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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홍인혜] 우리는 모두 입체다



예전에 한 친구가 본인에게 재미난 재주가 있다고 했다. 그것은 타인의 성격이나 마음 상태를 진단하는 능력으로, 친구가 분석을 시작하면 모두 “맞아 맞아, 내가 딱 그래!” 하고 감탄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신기해서 친구에게 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었는데 그때 친구가 농담처럼 한 말은 이것이었다. “뭐든 한 면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여러 면을 아우르기만 하면 돼.”

말인즉슨 타인의 성격을 이야기할 때 “당신은 내성적이군요”라고 단정 짓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내성적이지만 외향적인 면도 있군요”라고 한다거나 “당신은 사람을 좋아하는군요”라고 하는 게 아니라 “당신은 사람을 좋아하지만 혼자만의 시간도 꼭 필요하군요”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는 얼마든지 변주될 수 있다. “당신은 겁이 많지만 때때로 용감해지는군요” “보수적이지만 급진적인 면도 숨어 있네요” “모두가 당신을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들여다보면 우울한 구석도 보여요” 등등. 나는 실소가 나왔다. 저렇게 뭉뚱그려진 말이 어디 있단 말인가. 범위를 저 모양으로 넓혀두면 속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냔 말이다. “저런 말을 사람들이 믿는단 말이야?” 나의 웃음 섞인 질문에 친구가 답했다. “물론이야. 모두 어쩜 그렇게 용하냐고들 해.”

이 대화를 통해 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 사람은 본인을 입체적으로 인식한다는 사실이다. 모두에게 스스로는 복잡한 층위의 인간이고, 단편적으로 해석될 수 없는 존재다. 그렇기에 쾌활하면서도 외로울 수 있고, 조용하면서도 격정적일 수 있고, 평범하면서도 기발할 수 있다. 그뿐인가, 나에겐 타자들이 알지 못할 수많은 서사가 엉켜 있다. 나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내가 살아온 방식, 감춰온 상처,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 도식들이 숨어 있다. 나는 다차원의 부산물이고 함부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존재다. 게다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하고 있다. 그 고차원의 존재가 명랑, 행복, 대범 같은 단어 한두 개로 규정될 리 만무하다.

하지만 우리가 타자를 인식할 때는 어떤가. 나를 대할 때의 이 풍부한 사유와 도량은 희한하게도 타자 앞에선 인색해진다. 남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납작하고 또 납작하다. 인간이라는 다층적인 존재들은 ‘나’라는 필터를 거쳐 삽시간에 밋밋해진다. 표정이 어두운 친구는 그저 ‘툭하면 우울한 애’가 되고, 종종 지각하는 동료는 ‘마냥 게으른 사람’이 되고, 늘 즐거워 보이는 동창은 ‘생각 없이 밝은 녀석’으로 일축된다.

특히 유명인을 대하는 태도 중엔 이런 것이 많다. 돈 많으니까 행복하겠지, 잘 웃는 걸 보니 아픔도 없겠지, 인기 많은데 뭐가 걱정이야 등등. 본인을 반추할 때 동원했던 입체적인 시각은 사라지고 그의 세계는 단어 몇 개로 규정된다. 그의 언행에 있어서는 어떤가. 내가 내 행동을 해석할 때의 관용-내 안에 켜켜이 쌓여온 삶과 작금의 상황이 나로 하여금 이런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은 사라지고, ‘멍청해서 저렇다’ ‘관심받는 걸 좋아해서 저렇다’ ‘쟤가 무슨 생각이 있겠어’ 등의 일차원적인 해석만 남는다. 심지어 타자 역시 나처럼 변화하는 존재임에도 이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애초 내가 재단해둔 틀 안에 그를 가두고 그의 출렁임을 외면한다. 최초의 낙인을 거둬줄 성의라곤 없다.

나는 문득 이 이격이 두려워졌다. 타자에 대한 사유의 인색함이 무서웠다. 나 자신을 생각할 때는 수많은 이유를 끌어와서 어떻게든 이해해주려고 애쓰면서 타인에 있어서는 얄팍한 해석으로 퉁치고 넘어가는 방식. 이런 방식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했을까. 외롭게 했을까. 이런 사고는 부끄럽게도 내 안에도 도사리고 있다. 나 역시 타인을 압축시켜 간편하게 해석하는 납작렌즈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나만이 입체가 아니다. 내 옆자리 동료도 입체이고, 길을 지나가는 저 사람도 입체이고, 평평한 화면 속 저 인물도 모두 입체다. 그의 안에는 나만큼 복합적인 인격이 존재하고, 풍부한 서사가 존재하고, 어제와 다른 오늘이 존재한다. 해사하게 웃고 있지만 마음속에 고통이 도사리고 있을 수 있고, 씩씩하게 버티는 듯 보이지만 쓰러지기 직전일 수 있고, 매일 한결같아 보이지만 끊임없이 일렁일 수 있다. 당신이 그렇듯, 바로 내가 그렇듯 말이다.

홍인혜(시인·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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