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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강주화] 내로노남 하지 맙시다



최근 고령층 재혼이 급증했다는 소식에 몇 해 전 일이 떠올랐다. 지긋한 남자 어르신의 전화를 받았다. 초등학교 동창인 우리 할머니의 연락처를 잃어버려 내 전화번호를 수소문했다고 하셨다. 내가 졸업한 고향 초등학교와 대학 선배라고 당신을 소개하며 친근감을 한껏 표시한 뒤 조모의 안부를 물으셨다. 용건은 간단했다. “할머니에게 소개하고 싶은 좋은 남자분이 계시니 모시고 나와 달라”는 것이었다. 전격적인 소개팅 제안이었다. 여든을 넘긴 할머니에게 들어온 핑크빛 제의가 다소 당황스럽긴 했지만, 손녀 된 도리로 성심껏 협조했다. 그런데 약속 당일 만남의 장소에는 ‘소개팅남’이 나오지 않았다. 바람을 맞은 것이다. 주선자였던 할아버지는 “그 친구가 소개팅 결심을 굳혔다가 막판에 마음을 돌렸다. 미안하다”며 점심을 사셨다.

나는 소개팅이 성사되지 않는 데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할머니는 “왜 나오지 않았을까”라고 여러 차례 되뇌며 상당히 섭섭해 하셨다.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 할머니도 연애하고 싶구나.’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평생 로맨스를 갈망한다는 것을 현실에서 직접 본 기분은 묘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할머니는 정말로 동네 한 할아버지를 사귀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그 남자친구 할아버지를 만나러 갈 때 콧노래를 부르며 치장을 한다. 젊은이들이 연애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다만 관심의 초점이 다르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20·30대 여성에겐 외모, 40·50대 여성들에게 경제력이 가장 큰 관심이라면 이분들의 관심은 건강이다.

70대 이상 할머니들이 “나 영감(남자친구) 생겼다”고 하면 가장 먼저 묻는 것은 “그 영감, 잘 걸어?”란다. 살아온 날보다 대개 살아갈 날이 훨씬 짧은 노인들에게 건강이 최대 관심사인 것은 당연한 것이다. 사회가 급속히 고령화되면서 이런 ‘로맨스 그레이(Romance Gray)’ 노년의 사랑도 보편화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재혼한 65세 이상 남성·여성은 각각 2.8%, 12.1% 증가했다. 재혼 수치를 통해 그 전 단계인 고령층의 연애도 늘었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65세 이상의 이혼 후 재혼건수가 사별 후 재혼건수보다 5배가량 많은 것도 눈길을 끌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헤어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이다.

고령자들 중에서는 재혼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6.3%에 그친다. 하지만 고령자의 자식 세대는 부모의 연애나 재혼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남세스럽다는 것이다. 물론 노부모의 연애나 재혼을 경원시하는 것이 단순한 감정적 이유가 아닌 경우도 많을 것이다. 재산 상속이나 복잡한 가족 관계 등 현실에 대한 부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이가 많다고 해서 감정이 없겠는가. 사랑을 모르겠는가. 오히려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면 남은 시간을 외롭지 않게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가 부모의 연애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갖는 이유는 아직 우리가 그 나이에 이르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한 기독교 교단 총회 취재에서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은퇴한 목사들에게 부여하던 총회 투표권을 회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그때 한 원로 목사가 다수 목회자들에게 이런 말을 던지면서 그 안건은 간단히 부결됐다. “여러분이 앉은 그 자리와 제가 앉은 이 자리가 그렇게 멀지 않습니다.” 언젠가 젊은 당신들도 나이가 들고 은퇴를 할 텐데 몸담은 교단의 투표권을 빼앗긴다면 얼마나 섭섭하겠느냐는 것을 재치 있게 전달한 것이다. 항간에 유행한 ‘조로남불’을 따라 표현하면 ‘내로노남(내가 하면 로맨스, 노인이 하면 남세스럽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르신들도 우리 젊은이들 못지않게 사랑을 갈망한다. 우리도 언젠가 노년에 이른다. 내로노남은 노인이 된 우리에게 고스란히 돌아올 수 있다. 그러니 지금부터 로맨스 그레이에 관대해지는 연습을 하자.

강주화 온라인뉴스부 차장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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