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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남호철] 대통령 별장 보러 왔는데…



경남 거제시 장목면 유호리에 속하는 저도(猪島)는 면적 43만4181㎡에 해안선 길이는 3150m로 아담한 섬이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 일본군 통신소와 탄약고로, 6·25전쟁 때는 연합군의 탄약고로 사용되면서 주민들 대부분이 떠나게 됐다. 이후 대통령의 여름 휴양지로, 대통령 바다 별장으로 지정되면서 일반 주민들은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금단의 땅’이 됐다.

이 섬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47년 만에 지난달 17일 개방됐다. 거제와 부산을 잇는 거가대교가 섬을 지나가지만 일반인이 승용차로 섬에 들어갈 수는 없다. 섬에 발을 내디디려면 거제 궁농항에서 배를 타야 한다. 궁농항에서 약 4㎞ 떨어진 저도는 시속 10노트(약 19㎞) 속도로 15분이면 닿는다.

저도에는 2층 규모의 청해대(대통령 별장) 본관과 경호원 숙소, 관리요원 숙소, 장병 숙소, 자가 발전소, 팔각정과 산책로, 전망대, 골프장과 해안에 길이 200여m의 인공 백사장 등이 조성돼 있다. 선착장에 도착해 안내요원들의 안내에 따라 해군 장병들의 숙소로 활용되는 3관(해군 콘도)→제2전망대→2분기점→해송(곰솔)→둘레길→연리지 정원(골프장)→위락부두→모래 해변을 돌아 선착장으로 돌아오게 된다.

산책로 곳곳 전망 좋은 곳에 포토존도 마련돼 있다. 웅장한 거가대교와 남해의 섬이 펼쳐놓는 절경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산책로 옆 울창한 아름드리 해송과 동백, 후박나무 등은 원시림처럼 때 묻지 않은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9홀 미니 골프장에서 ‘연리지 정원’으로 변신한 푸른 잔디가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여름휴가 때 ‘저도의 추억’이란 글씨를 썼던 모래 해변에서는 흉내 내는 탐방객들이 많다. 처음 보는 풍경이니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대통령 별장에 이르면 부푼 기대감에 들떴던 마음은 아쉬움으로 바뀐다.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데 들어가 보기는커녕 접근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별장은 물론 경호원 숙소 등은 사진 촬영도 못하게 한다. 여전히 국방부 소유지로 해군에서 관리하기 때문이다.

이것조차도 부러워하는 이들도 있다. 저도는 2020년 9월 16일까지 월·목요일을 뺀 주 5일만 들어갈 수 있다. 방문 인원은 1일 최대 600명이며, 1일 방문 횟수는 2회(오전 10시20분과 오후 2시20분), 방문 시간은 1회당 1시간30분이다. 이것도 군(軍) 정비 기간에는 제한된다. 최소 방문 2일 전에 이름과 주소,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등을 인터넷이나 유람선사에 방문 제출하고 신원조회를 통과해야 한다. 하루에 600명으로 입도가 제한돼 신청자가 많으면 더 기다려야 한다. 시범 개방에 따른 희소성과 저도에 대한 관심 고조로 개방 이틀 만에 올해 저도 입도 만료 시점인 11월 말까지 예약이 마감됐다. 올해에는 저도에 가고 싶어도 표를 구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저도 입도가 취소됐을 때도 문제다. 지난달 태풍 ‘타파’가 발생했을 때 20일부터 22일까지 주말 운항이 갑자기 중지됐다. 태풍이 일본 오키나와 남쪽에 있어 한반도에 큰 영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안전’이라는 이유에 예약자들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안전이 우선시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저도 방문 일정을 넣어 거제도에 미리 관광 온 여행객들은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본인 잘못도 없이 취소됐는데 다시 갈 기회조차 사라졌기 때문이다.

저도 개방은 한시적인 데다 범위가 극히 제한적이어서 ‘반쪽짜리 개방’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통령의 섬’이 진정한 ‘국민 모두의 섬’이 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전면 개방이 이뤄져야 하고 취소됐을 경우 등을 대비한 섬세한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 현재 사용되지 않고 있는 위락부두를 정비해 유람선 선착장으로 활용하거나 저도에서 가장 좋은 전망을 자랑하는 제1전망대를 개방하고, 절벽 경관이 빼어난 남쪽 해안에 탐방데크를 설치하는 것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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