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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첩 구릉 사이 옅은 안개 출렁이는 ‘몽환 풍경’

일출 무렵 전남 함평군과 영광군 경계에 솟은 불갑산 연실봉 능선에서 본 해보면(面) 일대 들녘 풍경. 첩첩이 이어진 구릉 사이에 옅은 안개가 드리워져 선계(仙界)와 같은 풍경을 빚어내고 있다.


모평마을 수벽사 앞 열녀비 제각과 노비 비석.


학교면 고막리에 있는 ‘보물’ 고막천 석교.


독립문과 평화의 소녀상 국화조형물.


가을은 여행의 계절이다. 한낮의 볕은 따뜻하고 바람은 선선해 떠나기에 안성맞춤이다. 가을의 서정을 듬뿍 안겨주는 국화를 비롯해 다양한 축제도 펼쳐진다. 전남 함평에는 국화 축제의 대명사 ‘2019 대한민국 국향대전’이 열린다. 여기에 여행지 곳곳에 스며든 옛이야기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함평의 가을 풍경을 맞이하기 좋은 곳이 함평과 영광의 경계를 이루는 불갑산(해발 516m) 연실봉 능선이다. 해발 1000m를 훌쩍 넘는 이름난 산에 비해서는 크기나 위세가 어림도 없지만 함평 땅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지라 다른 산들을 발아래 거느리고 있다. 발품을 많이 팔지 않아서 좋다. 해발 450m 지점까지 자동차로 올라가 20~30분만 걸어가면 된다.

차에서 왼쪽 길을 따라 조금 가면 ‘위험한 길’과 ‘안전한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서 있다. 오른쪽 안전한 길로 가면 바위 아래 숲속으로 들어선다. 반대편 위험한 길을 따르면 곧추선 바윗길이 이어지고 낭떠러지 바위에 오르면 일망무제의 풍경이 펼쳐진다. 이른 아침 오르면 노랗게 익은 해보면(面) 일대의 들녘에 출렁이는 옅은 안개를 마주하게 된다. 첩첩이 이어진 구릉 사이를 메우고 들판을 이불처럼 덮은 새벽안개는 선계(仙界)와 같은 몽환적 풍경을 빚어낸다. 서서히 태양이 고도를 높이면 햇살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한 폭의 수묵화 같은 풍경은 햇빛에 온통 황금빛으로 빛난다.

가까운 곳에 모평마을이 있다. 고려 시대 함평 모씨가 열었다고 전해지며, 1460년 윤길이 정착하면서 파평 윤씨 집성촌이 됐다. 남도지방 고유의 모양새를 갖춘 반가(班家)의 고택이 반듯하다.

마을에서 이름난 집은 모평헌(牟平軒)이다. 바닷물에 7년 동안 담근 후 15년 동안 건조시킨 소나무로 지어 100년을 훌쩍 넘겼다. 그 집 앞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옛 관아의 우물로, 1000년이 넘었지만 여태 한 번도 마르지 않았다는 ‘천년 샘물’ 안샘이 있다.

영양재에 오르면 해보천을 따라 느티나무와 팽나무, 왕버들이 군락을 이룬 인공방풍림이 보인다. 그 숲 한 쪽에 임곡정이 다소곳이 들어서 있다. 영양재 옆으로 오죽(烏竹)군락지와 야생죽로차밭, 편백, 왕대나무, 조릿대 숲을 지나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야생죽로차밭 아래 수벽사가 자리한다. 여진족을 몰아내고 동북 9성을 쌓은 고려 장수 윤관(1040∼1111년) 사당이다. 그 옆 제각에 열녀비가 있다. 정유재란 때 남편이 왜병에게 살해당하는 것을 막으려다 목숨을 잃은 신천 강씨를 기리는 비다.

제각 옆의 이끼 낀 비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신천 강씨 부부가 죽고 어린 아들만 남자 충노(忠奴) 도생과 충비(忠婢) 사월 부부는 주인의 아들을 보살피고 키워 과거급제까지 시켰다. 아들은 노비 부부의 비를 세우라는 유언을 남겼고, 파평 윤씨 문중에서는 여태껏 노비를 기리고 있다고 한다.

대동면 향교리에 가면 천연기념물 제108호 ‘느티나무·팽나무·개서어나무 숲’이 있다. 숲도 이야기를 전해온다. 향교리라는 이름답게 향교가 있는 마을이다. 왕을 모실 만한 명당터로 알려져 있었지만 지기(地氣)에 맞게 향교가 들어섰다고 한다. 그런데 향교터 남쪽 신흥동 뒷산이 화국형(火局形)인 것이 문제였다. 화국을 누르려면 수국(水局)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인근 팽나무, 느티나무 등을 옮겨 향교와 화산 사이에 숲을 조성했다.

학교면 고막리에 있는 고막천 석교는 남한에서는 유일한 고려시대의 다리다. 1274년 고려 원종 때 축조된 다리로 보물 1372호다. 길이 20m, 너비 3.5m로 화강암을 다듬거나 모양을 내지 않고 정교하게 짜맞춘 형태가 인상적이다. 고막대사가 도술을 부려 다리를 놓았기 때문에 큰 홍수에도 견딜 수 있고, 700년 넘도록 다리의 원형이 변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저물녘에는 함평만(灣) 일대가 좋다. 돌머리(石頭) 해변에서는 해넘이 장면을 마주할 수 있다. 바다를 향해 뻗어 나간 육지의 끝이 바위여서 돌머리란다. 멀리 해제반도가 손에 잡힐 듯 다가선다. 인근 손불면 궁산리 일대에 해수찜하는 곳이 여럿 있다. 따뜻한 물이 담긴 탕에 몸을 담그는 해수탕과 달리 해수에 뜨겁게 달군 유황석을 넣은 물에서 나온 증기로 몸을 데운다. 200여년 전부터 함평 지방에서 이어온 전통 방식이다.

여행메모

연실봉 가려면 내비에 ‘밀재휴게소’ 검색
내달 3일까지 엑스포공원에서 국향대전


전남 함평 불갑산 연실봉에 가려면 내비게이션에 밀재휴게소를 검색해 찾아가면 된다. 휴게소에서 직진해 밀재 고개를 넘어가면 좌측으로 들어가는 작은 길이 보인다. ‘용문사’를 지나 10여분 오르면 송신소 주차장에 닿는다. 돌머리 해변으로 먼저 가려면 서해안고속도로 함평나들목에서 빠지면 된다. 함평읍으로 가다 보면 표지판이 나온다.

함평의 유명한 먹거리는 함평 소고기다. 함평 우시장 덕에 한우고기를 싼값에 먹을 수 있다. 육회비빔밥도 빼놓을 수 없다. 삶은 돼지비계가 함께 나오는 점이 특이하다. 모평마을에는 한옥을 체험할 수 있는 민박집이 여럿 있다.

함평에서 ‘2019 대한민국 국향대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 18일 함평엑스포공원에서 ‘임시정부 100년! 백만송이 함평 국화와 함께’라는 주제로 개막해 11월 3일까지 이어진다. 축제장 중앙광장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조성한 실제 크기의 독립문(높이 14.28m)과 백범 김구 상, 매화버들 등 대형 국화조형물 7점이 새롭게 들어섰다. 특히 처음으로 야간개방(매일 밤 9시까지)을 실시 중이다.

함평=글·사진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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