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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정현수] 왜 조국이어야 하는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런 제목으로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사모펀드와 자녀 논문·인턴십 의혹 등 지금까지 제기된 논란만으로도 조국 법무부 장관은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조 장관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의혹만 있을 뿐 확정된 범죄는 없다”고 항변하지만, 그동안 의혹과 논란만으로 낙마한 장관 후보자들이 숱하다. 그동안 장관 자격을 따질 때 후보자의 범법 여부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도덕성과 전문성도 함께 고려돼 왔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조 장관은 자격 미달이라는 생각을 아직 떨치기 힘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카드’를 내려놓을 수 있었던 여러 번의 기회를 흘려보냈다. 오로지 검찰 개혁이라는 당위성 하나로 다른 여러 의혹은 덮어둘 수 있다는 인식인 듯하다. 반면 개혁 대상이 된 검찰은 조 장관 의혹에 대한 수사에 나서며 저항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책에서 본 바닷가재의 싸움에 비유하자면, 상대의 몸집과 집게발 크기를 제 것과 비교해 싸워보기 전에 둘 중 하나가 지레 겁을 먹고 물러서는 ‘평화적 분쟁’ 단계는 이때 이미 넘어섰다.

조 장관과 검찰 어느 쪽도 먼저 물러설 기미는 없다. 집게발로 상대의 눈이나 더듬이를 공격해 치명상을 입히는 실제 전투 단계에 돌입했다. 검찰은 가장 정예라 꼽히는 특수부 검사 수십명을 동원해 한 달 넘게 조 장관 관련 의혹을 샅샅이 훑고 있다. 조 장관의 아내와 자녀들은 이미 여러 차례 검찰에 불려가 조사받았고, 친동생에게는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수사 속도를 올리고 있다. 조 장관 역시 이런 검찰의 칼을 정면으로 받으며 특수부를 포함한 전국 검찰청의 직접수사 부서를 축소·폐지하는 등의 검찰 개혁 방안을 내놓고 있다.

시민들도 가세하면서 조 장관과 검찰이 벌이는 전투는 확전되고 있다. ‘조국 수호, 검찰 개혁’ 팻말을 든 시민 수만명이 서초동 대검찰청 앞 도로를 메우더니 며칠 뒤엔 ‘조국 구속’을 외치는 다른 시민들이 광화문 앞 대로를 가득 채웠다. 지난 5일에는 대검찰청 앞에서 이 두 집단이 서로 마주보며 세 대결을 펼치는 장면까지 연출됐다. 갈라진 두 편 사이 중간지대에는 ‘조국은 싫지만, 검찰 개혁이 더 급하다’ ‘검찰 개혁도 중요하지만, 조국 수사가 먼저다’ 같은 목소리들도 끼어 있다. 이로써 ‘적당히 개혁하고, 적당히 수사하는’ 퇴로는 완전히 막혀버렸다. 수백만명의 시민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이 싸움을 지켜보고 있다.

만약 이 시점에서 조 장관이 꽁무니를 뺀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검찰 개혁은 꽤 오랫동안 유예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검찰 개혁을 외치는 법무부 장관의 끝을 본 어떤 누구도 그 바통을 넘겨받으려 하지 않을 게 뻔하다. 검찰 개혁 동력은 그렇게 약해진다. 한 번 큰 싸움에서 패한 바닷가재가 완전히 자신감을 상실한 채 다른 적은 물론 예전에 한 번 이겨봤던 적과도 다시 싸우려 들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정권 초기에는 전 정부의 비리를 털어 살아 있는 권력에 충성하고, 후반기에는 현 정권에 칼을 들이대 다음 권력과 야합하는 검찰의 행태는 계속될 것이다. 그 수많은 의혹과 논란에도 이미 되돌릴 수 없게 된 상황이 조 장관을 검찰 개혁의 적임자가 되도록 강제하는 역설적 상황이 펼쳐진 셈이다.

그러니 조 장관은 애초 걷기로 했던 그 길을 가야 한다. 스스로 말했듯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나라를 두 동강 냈다는 비판까지 감내하면서까지 가려 했던 검찰 개혁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줘야 한다. 그게 지금 한국 사회가 출혈하고 있는 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허투루 날리지 않을 수 있는 길이다.

어차피 주어진 시간도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알려진 윤석열 검찰총장의 스타일상 검찰은 수사를 끝까지 밀고 나갈 테다. 검찰 입장에서는 조 장관 수사가 단순히 검찰 개혁에 저항하기 위한 게 아니었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수사를 통해 조 장관과 그 가족의 혐의를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다. 숱한 의혹의 실체들이 공소장에 정리되고, 그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뒤따를 것이다. 그 결론에 대해 조 장관은 어떻게든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시민들은 ‘확인된 의혹’들과 ‘검찰 개혁에 기여한 정도’를 저울질해 조 장관을 최종적으로 평가하게 될 것이다.

정현수 이슈&탐사팀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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