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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김준동] 링컨의 길이냐, 부시의 길이냐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적절치 못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는 현실에서 철저히 격리된 채로 자기 생각을 믿고 거기에 빠지는 덫에 걸렸다. 그는 다양한 전문가들, 이라크와 관련된 업무를 직접 다룬 경험이 있는 백악관 외부의 인사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입장에 반대하는 사람 등 다양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독립적인 의견을 받아들이는 데 실패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재임 당시 백악관 대변인(2003~06년)을 지낸 스콧 매클렐런은 2008년 이렇게 회고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넛지’의 저자로 유명한 캐스 R 선스타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Going to Extremes)’에서 매클렐런 대변인의 이 회고를 인용해 부시의 집단 극단화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부시 행정부 내 집단 극단화가 원인이었다고 지적했다. 부시 행정부는 동질성이 강한, 이른바 ‘라이벌 아닌 사람들의 팀(team of unrivals)’으로 구성돼 내부 다양성이나 반대 의견은 충성심 부족으로 간주돼 억제됐다고 했다. 전쟁 명분이었던 이라크의 살상무기 확보가 사실이 아니라는 첩보들이 있었지만 무시됐고, 이라크전과 관련된 세금정책이나 관련 규정 등에서 집단 극단화가 만개했다고 덧붙였다. 특정 사고에 함몰된 집단이 의사결정을 좌우한 결과 정책 실책이 줄을 이었고 이는 결국 부시 행정부의 총체적 실패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이와 대비되는 대통령이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미국 역사학자 도리스 컨스 굿윈은 링컨의 성공이 ‘건강한 라이벌들의 팀(team of rivals)’ 덕분이라고 했다. 링컨은 자신의 생각에 이의를 달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선택했고 그들의 주장을 하나하나 검토해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 굿윈은 링컨의 힘을 보수주의자로부터 극단적 급진주의자까지 모두 아우르는 포용력에서 찾았다. “링컨이 적수들을 한데 모으고, 역사상 가장 기이한 내각을 구성하고, 연방의 보전과 전쟁의 승리를 위해 그들의 재능을 결집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능력들 덕분이었다.”

선스타인은 두 대통령을 비교하면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시스템, 다양성, 견제와 균형이 극단화를 극복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극단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이들의 생각에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에 의해 제지를 받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국가와 기업 모두 내부의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질 때 성공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선스타인의 고언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정치 광장이 뜨거운 대한민국의 10월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연령별, 남녀별로 갈라진 채 보수와 진보로 온통 광장이 찢어지고 갈라지고 있다. 한동안 지역감정으로 나뉘더니 이제는 이념 전쟁으로 혼란스럽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지만 이념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문제는 저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성이 심화되고 있다는 데 있다. 인터넷이나 SNS로 끼리끼리만 소통하면서 불통과 극단의 수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특정 이념을 강조하거나 사실 확인 없는 가짜뉴스를 무분별하게 퍼 나르는 개인 유튜브 방송의 난립도 우리 사회의 확증편향성을 부추긴다. 특히 유튜브 등이 이용자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면서 이용자는 제 입맛에 맞게 걸러진 정보만 접하게 되고, 그로 인해 정치·사회적 이슈에서의 고정 관념과 편견은 더 강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광장의 ‘편향 동화’(자기 생각과 다른 의견은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치부하고, 자신의 기존 입장을 더 강화하는 것), ‘사회적 폭포 현상’(소수의 믿음과 관점이 다수의 사람에게 확산되는 현상)이 더해지면서 다들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엄청난 정보의 바다에서 각자 섬에 고립돼 언어의 날만 더 예리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은 갈등을 완화하고 조정하려고 하기보다 되레 증폭시키고 있어 씁쓸하다. 통합의 메시지를 내고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야 할 문재인 대통령마저 길을 잃고 있는 듯하다.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던 취임사는 휴지조각이 된 지 오래고 통합과 포용을 외치고 있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뿐이다. 링컨의 길을 갈 것이냐, 부시의 길을 갈 것이냐. 문 대통령의 몫이다.

김준동 공공정책국장 겸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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