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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칼럼] 저급한 자들의 지배를 받지 않으려면



조국 사태로 인해 결과적으로 검찰 개혁이 의제화되고
진보 엘리트의 위선이 드러난 것은 공동체 발전 위한 긍정적 성과
역사에 지름길은 있어도 생략은 없어… 무능·증오의 정치판에서도
배울 것 찾으면 저급한 진영 논리에 휘둘리지 않을 것


증오와 분노의 지난 한 주였다. 광화문과 서초동의 머릿수 싸움은 마치 원시 부족 간 패싸움의 전야제를 보는 것 같다. 정치의 갈등 조정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국정운영이 망가지니, 이 상태를 이용해 이익을 보려는 여야의 교묘한 정치행위가 작동했다. 청와대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말이 없고, 여의도 정치는 무능의 끝판왕을 보여준다. 광장이 판을 치니 상대는 나쁜 놈, 타도해야 할 적이다. 보이는 게 다 부정적이고 정치적 잇속 챙기기라는 생각만 넘쳐난다. 그래도 보이는 게 다가 아닐 것이라는 굳은 믿음으로 어디엔가 있을 발전적 요소를 애써 찾아봤다.

우선 검찰 개혁이 전 국민의 의제로 떠올랐다. 그동안 추상적인 의제였다면 이제는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꼭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가 됐다. 피의사실 공표, 공개소환, 특수부의 인지 수사, 검사 외부 파견 등은 그동안 검찰이 정권의 사냥개 역할을 충분히 하거나, 자의적 남용으로 인권을 침해하거나, 나아가 검찰 자체 권력을 강화하는 지렛대로 활용했던 것들이다.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지만 이런 것들을 포기·금지한 것은 검찰 개혁이 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는 신호다. 김학의 사건이 왜 뭉개졌는지, 수사권 조정의 의미가 무엇인지, 전 세계에서 유례없이 막강한 대한민국 검찰의 권한을 분산·견제할 방안은 무엇인지, 그렇다고 경찰은 믿을 만한 조직인지…. 상식적이라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법무부 장관 조국 사태의 긍정적 성과다.

대통령과 여당은 이 계획을 정교하게 준비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게 맞아 보인다. 상황이 그렇게 흐른 것이다. ‘조국 수호=검찰 개혁’은 정권의 선동적 정치구호일 뿐이다. 조금도 동의하지 않거니와 오히려 조 장관의 존재는 검찰 개혁의 걸림돌이 돼 버렸다. 개혁은 장관 혼자가 아니라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의 이해와 압박, 여론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여권은 검찰 개혁이라는 작은 단위의 전술에서는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국정운영이라는 거대한 전략에서는 진흙탕에 빠졌다. 여권이 검찰을 다루는 행태는 그들이 그렇게 몰아세웠던 보수 정권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나서 적폐수사를 강조하더니 같은 잣대로 권력 실세를 다루니까 검찰권 남용이란다. 그런 주장을 하려면 육참골단(肉斬骨斷·자신의 살을 베어 내주고 상대방의 뼈를 자른다)의 자세로 했어야 했다. 그럴 의지나 자신이 없었던 거다. 공정과 정의라는 진보의 가치는 만신창이가 됐다. 결론적으로 조국 사태는 검찰 개혁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조국 수호와 검찰 개혁은 아무 상관이 없다. 흐름이 대세를 탔기 때문에 다른 이가 해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조국 수호 주장은 닥치고 진영 논리다.

둘째, 정치 미래를 위해 진보의 위선이 드러난 건 다행이다. 물론 모든 진보가 다 위선이란 말은 아니다. ‘조금은 부패했지만 그래도 능력은 있다’던 보수가 전임 보수 정권과 탄핵을 거치면서 ‘능력마저 없다’는 평가로 바뀌었다. 그리고 궤멸했고 그 수렁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진보 엘리트의 언행불일치가 드러난 건 도덕성이 가장 큰 무기였던 진보의 전략 자산이 허물어진 것이다. 드러난 ‘입진보’의 민낯은 정치 미래를 위해 참으로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자기만 옳은 진보에게 성찰할 기회를 가져다 줬기 때문이다. 진보는 조국 사태로 공정 정의 평등이란 단어의 정의가 너덜너덜해진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

무능력 보수와 위선의 진보는 역설적으로 우리 정치를 짓누르고 왜곡해 온 진영 논리를 깨뜨릴 기회를 주고 있다. 진영 논리를 이용해 진보와 보수의 기득권층이 적절히 공방하며(서로 국민을 위해 희생적 투쟁을 한다고 주장하지만) 적대적 공생관계로 권력과 이익을 누려온 민주화 이후 구태 정치의 작동 메커니즘이 드러난 것이다. 과거엔 지역 중심의 권력 세습, 지금은 끼리끼리 주고받는 386 정치권력의 독식이 전형적 사례다. 조국 사태는 진보 보수 기득권의 적대적 공생이라는 암을 치료 가능 시기에 운 좋게 건강검진에서 발견한 것과 같다. 보수는 탄핵 이후 성찰이 없어 궤멸 상태의 지지율 그대로다. 조국 사태에서 성찰이 없으면 진보의 폐족 시대가 다시 올지도 모를 일이다. 밀리면 끝이라는 ‘노무현 트라우마’는 벗어날 때도 됐다.

또 하나의 성과는 정치인의 무능이 얼만큼 국민을 피곤하게 만드는가를 확실히 알았다는 점이다. 주말마다 노는 날마다 거리에 나가려고 대통령 뽑고 여야 의원 뽑은 게 아니다. 권력을 선출한 책임은 결국 선출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역사에 지름길은 있어도 생략은 없다던데, 우리는 감히 생략하려던 과정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사는 사람들을 가르칠 게 있기 때문에 거칠 것은 꼭 거치게 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이 와중에서도 배울 건 배워야 한다. 플라톤의 말처럼 자기보다 저급한 자들의 지배를 받지 않으려면.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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