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기타

[편의점 풍경화] 힘을 내요, 호빵



저예요. 호빵이에요. 사실 호빵은 특정한 상표의 이름인데요, 호호 불어가며 먹는 빵, 가족끼리 둘러앉아 호호호 웃으며 먹는 빵이란 뜻에서 그렇게 지었다고 해요. 사전에 있는 ‘찐빵’보다 문학적이고 낭만 있게 느껴지지 않나요? 이제는 호빵이 보통명사처럼 되었지요.

제가 인기 있는 계절은 물론 겨울이랍니다. 하지만 10~11월에도 저는 많이 팔려요. 연간 판매량의 40%를 가을에 팔죠.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많은 상품이 그래요. 계절보다 한발 앞서 팔리기 시작한답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여름의 끝자락에 어느새 바람도 선선하게 느껴질 즈음, 저는 편의점에 재빨리 얼굴을 내밀어요. 얼음컵 냉동고가 빠져나간 자리를 호빵 찜기가 당당히 물려받게 되죠. 하나 사면 하나 더 주고, 저를 사면 커피와 주스를 덤으로 주고, 봉지째 사면 더욱 할인해주고…. 그런 이벤트를 통해 저는 계절을 먼저 차지하려 분주히 땀을 흘려요. “이제 곧 겨울이에요!” 하면서요.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요.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단팥 아니면 야채 정도로 저를 떠올리지만, 요즘엔 피자 호빵까지 가세해 3파전을 이뤄요. 그뿐인가요. 크림치즈, 불닭, 짬뽕, 양념갈비, 고추잡채, 큐브스테이크, 순창고추장…. 저에게는 스무 가지 넘는 맛이 있답니다. 심지어 초콜릿 회사와 함께 만든 초코 호빵도 있어요. “단팥이냐 야채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면서 고민하지 마세요. 다양한 호빵 맛을 즐겨보세요. 당신도 호빵계의 ‘인싸’가 될 수 있답니다.

편의점 점주들이 좋아하는 계절은 언제일까요? 대체로 여름을 가장 좋아하고요, 겨울을 싫어해요. 고르게 보아 편의점은 여름에 매출이 최고, 겨울엔 최저거든요. 날씨가 추워지면 음료 판매가 줄어들기 때문이죠. 겨울이 싫어, 싫어! 편의점 점주들은 ‘겨울 싫어증’이 있어요. 그렇다고 포기하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잖아요. 일단 온장고 음료로 따뜻함을 북돋고요, 거기에 바로 저 호빵이 힘을 보태는 거예요.

제 친구들을 소개할게요. 시골에서 올라온 친구, 군고구마가 있어요. 옛날에는 겨울철 드럼통 얹은 트럭이나 손수레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는 군고구마를 찾았잖아요. 이제 편의점으로 가시면 돼요. 모든 편의점에 군고구마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조리기가 꽤 공간을 차지하고, 안 팔리는 고구마는 모두 버려야 하기 때문에, 대개 면적이 넓거나 손님이 많은 편의점에 있어요. 편의점에 들어섰는데 군고구마 굽는 냄새가 진동하면 구수한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죠. 아침 출근길에 군고구마 사려는 손님들이 줄 서는 편의점도 있어요. 내 앞에서 고구마가 똑 떨어지면 그만큼 아쉬운 일도 없죠. 서두르세요!

바다가 고향인 친구, 어묵도 있습니다. 호빵, 군고구마와 함께 우리는 편의점의 겨울을 지키는 3대장이랍니다. 예전에는 포장마차처럼 국물통 안에 꼬챙이 어묵을 팔았는데요, 요즘에는 국물과 어묵이 단위 포장된 조리기가 보급되는 중이랍니다. 더욱 위생적이고 편리해졌어요. 이러다 어묵이 호빵의 인기를 앞지르게 될까 걱정이지만, 아무렴 어때요, 편의점 손님들과 점주님들 얼굴에 활짝 웃음을 줄 수 있다면 저는 앞으로 2등, 3등이 되어도 좋습니다.

겨울로 가는 길목에 있어 편의점의 가을은 조금 우울하지만, 그렇다고 다가오는 시간을 막을 수는 없잖아요. 하늘이 하시는 일은 의연히 받아들이며 사람에게 주어진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옳다고 믿어요. 그러니 힘을 내요. 방긋 웃어보아요. 다 잘될 거예요. 당신 곁에는 당신의 호빵이 있잖아요.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