요금 할인 혜택도 있었다. 우편물 분실로 인해 공과금이 밀릴 일도 없고, 이전 고지서가 필요할 때도 간편하게 찾아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개인정보가 담긴 지로용지가 외부에 노출된 우편함에 있는 게 마음 쓰이기도 했던 차라 다음 달부터 이메일로 고지서를 받아보기로 했다. 동네 어르신 중에는 매달 우편함에 꽂히는 지로용지를 고집하는 사람도 여전히 많다고 전해 들었다. 처음에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일이 서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정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대부분 혼자 사는 노인이었다.

내가 사는 도시는, 세대수는 늘었지만 오히려 인구는 줄어드는 달이 많다. 1인 가구 증가 탓일 것이다. 통계청에서 실시한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 비율은 전체 가구 중 30%에 가깝다. 1980년에는 5% 미만이었지만 매년 꾸준히 늘어나 이대로라면 2024년에는 37.3%로 증가해 약 832만 가구가 1인 가구일 것이라고 한다. 원인으로는 고령화나 결혼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등이 꼽히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 전반적인 면에서 1인 가구를 중심으로 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주택뿐만 아니라 가전제품 소비도 소형이나 렌털 쪽이 강세를 이어가고 있고, 마트에서도 소포장된 과일이나 생선 등의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 이런 변화를 ‘솔로 이코노미(Solo Economy)’라고 부른다.

그 사이 가장 취약한 계층은 노인들이다. 자녀의 출가나 사별 등으로 혼자 사는 노인은 가파르게 증가해 2035년에는 4명 중 1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젊은 세대의 자발적 선택과 달리 가족해체로 어쩔 수 없이 혼자 산다는 것이 특징인데 더 주목해야 하는 점은 따로 있다. 만성질환이 있거나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빈곤에 놓여 있는 가구가 많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오래전부터 고독사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제는 노인을 넘어 중장년층 1인 가구까지 위험군으로 본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일본에는 이미 1970년대부터 고독사라는 개념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고독사 보험까지 등장해 인기를 끌기도 했다. 혼자 사는 세입자가 사망했을 때 그에 따른 집주인의 부담을 덜어주는 보험이라고 한다. 이제 우리도 비슷한 상황을 대비할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아직 고독사의 개념조차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무연고 사망자 현황을 통해 고독사 현황을 가늠하고 있을 뿐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무연고 사망자는 2018년 2549명으로 5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하루에만 7명의 무연고 사망자가 생긴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고독사의 증가를 짐작해볼 수 있지만 보다 정확한 파악이 없다 보니 해결책에서도 아쉬움을 남기곤 한다.

노인 돌봄 서비스나 독거노인 응급 안전 알림 서비스는 훌륭한 대책이지만 고독사의 위험을 안고 있는 계층이 모두 이용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응급 안전 알림 서비스의 경우 낮은 보급률과 신고 내용 중 40%에 가까운 오작동이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다. 서울의 한 구청에서 실시한 ‘1인 가구 고독사 예방 스마트플러그 서비스’는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해 24시간 관찰하고 문제가 생기면 즉각 대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500세대에만 설치하는 데에 그쳤다. 담당자가 주기적으로 연락하고 방문해 어려움에 귀 기울이는 것도 좋은 시스템이지만 여전히 인력과 비용의 한계로 횟수와 대상 선정에 부족함이 있다고 한다. 게다가 도움이 필요하지만 이웃과 단절된 노인의 경우 찾아내는 일부터 어렵다.

보다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커뮤니티의 활성화를 생각해볼 수 있다. 가족과 직장에서 멀어진 노인은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마련인데 가까운 이웃과의 긴밀한 관계나 동 단위로 형성된 공동체, 공동생활, 동호회 등이 지로용지로 바꾸는 것보다 효과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신문도 지로용지도 다 필요 없어. 제일 효과 좋은 건 우유지.” 동네 어르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서로 안부를 묻다가 나온 목소리였다. 굳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혼자 사는 노인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는 듯했다. 그 모습이 가을의 낙엽보다 더 쓸쓸하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전석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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